[멕시코] '애니깽'이민 100년…韓流가 흐른다
상태바
[멕시코] '애니깽'이민 100년…韓流가 흐른다
  • 매일경제
  • 승인 2005.09.0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일경제 2005.09.06 13:43:01] 
         
멕시코로 이민간 한국인을 뜻하는 애니깽(Henequenㆍ정확한 발음은 에네켄)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부터 정확히 100년 전인 1905년 4월 4일 한인 1033명은 영국 상선인 일포드 호에 몸을 싣고 제물포항을 떠났다.

한 달여 동안 항해해 그들이 도착한 곳은 멕시코 유카탄반도 메리다 지역. 소형 밴드가 요란스럽게 이들을 환영했다. 그러나 환영 음악도 잠시, 유카탄 지역 농장주들이 이들을 세워 놓고 노예경매와 같은 절차를 진행했다.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이들에게는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이었다.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기온은 40도를 웃돌았고, 새벽 5시부터 밤 10시까지 강행군하는 중노동이었다.

한눈이라도 팔라치면 농장관리인들이 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다.

그 대가로 받은 돈이 하루 일당 35전. 당초 약속인 1원30전에 비해 3분의 1도안 되는 돈이었다. 하루가 너무 힘들고, 희망이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맞아죽는 사람들도 발생했다.

이 같은 비참한 한인들 실태를 고발하는 중국인 허후이(河惠) 편지가 1905년황성신문에 실리자 여론이 들끓었다. 허후이는 "멕시코 애니깽 농장에서는 흑인들이 가장 밑바닥인 5~6등급 노예소리를 듣는데, 조선인은 그보다도 못한 7등급 노예로 소나 말 취급을 받는다"고 전했다.

고종 황제는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며 동포들을 빨리 소환하라고 지시했지만 일본측 방해로 좌절된다. 이때 대한제국은 일본과 을사조약을 맺어 외교권을 빼앗긴 상태였기 때문이다.

1909년 5월 12일 마침내 계약기간인 4년이 끝났다. 인간 이하 대접을 받는 생활이었지만 한인들은 성실함과 인내로 어려움을 잘 이겨냈다. 이제 고국으로돌아갈 자유가 생긴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돌아갈 나라가 없었다. 풍전등화 위기로 치닫던 고국은 이듬해인 1910년 일본에 병합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또 그해 멕시코에서는 혁명의 거센 바람이 휘몰고 지나가고, 몇 년 후에는 제1차 세계대전 불황 후폭풍이 이들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

결국 이들은 멕시코 전역과 쿠바 등지로 흩어지고 만다.

특기할 점은 멕시코 이주 일부 한인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강인한 민족혼을발휘해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부단히 노력했다는 사실이다.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조국 독립을 위한 성금을 모집하고 2세 교육을 위해 학교를 세웠으며, 미국 독립운동단체인 대한국민회 멕시코지회를 구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멕시코 이주 한인 후손들은 현재 메리다를 위시해 멕시코시티, 티후아나, 베라크루즈, 오아하카 등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이들은 한국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구심점도 없어 그 동안 고국과 완전히 단절됐다.

따라서 이들은 한국어를 잊은 채 멕시코 공용어인 스페인어로만 의사소통을 한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멕시코 한인들은 최근 들어 사업에 성공하거나의사 교수 등 전문직에 진출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일부에 불과하며 메리다에 사는 대부분 한인은 막노동을 하거나 행상을 하면서 궁핍한 생활을 하고 있다.

한인들이 한국어는 못하지만 한국 음식 문화는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김치 고추장 된장 만두 등을 알고 즐기는 사람도 많다. 밥도 한국식으로 지어먹기도한다.

지구 반대편에서 한국을 잊고 살았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인 특성을몸에 간직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부상하는 한국 경제와 1988년 서울올림픽, 2002년 월드컵 등은 정체성이 없던 이들에게 자신들 뿌리가 한국인이라는 자긍심을 주었다.

멕시코 이민 100주년인 올해에는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렸다. 지난 2월, 5월, 6월 현지에서 개최된 행사에는 많은 한인이 참석했으며, 이들에게 민족 정체성과 긍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행사로 인해 멕시코 현지인들도애니깽 후손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으며, 멕시코에 한류 바람도 서서히 불게 되었다.

그러나 멕시코 한인들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민의 관심은 여전히 소원한 상태다.

지나치게 선심성 전시행사에만 신경을 쓴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현지에 한글학교를 세우거나 똑똑한 한인 후손들을 한국에 데려와 교육을 하는 등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오화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