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인터뷰> '노는 문화' 전도사 김정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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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노는 문화' 전도사 김정운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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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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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층인터뷰> '노는 문화' 전도사 김정운씨

"잘 노는 것과 창의력.국가경쟁력 직결..한국엔 `놀이문화' 없어"
"매니아 많아야 사회창의력 커져..`일과 생활 균형'이 능률 향상"

'노는 문화' 전도사 김정운씨.
    (서울=연합뉴스) 강일중 기자 = 김정운(43) 명지대 교수는 386세대로 운동권 출신이다. 과거 군사정권이 좌경화된 학생들을 교화시킨다는 명분으로 추진했던  소위 '녹화사업'의 대상자이기도 했던 사람이다.

    그는 요즘 '여가학(Leisure Studies)'이라는 생소한 학문을 강단에서  가르치고 있다. 여가학은 쉽게 말해 어떻게 하면 잘 노느냐는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김 교수의 세대는 재미나 행복을 추구하면 죄의식을 느껴야 했을 정도로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했다. 오직 일, 근면과 성실과 절약 만이 당시 우리 사회가 추구한 덕목이었다.

    그러나 그는 세상이 변했음을 강조하고 다닌다.

    "나는 자(者) 위에 노는 자(者) 있다"고 하기도 하고 "잘 노는 만큼  성공한다"며 자신이 '노는 문화'의 전도사를 자임하고 있다.

    "경기도 안 좋은데 무슨 엉뚱한 소리 하고 다니느냐"는 주위의  눈치에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자신이 속한 세대가 이 사회의 주도세력으로 부상한데 대해  일말의 불안감 까지 느끼고 있을 정도다.

    "386세대는 자유.민주.평등이라는 가치를 위해 투쟁하는건 배웠어도 행복과  재미같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사치스러운 것으로 금기시 했습니다.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찼던 그런 사람들이 국민들에게 재미와 행복을 주는 정책을 제대로  수립할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잘 노는 것은 창의력과 곧바로 연결되는 것이고 국가경쟁력은 거기서  나온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주장.

    "이제는 일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잘 노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일하는 것은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독일 사람이 10일 걸려 하는 것을 우리는  2박3일이면 다 끝냅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지구력이 필요한 것, 또 창의성이  요구되는 부문에서는 우리는 아직 선진국들에 많이 뒤지고 있습니다. 그 원인은  우리가 잘 놀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 예로 우리가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일본의 '욘사마' 열풍을 든다.

    "일본 사회 한 번 보십시오. 욘사마에 미쳐서 일본 여성들이 3박4일로 대거  한국으로 날라옵니다. 한국 여성들이 일본의 어느 배우에 미쳐 그 사람을 찾아 일본으로 3박4일 여행을 간다고 하면 한국 남자들이 그냥 내버려 두겠습니까? 일본에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재미를 즐기고 또 그것을 인정해 주는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창의성으로 연결되고 소니 제품 같은 것이 그런 분위기 속에서 탄생하는 것입니다. 할리우드가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베끼고 있지 않습니까?"
    문화적 다양성에 대해 강조하다보니 김 교수는 세계가 주목했던 한국민들의  월드컵 응원열기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비판의 화살을 던진다.

    "정신없이 노는 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재미가 획일화되어 있는 것은  문제입니다. 우리의 월드컵때 응원도 그렇습니다. 어떻게 전 국민이 그렇게 축구 하나에  미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전 국민이 하나의 이데올로기에 미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김 교수는 주5일 근무제의 시행은 '노는 문화'의 중요성을 더욱 인식케 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문제는 노는 사람이나 놀게 하는 직장이 모두 '놀이 문화'에 익숙하지 못하다는 점.

    "21세기에 성공하는 기업의 조건은 기업이 적극적으로 종업원들의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즉 '일과 생활 사이의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루 놀게 하는 것으로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제대로 휴식하고 놀게  함으로써 생산성이 더욱 높아지도록 하는 것이 기업이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과거에는 조직충성형 종업원이 많았고 그들이  기업성장의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요. IMF 위기 이후 많은 사람들이 잘려  나가면서  조직충성형은 줄어들고 개인주의형 근로자들이 늘었지요. 더구나 요즘 30-40대 직장인은 가족중심형 인간형입니다. 회사에서 인정 받고 승진하기 보다는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을 더욱 중시하는 사람들이죠. 그런 변화에 기업이 대처해서 개인주의형이나 가족중심형 근로자의 삶에 관심을 갖고 배려해 주지 않으면 안되게 됐다는 얘기입니다. 탄력근무제나 변동휴가제 같은 것이 나온 것은 그런 배경입니다."
    이러한 추세의 변화에 잘 대응하는 기업의 사례로 그는 유한킴벌리를 든다.

    "이 회사는 교대제를 해서 여가시간을 많이 늘려줬습니다. 이 회사  사례가  왜 좋으냐 하면 외국에서 얘기하는 탄력근무제를 도입했다는 것입니다.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는 조건 중의 하나는 종업원 스스로가 근무시간을 택한 경우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시간대에 일을 하니까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질 수 밖에 없지요."
    여가시간이 있을 때 어떻게 노느냐 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다.

    한국민들의 노는 방법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개선해야 할 점이 많음을 지적한다.

    그는 우리 사회의 폭탄주 문화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한다.

    "폭탄주를 마시는 것은 일종의 자폐증상입니다. 맨정신으로 멀뚱멀뚱 앉아 있는 것이 불안하니까 빨리 취해서 정신이 흐릿해졌을 때 얘기하게 되는 것, 그게 곧  자폐증입니다. 흐릿하게 한 대화가 다음날 제대로 기억날 리가 없죠. 다음날 '나 어제 필름이 끊겼어'라고 얘기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는 '나 당신하고 얘기한 건  기억하고 싶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놀이에는 원래 정서적 커뮤니케이션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우리 문화에는  서로 대화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빠져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자신의 별명을 우스갯소리로 'B&G' 라고 소개한다.

    '뻥'과 '구라'의 약자.

    "맨 정신으로 술 안 먹고 2-3시간 얘기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독일에서 13년간 살면서 보아온 독일인들의 여가활용방법을 소개한다.

    "그들에게 산책은 여가의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가 볼 때는 아주 심심하고 무료하기 짝이 없는거지요. 결정적인 이벤트도 없고, 세상 뒤집어질 재미도 없고 그렇죠. 한 번 크리스마스 때 독일인 가정에 초청 받아 갔더니 한참을 같이  산책하자고 하더니 저녁을 먹은 후에는 보드게임을 하자고 하더군요"
    그는 그렇게 '사소한' 재미를 특히 강조한다.

    사소한 재미는 김 교수가 목청 높여 부르짖고 있는 '휴(休)테크'의  핵심내용이기도 하다.

    "일상생활 속에서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합니다. '난 난초에 미쳤어', '난 슈베르트 가곡에 빠졌어', '난 낚시광이야',  '등산만 하면 좋아' 이런 것들이 있어야 삶을 기쁜 마음으로 여유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겁니다."
    일본에는 '오타쿠'족이라고 있는데 뭔가에 미친 매니아들이다.

    남들이 볼 때는 아무 것도 아닌데 본인들은 거기에 완전히 빠져서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매니아들이 많아야 문화적 다양성이 보장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특히 은퇴 이후의 삶을 지탱하는데는 자신이 과거 어떤 중요한  자리에  있었고 돈을 얼마나 벌었느냐가 아니라 현재 어떤 것을 즐길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김 교수는 여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들어간다는  개념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놀면 돈 쓴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놀이문화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산책하는데 무슨 돈이 들어갑니까. 상업주의적이고 말초적인 놀이문화만 존재할  뿐 휴식과 여유를 통해 재충전하는 기회로 삼는 여가문화가 없기 때문에 '놀면 돈쓴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이렇게 돈 안들고 건전한 '노는 문화'의 확산을 위해 김 교수는 정부의  역할을 강조한다.

    "구미 각국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조직을 보면 반드시 공원과 국민들의 여가활용을 담당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미국에는 '파크 앤 레크리에이션' 조직이,  영국에는 '레저 센터'가, 일본에는 '여가개발실'이라는 것이 있지요."
    이런 곳에서 각 지역 마다 안전하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산책로를  만드는  등 국민들의 여가활용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시행해 주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김 교수는 국민들의 여가즐기기와 관련된 지도층의 관심부족에 섭섭함을 토로한다.

    "제가 현재 대통령 자문 '사람입국 신경쟁력 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있습니다. 이 위원회에서 지난 1년간 이런저런 여가활용정책 관련 건의를 했는데 된게  없습니다. 정부 기구로 여가지원센터를 만들기 위한 예산을 신청했더니 '주5일 근무로 하루 더 놀면 행복하지 무슨 대책이냐'며 예산당국에서 잘라버렸습니다. 청와대  지원을 받아 다시 신청했더니 이번에는 국회에서 '경제가 어려운데 한가하게 무슨  여가냐'며 삭감했습니다."
    그는 이 부분에서는 운동권 출신 답게 다소 과격한 언어를 구사한다.

    "한국 사람들이 일을 못해서 망하는 것이 아니라 놀 줄 몰라서 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창의력으로 승부 봐야 하는데 창의력은 재미와 동의어거든요.  사는  것이 재미없는데 무슨 창의력이 나오겠습니까?"
    그는 특히 '놀면 불안해 지는 병'이 빨리 해소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재미에 대한 이중적 태도가 없어져야 합니다. 재미와 행복을 양지에서  추구하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숨어서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다  보면 발전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면 나쁜 놈이라는 인식이 없어져야죠."
    그는 IMF 위기가 들이닥친 직후 한국민들의 마음에 희망과 용기를 불러넣어주었던 골프 퀸 박세리의 사례를 들면서 '노는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즘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박세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야말로 일과  자신의 삶 간의 균형입니다. 정상에 올랐을 때는 몰랐었는데 재미있게 사는 것을 배우지 못한 탓입니다. 헝그리 정신으로만 해 왔기 때문이지요. 박세리의 모습은 한국 사람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김 교수는 고려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후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문화심리학 과정을 마치고 전임강사 생활을 하다 2000년 귀국, 명지대 여가정보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며 이 대학 여가문화센터 소장, 휴먼(休man)경영연구원장직도 맡고 있다.

    kangfam@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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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8/08 07:00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