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바라보는 시각 달라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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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바라보는 시각 달라질 것 같아요”
  • 미주한국일보
  • 승인 2005.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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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이민생활을 하면서 경찰에 대한 안 좋은 기억들이 너무 많아. 아내는 나보다 더 심각해. 이 참에 경찰에 대해 배우고 오해하고 있었던 부분이 있다면 없애려고 싫다는 아내까지 억지로 끌고 왔어.”

어스름이 막 내려앉기 시작하던 18일 라팔마 시청 대회의실. 사이프레스의 유세준·혜령씨 부부가 테리 김 경찰관에게 한국어로 건넨 인사로 정적에 휩싸였던 회의실이 잠에서 깨어났다. 유씨 부부는 지난 4일부터 한 번도 빠지지 않고 한인시민경찰교실 수업을 듣고 있다.

동기가 무어냐고 물어봤다. 영화 ‘실미도’. 부정적으로 묘사된 군대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를 본 뒤 부인 유씨가 남편을 바라보는 시선이 싸늘해지기 시작했단다. 남편이 이민 오기 전 육군 첩보부대에서 근무했다는 걸 부인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시민교실에 가보자고 끈질기게 설득해 속는 셈치고 나오고 있어요. 경찰과 군인은 서로 비슷한 점이 많으니까요. 아직까지 두드러지게 바뀐 건 없지만 기존에 갖고 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에 변화가 오고 있는 것 같긴 해요.”(부인 유혜령씨)

지난 4일 시작된 캘리포니아주 최초의 한인시민교실은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30분∼오후 6시에 시작된다. 언어는 영어가 아닌 한국어. 교재도 한국어·영어 두 종류다. 이날은 세 번째 수업으로 ‘도로순찰’이 주제였다.

강의를 하는 쪽이나 듣는 쪽 모두 진지함이 물씬 묻어 났다. 조직 편제·순찰 시작 전 회의과정·동행순찰 등에 대한 테리 김 경찰관 설명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 노트에 필기하는 모습들이 눈에 쉽게 띄었다.

간간이 수강생들은 “주민 공동치안 방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저속으로 달리는 순찰차를 볼 때면 추월을 해야 되는지 말아야 되는지 모르겠다”는 등의 호기심 어린 질문들도 던졌다.

그러다 김 경찰관이 ‘인종차별 방지 교육’에 설명으로 넘어가자 기다렸다는 듯 수강생들의 불만 가득한 경험담들이 쏟아져 나왔다. 특별한 이유 없이 경찰의 정지명령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최영(의류업·가든그로브)씨는 “당시 하도 화가 치밀어 내 차 보닛을 힘껏 내려쳤더니 순식간에 10여대의 경찰 차가 떼거지로 몰려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었다”며 경찰을 비난했다.

유세준씨도 한 몫 거들었다. 유씨는 “친구 부부들과 두 대의 차에 나눠 가던 중 앞에 가던 일행 차량이 억울하게 경찰의 단속에 적발된 적이 있었다”며 “이에 차를 세우고 상황 설명을 하려고 했더니 오히려 나한테 안전띠 미착용 티켓을 발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씨는 법정에 나가 당시 상황을 설명한 뒤 경찰관과의 대질심문을 요청했고, 한 달 뒤 재출두했으나 경찰관이 법정에 나오지 않아 결국 위반 딱지는 없었던 걸로 처리됐다. “지금 생각해도 그건 명백한 인종차별이었다”고 그는 주장했다.

김 경찰관은 웃기만 할뿐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말문을 열었다. 그는 “어찌됐든 경찰관 입장에서 답변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 뒤 “분명히 무언가 이유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답변이 이어졌다.

“한달 반 전 과속차량을 적발한 적이 있어요. 20대 초반의 히스패닉 남성이 운전자였는데 대뜸 ‘그렇게 할 일이 없어 날 잡았느냐’라고 비아냥거려 딱지를 안겨줬어요. 사전트는 본래 티켓 발부는 잘 하지 않는데도 말이죠. 경찰도 사람입니다.”

이번 제1회 한인시민경찰교실에 대한 수강생들의 반응은 전체적으로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우현애(62·브레아)씨는 “최근 부에나팍 경찰국에 채용된 아들 정훈(26)이를 남편이 못 마땅해 설득할 목적으로 수강신청을 했다”며 “내가 직접 듣고 보고 체험한 것을 이야기해 주니 지금은 남편의 불편한 심기가 많이 누그러들었다”며 기뻐했다.

최씨도 “이곳 현지 사정과 법 제도를 잘 몰라 한국식으로 모든 일을 처리해 알게 모르게 불이익을 많이 받고 살아왔다”며 “수업을 통해 이 곳 제도들을 정확하게 알게 돼 실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경찰을 바라보는 시각도 많이 달라질 것 같다”고 흡족해 했다.

네 번째 강의가 열리는 25일에는 OC 셰리프국 훈련장을 찾아 범인검거 때 운전법 및 사격 시뮬레이션 훈련을 수강생들이 받게 된다. 지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이면 언제든 참여할 수 있다. (714)690-3386 론 윌커슨 공보관 또는 테리 김 사전트.

<이오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