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한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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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한류(2)
  • 백동인
  • 승인 2005.08.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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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본 소고를 정리하며 문화제국주의에 대한 부정적 선견을 바탕으로 한류 현상이 일종의 ‘헐리우드 문화자본’의 혼혈 아류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논의를 전개해 가는 동안 한국문화의 순수성과 신명문화가 한류라는 네트워크 구조를 통해 역내 국가들의 행복한 해방공간 창출의 긍정적인 틀로 작용할 수 있음을 확신하고, 일단 문화상품으로서 성공적인 판매에 도달하기 위해서 수요자가 요구하는 할리우드 형식의 영상틀을 차용한 것에 관해서 제국주의의 아류이니, 할리우드의 복사판이니 하는 비판을 삼가게 되었다.

그러나 미국 할리우드와의 스크린 쿼터 전쟁을 통해서 치열하게 생존권을 지켜 온 한국영화를 예로 든다면, 한류는 앞으로 적자생존의 세상에서 고등 생물로 진화하기 위한 치열한 변이의 과정을 남겨두고 있다는 데서 여전히 그 앞 길에 험난한 파고가 예상된다고 말할 수 있다. 시작은 할리우드 영상기법의 복사판으로 출발하였기에 미국 문화자본의 하부 구조로 의심되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독자적인 문화 형질을 가지고 유라시아를 포함하는 범아시아 문화공동체를 구성할 것이냐 아니면 이전 주인이었던 세계 미디어 자본으로 유턴할 것이냐는 선택적 기로에 서게 되었다는 점에서 한류는 분명 할리우드의 거대 미디어 자본의 그것과는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류 이전에도 아시아권에 소위 ‘일류’ 열풍이 있었다. 한류가 ‘일류’와 다른 점은 한류 대상 국가들이 과거 타율적 근대 경험을 공유하고 있어서 문화 수용국으로부터 우리 문화상품에 대한 거부감이 ‘일류’에 대한 것 보다는 덜하다는 점일 것이다. 고생을 하고 살아 온 사람에게는 삶의 구석구석이 예사롭지 않게 관찰되듯이 고난으로 점철된 과거와 그것에 대한 생존 방식인,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와 같은 외래 이데올로기가 아닌 민족주의라는 우리식 삶의 저항 방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우리의 문화 코드가, 한류를 수용하는 범아시아 국가 들에게 감성만으로도 충분히 통할 수 있는 키워드로 통했다는 것이 한류 확산의 한 가지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을까.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호강을 누리고 살아왔기에 배고픈 이의 심정을 모르는 심정의 ‘일류’와 가난과 고난의 치열한 삶의 각축장에서 살아 생존해 와. 삶 그 존재 자체만으로 이웃에게 인생이 이렇다고 감히 설득할 수 있는 위치의 한류는 일단 그 출발점이 서로 완전히 다르다. 따라서 비록 문화상품의 형식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한류 이전 그 어느 국가도 이룩해 내지 못했던 범아시아 지역의 문화 공동체 구축이라는 미션의 자율적 요구를 우리 스스로가 우리에게 짐 지우게 된 것은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의 뜻 밖의 우리 안에 있는 도덕적 당위 때문이었으리라.

러시아에서 지속되고 있는 한류가 그 속도의 완만함을 인해서 한류 현상이 있다 혹은 없다의 논쟁이 있기는 하나 이 세상이 존재하는 한,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의 운동력은 계속 확대될 것이고 그 자본의 불순한 의도를 견제하는 효과적인 수단과 생존 법칙으로서의 지역문화의 가치지향성이 결국 우리 문화지리의 확장을 요청해, 우리 문화혈통의 독특성인 ‘신명문화’의 다이내믹함을 유라시아라는 새로운 간척지에 튼튼히 뿌리 내리게 할 것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프랑스의 역사지리학자 브로델은 천 년을 지속하는 ‘장기지속’의 역사 구조가 있음을 간파했다. 예외가 있기는 하나, 깊은 바다는 천 년이 이르기 전 해류의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역사도 그와 같은 것이다. 35년간의 식민지 경험과 반세기의 분단 경험 등이 우리 무의식과 뇌리를 누르며 평생 허리를 펴고 살수 없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것은 수 천년 혹은 수 억년을 기다려와 결국 인간의 지리정치와 지리경제의 구도를 운명적으로 결정지은 지리역사의 기다림에 비할 바 아닌 것이다. 지식시장의 순간적 선택을 잘못해 목을 매는 부류가 있기도 하나 그와 같은 ‘일상사’는 태양의 이글거림을 견디다 못해 잠깐 반짝거리다 일몰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대양의 찬란한 순간의 다름 아니다. 지리가 문을 닫으면 열 자가 없고 지리가 문을 열면 닫을 자가 없다. 자연과 지리 현상은 분명 선택보다 운명적인 요소가 더 큰 힘을 발휘한다. 그래서 문화현상의 보급은 인위적인 전략보다 진실한 접근이 필요하다. 그 가운데 기다림은 필수이다. 물론 그것은 체념이나 무위도식을 의미하는 뜻이 아니다. 반짝거리는 주식 시장의 초단타 매매와 같은 조급한 마음으로 한류를 평가한다면 그것은 비록 상품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으나 문화의 본질에 무지함의 다름 아니다.

거대자본의 문화 필터를 통한 세계적 이윤의 확장 가운데 비록 한류가 한 순간 도구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다고 한들 우리가 한류는 나쁜 경향이며 선택이라고 쉽게 말할 수 있는가? 역사와 세계의 방향, 그것이 문화라는 준거틀을 이용하든 그렇지 않던 간에 역사와 문화 규칙 내에는 ‘아프리오리’가 실재한다. 주체적인 반성 절차를 통해 스스로 방향을 잡아 갈 역량이 그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는 한류현상의 실재를 믿음과 아울러, 그 생명력의 온건한 순환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한류는 현재 유라시아의 지식인들로부터 한국의 대중문화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 대중문화 형식이 역내 국가의 모든 교류의 선두에 서게 될 것을 앞서 그 누군들 예상할 수나 있었겠는가! 비록 우리의 경제적 생존을 위해, 미국 미디어 자본의 옷자락을 붙잡고 필사적으로 장사 방식을 배워 출발한 것이지만 상품의 내용이 문화이고 , 우리 문화 상품의 내용이 분명 할리우드의 그것과 다른 한에 있어서 그것은 분명 평화의 메신저 역할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와 민간이 주도하는 한류의 전략이라는 것이 한류의 동기보다 시간적 기회성을 놓치지 않아야 된다는 데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으나 내 생각으로 적어도 러시아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순간은 영원을 창조하지 못한다. 그러나 영원은 순간을 창조할 수 있다. 러시아에서의 한류 전략은 이와 같아야 한다고 본다. 시급성보다는 신중함이 더 요구된다. 가벼운 대중문화의 터치보다는 내용과 무게를 갖춘 문화 형태의 접촉이 당분간 좋을 것 같다. 우리의 일상적 경제 구조 안에서도 얼마든지 한류를 보급할 수 있는 선택적 루트가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국가이미지 실태조사에서 외국인들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문화아이템으로 나타난 한국음식에 대한 축제를 개최할 경우 이는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러시아인들이 최고로 여기는 삼성이나 LG같은 프리미엄 기업들의 제품사용 설명서에 한국을 홍보하는 내용을 포함시키면 외국인들에 상품 이미지와 더불어 한국 국가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각인시킬 수 있다. 또 매일 인천과 모스크바를 운항하는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승객들이 기내에 늘 접하게 되는 ‘모닝 캄’이라는 기내 잡지에 재미있고 유익한 한국관련 기초정보를 고정적으로 담아내어 국가 이미지를 제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러시아 시장을 공략할 때, 문화마케팅을 주요한 전략의 하나로 사용하고 있는 삼성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이 작은 일에 성실함으로 임하면 문화는 우리에게 큰 것으로 대답한다. 문화 현상의 보급을 위해서는 전략보다 성실한 태도가 우선이다. 특별히 러시아인들 앞에서는 더욱 그렇다고 본다. 다음의 예는 한국의 대표적인 두 기업의 성공적인 한류 이미지 확산 과정을 스케치한 것이다.

남한면적의 171배가 넘고 거대한 천연자원과 수많은 고급두뇌들, CIS 형제국들을 합친다면 3억이 넘는 거대한 나라 러시아에 코리아 브랜드가 기세를 떨치고 있다. 이 들 기업의 이름은 곧잘 대한민국으로 호칭되어 코리아 브랜드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흔히들 러시아에 진출한 코리아 브랜드 가운데 삼성과 LG를 곧잘 한국 국가 이미지를 상징하는 쌍두마차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2005년 3월, 모스크바의 크레믈린 궁전 앞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매 2년 마다 러시아 내에서 활동하는 기업가운데 20개 분야의 최고를 뽑는 명예로운 러시아 국민브랜드 선정 TV 생방송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국민 브랜드는 러시아 상공회의소가 주관하고 일간지 ‘이즈베스티야’등 주요 언론사가 4만 6천명의 소비자에게 물어 선정하는 러시아 최고의 권위 있는 상이다. 이 날 행사의 압권은 선정된 회사의 발표 순서가 아니라 전 종목 20개 품목 중 5개 부문의 상을 휩쓴 국민브랜드 ‘코리아’에 대한 열기였다. 일개 국가가 전체 종목의 4분의 1을 석권한 것은 이 상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다.

이렇게 국민브랜드로 선정된 제품들은 향후 2년간 해당 국민브랜드라는 로고를 사용할 권리를 누리며 TV, 라디오, 고유 스티커 부착 및 여타 광고기업 선정 시 우선 순위를 부여 받는 등의 유형 무형의 특혜를 누린다. 이 상을 3회 연속 수상할 경우 국민브랜드 마크를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획득하게 되는데 우리나라의 삼성 컬러 TV가 전자제품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이 영예를 안았다. 이는 제품의 인지도에서 삼성에 앞서 있던 소니와 기타 세계 유수의 전자제품 기업들이 이루지 못한 과업으로 평가된다. 러시아 현지 보도에 따르면 러시아인의 50%가 한국 가전제품으로 집 안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1997년 한국의 IMF위기와 함께 모라토리움 선언의 상황이 도래하자 볼쇼이 발레단과 톨스토이 문학상, 그리고 테니스 경기 등에 문화 마케팅을 전개하던 삼성은 심각한 고민을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그것은 이를 계속 수행할 것인가 아니면 그 규모를 축소할 것인가 결정을 앞에 두고서이다. 장고의 과정 끝에 삼성전자는 한국식 의리를 가지고 그들 곁에 남기로 결심한다. 혹독한 기업의 고난을 통해서도 기업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삼성의 대의적 선택은 볼쇼이와 러시아인들의 가슴 속에 깊은 인상을 남겼다. 오래지 않아 삼성이 그들로부터 돌려받은 사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순수한 기업으로서의 삼성과 한국 브랜드와의 영원한 우정의 확인이었다.

1998년 8월, LG가 자사 확장 전략을 수립하고 브랜드샵 2호를 연지 7일이 지나지 않아 러시아 경제에 모라토리움의 폭탄이 터진다. 이러한 재난 앞에서 소니, 파나소닉 등의 굴지의 다국적 기업들이 사업 규모를 축소하고 속속 본국으로 철수해 돌아갔다. 그러나 LG전자는 그 때 까지 해오던 그대로 러시아 바이어들과 거래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 때부터 러시아인들은 다같이 LG전자를 향해서 "친구"라 부르기 시작했다. 위의 삼성과 LG의 성공적인 러시아 마케팅 전략은 오늘의 러시아 한류의 원천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적어도 대한민국이 순수한 의미에서의 삼성 혹은 LG공화국이다.

독일의 베를린 시내의 최첨단 주상복합단지인 포츠다머플라츠에 소니센터가 있다면 모스크바 시내 중심가에는 삼성의 디지털 제품 전시관인 ‘갤러리 삼성’이 있다. 브랜드 삼성의 최첨단 디자인과 기술을 선보이는 이 공간으로 인해 삼성 매니아들은 한국에 대해서도 역시 같은 고상하고 고급스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고 말한다.

모스크바 심장부의 크렘린 광장 앞에는 두 개의 다리가 놓여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다리의 이름을 물을 필요가 없다. ‘삼성교’ 혹은 ‘LG교’로 불리워도 무방할 정도로 이 두 기업을 알리는 광고물이 5m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 또한 러시아의 초기 시장 개방시, 러시아 시장의 잠재성을 모두가 의심할 때, 한국의 두 기업이 그들의 미래를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그들이 요구하는 대로의 광고비를 지불하고 묵묵하게 오늘을 기다려 왔기 때문이다. 이 다리의 위치는 모스크바에서 대단히 상징적인 위치에 놓여 있어서 많은 일본 기업들이 천문학적 광고비를 제안하며 광고 수주를 시도했지만 역시 거절당하였다. 역시 어려울 때 함께 했던 친구를 버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러시아측 설명이었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서 러시아 한류의 본질은 한국 기업의 공격적, 전략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한국 브랜드가 개선된 기업 한류이며, 러시아의 민족성은 그 특질이 가치지향적이고 정적이며, 공동체 지향적이어서 우리와 협력하기에 용이한 면이 많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물론 ‘대한민국 문화관광부’나 ‘한국 관광공사’와 같은 한국정부 기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국가 홍보 활동이 러시아식 한류 확산에 지적인 역할을 한 몫 감당했다는 점도 사실이지만, 무엇보다도 러시아 민족성 형질 안에는 우리와 공유가 가능한 여러 측면이 분명 존재하며 그러한 문화적 접촉을 위해서 몸을 던져 필사적으로 마케팅 활동을 전개해 막대한 이윤을 창출해 온 현지 진출 기업들로부터 배울만한 많은 시사점을 부여 받는다.

1998년부터 LG전자는 해마다 러시아 180여 개의 도시를 순회하면서 ‘LG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LG 요리교실’을 여는 등의 한국 문화 열풍을 주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서태지가 공연함으로 러시아인 1만 명이 모였다고 한국 언론이 대서 특필하였으나 ‘LG 페스티벌’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LG페스티벌은 해마다 지속적으로 행사가 지속 확대되어 왔고, 연간 최대 참여 인원 15만을 기록하는 등의 기적적인 기록을 창조해 내었다. ‘LG 페스티벌’은 ‘유명 가수 초청 공연과 ‘미스 LG 선발대회’, ‘LG 가라오케 경연대회’ 등 평범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 행사였지만 도시 축제가 부족한 내륙의 러시아인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갔고 이러한 LG의 노력으로 러시아어 버전으로 된 ‘LG 로고송’은 러시아인들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없을 정도의 애창곡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지난 해, 영국의 여론 조사 기관인 Simon Anholt와 미국의 GMI시장조사 회사가 공동으로 1만 명에게 설문을 묻는 형식으로 국가브랜드지수 조사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미국인은 무지하고, 이태리인은 풍취가 있고 영국인은 예의바르다’.는 결과가 산출되었다. 이를 통해서 본다면, ‘상품에 브랜드 네임 밸류가 있듯이 국가도 역시 브랜드와 고유의 이미지가 있음을 일반인들이 받아 들이고 있는 것이 확인된 셈이다.

한국은 러시아인들에게 수준 높은 문화국가의 이미지가 강하다. 아울러 아직도 사회가 역동적으로 변동 발전해 가는, 국가적 잠재력이 풍부한 젊은 국가로 인식되고 있다. 이와 같은 우리나라의 국가 브랜드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 상품을 거래하는 장사꾼으로만이 아닌, 순수 문화의 수호자요 교류자 역할을 자처한다면 우리가 러시아에서 얻을 수 있는 유형 무형의 수익은 우리 기대 이상으로 크게 상승될 것이 분명하다.

한류를 통한 문화교류를 통상협상차원이 아니라 문화수용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고 배우는 자세로 다가 선다면 한류는 지난 수 십 년간 섬으로 단절되었던 대륙과 남한의 관계를 생명의 교류 차원으로 진화시킬 것이다. 함석헌 선생은 우리 한국인의 역사가 흡사 갈보(창녀)의 역사 같다고 한탄했었다. 우리는 아직도 진정한 민족국가로 진화하지 못하고 전근대적인 분단 국가로 남아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도 넘친다고 하였던가, 남과 북, 동과 서의 우리 안에서의 치열한 접전은 오늘 우리 스스로 지체할 수 없는 에너지원으로 작동하고, 끝없는 우리 민족의 고난의 행보는 혼란과 무질서 대산 오히려 일정한 방향성을 낳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 자신감과 신뢰의 원천으로 활용되고 있다.

겸손하게 낮은 수준에서의 문화 상품을 갈고 다듬어서 종자 돈을 간신히 모아 러시아 대륙으로의 대장정을 시작한 한류의 미천했던 발걸음은 이제 세계적 문화 관계망의 구축이라는 문화 전도사로의 사명으로 다시 정제되었다. 협궤로 기안된 한국의 철도가 시베리아를 횡단해서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대륙간 횡단 철도의 형식인 광궤로의 구조변경 절차를 겪어야 한다. 마찬가지로 미국식 자본주의 논리의 한가지 논리로 세상을 강제하던 이데올로기적 시각은 대륙에 들어서기 전 우리 스스로 자발적으로 폐기해야 한다.

문화 상품의 러시아 선택은 시장의 선택이 아니라 운명의 선택이어야 한다. 여러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경주의 신라 초기 여섯 왕들의 무덤과 러시아 시베리아 지역의 분묘들을 비교해 보면 신통하게도 그 출토된 유물의 형식과 재질이 일치한다. 초기 신라의 지배계층이 바로 시베리아로부터의 이주민들이었던 것이다. 우리가 한반도로 이주해 온 역사로서의 2 천 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지만 자연지리가 겪는 2 천 년은 한 순간에 불과하다. 어쩌면 고분의 미천한 한 돌 조각보다 더 짧은 역사일 수 있다. 그 특수한 2천년 전, 우리 조상들(몽골-투르크족)은 대륙을 무대로 열 개의 대 제국을 건설했고 한 번도 노예로 살아 본 적이 없다. 전쟁에 패할 경우, 노예로 살기 보다 가족 몰살의 길을 택했다. 그 만큼 자존이 강했던 것이다. 대륙을 호령하던 그 유목민의 고향으로 우리는 이제 바야흐로 돌아갈 길목을 얻었다. 우리와 러시아의 문화 접촉은 잃어버린 고향, 어머니의 자궁 같은 대륙에의 접촉 경험이다.

지금의 러시아인들이 우리의 어머니이고 옛 고향 친구일리는 없지만, 그 자연의 숨통으로부터 호흡을 받아 그들이 그곳에서 뿌리를 내린 한에 있어서 우리 안에는 공통의 문화 유전자의 형질이 남아있을 것이다. 자세히 서로를 설명하지 않고도 느낌 만으로 우리는 문화 감성 만으로 한 울타리를 이루며 다양한 미적 가치의 행복한 결합을 함께 이루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일국 대중문화의 세계적 확산에 대해 ‘문화제국주의’라고 비판하고 견제하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것은 세계 중심부의 문화가 주변부 문화에 대해 제국주의적인 지배의 흐름을 갖는다는 분석틀이다. 문화제국주의는 ‘문화종속’이나 ‘미디어 제국주의’와 같은 여러 가지 표현을 가지고 있으나, 일반적으로 자본과 군사력을 갖춘 몇몇 국가가 권력의 중심부에서 밀려나있는 저발전국가를 문화를 통해 효율적으로 통제한다는 ‘종속론’에 초점을 맞춘다.

초국적 문화산업이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문화산업의 목표는 문화상품을 세계 배급체계를 통해 널리 확산시키는 것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국제적 살포라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상품으로서의 형식이 우선이고 판매 신장을 위해서 문화를 그 내용으로 끼워 넣는다면 우리는 미국의 헐리우드나 일본인의 경우에서와 같이 우리 문화의 순수성을 의심받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화 혹은 문화공동체가 우선하고 그 다음 문화 공유 코드로서의 문화의 상품화 과정을 기안한다면 그 누구로부터 그 보편성의 부당함을 지적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지난 한 세기 동안 러시아의 문화를 규정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점차 소멸해가고 있는 러시아는 지금 자신이 과연 누구인가를 놓고 정체성의 혼돈 상태에서 새로운 방향 모색에 분주하다. 끝이 보이지 않는 국경과 그 안에 산재한 수십 민족 문화가 공존하는 러시아가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대국가를 구성하고 끔찍한 역사의 도전에 직면해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그들만의 특별한 문화적 기질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바로 예술은 러시아를 지탱하는 버팀목이었다.

전통적으로 러시아인들의 민족적 정체성의 이슈는 러시아가 과연 '서구', 혹은 '동양'에 속하는가, 아니면 이 양자의 어떤 새로운 결합인가라는 구도와 시간적인 대조, 즉, 오래됨과 새로움이라는 대립항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다. 그 가운데‘예술’은 어느 경우를 막론하고 민족적 정체성의 주요 원천으로 기능한다. 자유로운 의사소통의 출구가 없이 귀족과 농노라는 상호 적대적인 두 계급 사이에 끼어 있던 러시아의 예술가들은 그 어느 나라에서보다 더 큰 박해를 받았으나 고난의 순간마다 그들은 문학과 예술의 창조적 표현을 통해 자신의 문화와 민족 공동체를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러시아인들은 미술, 발레, 음악 그리고 문학 등을 통해 억압을 해소할 수 있는 탈출구를 찾았다. 그들은 작품 속에서 러시아의 민족적 정체성을 늘 이분법으로 그려내곤 했지만 때로 이항 대립의 자리바꿈 현상도 용인했다. 극과 극은 러시아의 상황에서 확실히 하나로 통한다고 했던가. 러시아 역사의 어떤 극단적 상황에서도 이러한 대립 쌍들은 서로 배타적으로 대치되는 점에 있다기 보다 한가지 선의 연장으로 파악되곤 한다. ‘플러스’와 ‘마이너스’, ‘선’과 ’악’, ‘우리’와 ‘그들’ 같은 각각의 ‘동적’ 혹은 ‘정적’ 가치의 이항 대립이 상황에 따라서는 서로 자리바꿈하는 현상이 생겨나곤 하는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그래서 누구든지 종교적이고 아울러 자유 분망하고, 개인적 가치를 지향하면서 아울러 공동체적이다. 그들 문화는 분명 한류를 향해서 열린 창이다. 그들 안에는 분명 동양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 문화와 한류는 함께 아름다움의 보편성 안에서 대륙이라는 상징적 공간을 창조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의 문화 제국주의 혹은 미디어 제국주의와는 그 동기와 가치가 완전히 다른 지역 문화 공동체의 구체적 실행과정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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