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쿠바 정착 동포 후손 `남북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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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쿠바 정착 동포 후손 `남북은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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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8.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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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2005-08-11 21:08]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몸은 처음이지만 마음은 항상 고국에 머물렀다. 아침에 일어나면 고국을 찾는 꿈을 하도 많이 꿔 피곤할 지경이었다."

100년 전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이민했다 일자리를 찾아 쿠바로 재이주한 동포 후손인 에스테반 곤살레스 안(84)씨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고 감격해 하며 첫 방한에 대한 소감을 밝혔다.

지팡이에 몸을 의지할 정도로 거동하기가 불편하지만 안 할아버지는 또렷한 정신으로 "고국이 잘 살아서 한편으론 가슴 뿌듯하지만 한편으론 가슴에 가시가 박혀있다"며 "그 이유는 북한 사람들 때문"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는 인터뷰 동안 스페인어로 말했지만 `가시'와 `감사한다'는 말만은 한국말을 썼다.

그러면서 그는 남한도 하루 빨리 쿠바와 수교를 체결해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진정으로 수교를 원한다. 할아버지가 고국을 떠나올 때 처럼 또다시 하나의 한국이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강조했다.

안 할아버지는 "쿠바 사람들은 한국인을 보면 중국인 이냐고 먼저 묻고, 아니라고 말하면 북한 사람 이냐고 다시 묻는다"며 "이같은 일이 앞으로는 없었으면 하는 것이 쿠바 한인들의 소원"이라고 전했다.

그는 쿠바 아바나에는 한국인 12가족 정도가 살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일 민족인 북한 사람과 자유스럽게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한국 음식을 나눠 먹는 날을 보고 눈을 감고 싶다는 그는 "쿠바 한인들의 한(恨)을 고국이 좀 풀어달라"고 간곡하게 말했다.

봉제공장 관리인인 그는 한국인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멕시코에서 쿠바 등 인근 국가로 진출했다며 우리 한인들의 이주사는 눈물 없이는 말할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증언했다.

그는 "우리집에선 한국말만 썼다. 한국이란 언제나 그 곳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 대해서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며 "우리는 새로운 소식을 듣거나 다른 사람들과 연락을 위해 한 달에 한번씩 모였다"고 조부를 따라 쿠바로 갔을 당시를 회상했다.

"아바나 한국인협회의 회원은 초창기 우리 가족이 전부였다. 3.1절과 설엔 항상 모여 태극기와 쿠바 국기를 게양하고 행사를 했다"며 "쿠바 국경일에도 태극기를 들고 나가 행사에 참가했다"고 밝혔다. 안 할아버지는 자신의 집 주소가 곧 한국인협회 주소였다고 덧붙였다.

쿠바 한인들은 초창기 살기 힘들었지만 고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가족마다 2센타보씩 모아 보냈다. 이들의 평균 일당은 35센타보 정도였다.

북한 사람과 얘기할 기회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남북한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 한국인"이라고 말하며 남북한을 자꾸 떨어뜨려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오히려 부탁했다.

안 할아버지는 11일 재외동포재단(이사장 이광규) 초청으로 방한해 1주일 간 꿈에도 그리던 고국을 돌아보게 된다.

ghwang@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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