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부인 토막살해 英남편 형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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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부인 토막살해 英남편 형량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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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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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할 수 없다"..한인 사회 술렁

(런던=연합뉴스) 이창섭특파원 = 한국인 아내를 주먹으로 때려 살해하고 전기톱으로 9토막을 내 사체를 유기한 영국인 남편에게 징역 5년이라는 가벼운 형이 선고돼 한인 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28일 재영한인회와 주영한국대사관, 교민들에 따르면 영국 형사법원은 지난 26일 한국인 아내 강모(38)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폴 달튼(35)에게 '과실치사' 죄를 적용해 징역 5년형을 선고했다.

한인회 관계자는 "아내를 때려 죽이고 사체를 토막냈지만 범인은 1년 반이면 자유의 몸이 된다"며 "한국인의 법감정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졌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영국에서는 재소자들이 형기의 절반 정도를 채우면 풀려나는 것으로 전해졌다. 달튼은 재판 과정에서 1년 정도 구금됐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1년 반 정도만 형기를 채우면 석방된다.

▲사건 발생 = 달튼이 아내 강씨를 살해한 것은 지난해 5월이었다.

부부 싸움을 벌이던 중 아내의 안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아내 강씨는 턱뼈가 부서졌고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가 목으로 넘어가 기도를 막아 질식사했다.

달튼은 아내를 때린 뒤 곧바로 경찰에 연락할 수 있었지만 쓰러진 아내를 며칠씩 거실에 방치한 채 사건은폐를 시도했다.

더 타임스, 가디언 등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달튼이 곧바로 구급차를 불렀다면 강씨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달튼은 사건 은폐를 위해 사체를 토막내기로 결심했다.

전기톱과 냉동고를 구입한 뒤 사체를 9토막 내 냉동고와 집안에 있던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했다.

달튼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관련 증거를 은폐하고 2주 뒤 일본으로 도주했다.

법정에서 달튼은 아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것으로 꾸미려고 사체를 토막내기로 결심했다고 밝혔다.

일본으로 숨어들었던 달튼은 작년 6월 경찰과 가족, 친지들의 e-메일을 받은 뒤 자진 귀국해 체포됐으나 '살인' 혐의를 부인해 왔다.

▲재판 과정 = 달튼은 경찰 조사와 재판 과정에서 가해자는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억척스런 한국 여자'였던 강씨였다는 진술로 일관했다.

달튼은 1994년 서울에서 강씨를 만났다. 그는 아내 강씨가 처음부터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독한 여자'였다고 주장했다.

달튼은 법정에서 "그녀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가져야 했다. 나도 아내가 무서웠고 모든 사람들이 아내를 무서워했다"며 결혼 이래 계속해서 아내의 언어폭력과 비웃음, 조롱에 시달렸다고 말했다.

살해사건 당일에도 부부싸움을 벌이다 강씨가 가족 사진을 찢고 욕을 하며 모욕적인 언사로 달튼을 괴롭혔다는 것.

달튼은 아내 강씨가 "다른 남자와 잤다. 당신과 결혼한 것은 사랑 때문이 아니라 비자 때문이었다"는 말로 모욕했다며 법정에서 눈물을 흘렸다.

달튼은 "나를 죽여라. 나를 죽여라(kill me. kill me)"며 대드는 강씨의 목을 조르다 부지불식간에 주먹을 날렸으며 강씨를 죽일 의사는 전혀 없었다고 진술했다.

배심원들은 23일 열린 결심 공판에서 1시간도 채 되지 않은 짧은 협의 끝에 달튼이 살해 의사가 없었기 때문에 '살인죄'가 아니라 '과실치사'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평결했다.

재판장은 과실치사죄로 2년 징역, 사체를 유기해 장례를 방해한 죄로 3년 징역형을 각각 선고했다.

▲주변 환경 = 강씨는 94년 서울에서 달튼을 만나 교제를 시작했으며 99년 부모에게 알리지 않은 채 결혼했다.

강씨와 달튼은 한인 밀집지역인 런던 교외 킹스턴 지역에서 영어학원을 운영해 왔다.

강씨는 입을 것, 먹을 것도 챙기지 않은 채 억척스럽게 일만하며 살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교민사회와도 접촉을 기피한 고립된 생활이었다.

반면 달튼은 소심하면서도 인생을 유유자적하는 스타일인 것으로 알려졌다.

달튼은 영어학원에 영어를 배우러 온 한인 여성 2명과 성관계를 맺었으며 학원에서 일하던 한인 여성 백모씨와도 불륜관계에 있었다. 달튼이 운영하던 학원은 주재원 부인, 기러기 엄마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이었다.

▲한인 사회 반응 = 재판 과정을 참관한 한인 관계자들은 달튼의 변호사가 시종일관 강씨가 '비자를 얻기 위해 결혼한 매정한 여성'이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언어 폭력과 조롱으로 남편을 학대한 여성이었다는 것이 주된 논리였다.

학대에 시달리다 못해 우발적으로 휘두른 주먹이 살해로 이어졌다는 변호인들의 주장을 배심원단은 전적으로 수용했다.

하지만 한인들은 "문화적 차이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재판이 진행됐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재판을 참관한 한 한인은 "피해자측 증인은 단 한 명도 없이 달튼 측 증인들만 세운 채 재판이 끝났다"며 "억울한 죽음이 다시는 없도록 한인회와 대사관이 힘을 모아 재심을 청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6개월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한국인이 비자를 얻으려고 결혼하려 했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없다는 지적이다.

한인들은 28일 오후 한인회 사무실에서 종교계, 한인회, 대사관 대표 들이 참석한 가운데 대책을 협의하기로 했다.

촛불시위라도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지만 새로운 증거가 나오지 않으면 재심을 하지 않는 영국 법 관행으로 미뤄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cs@yna.co.kr 
(끝)

등록일 : 07/28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