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고향이니까 가고 싶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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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고향이니까 가고 싶은 것입니다"
  • 연합뉴스
  • 승인 2005.07.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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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 좌절된 블라디보스토크 거주 중국동포들

(블라디보스토크=연합뉴스) 김병조 기자 = "한국은 고향이니까 가고 싶은 것이오. 어딜가도 고향 말이 통하는 곳이니까…"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는 또 하나의 우리 민족인 중국동포들이 살고 있다.

중국 동령현에서 태어난 중국동포 이동윤(45)ㆍ조화춘(42.여)씨 부부는 가난을 견디다 못해 일자리를 찾아 지난해 11월 말 러시아로 건너왔다.

중국에서 농사를 짓는 것으로는 아들(20)의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던 이 부부는 학비 마련을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된 것.

원래 한국에 가려고 이곳 저곳에서 돈을 빌려 이들에게는 거액인 8만위안(약 1천만원)을 마련했지만 브로커에게 속아 돈만 날리고 한국행이 좌절된 채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궁여지책으로 러시아로 흘러온 이들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시 외곽의 허름한 가건물에서 같은 처지의 동료 4명과 함께 험난한 이국생활을 시작했으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나라에 온 이들은 겨울 혹한 속에서 3개월간 건설현장 노동자로 일했지만 조선족 작업반장이 이들의 임금을 몽땅 챙겨 달아나는 바람에 아들이 학교를 중단해야 하는 위기를 맞았다.

월 500달러를 받기로 했던 이들은 동전 한푼 받지 못해 빈털터리가 됐으며 마지막 선택으로 고향의 친척들에게 선대(미리 대출받은 돈)를 빌려 아들의 학비를 가까스로 댔다.

러시아 연해주에는 이 부부처럼 한국으로 가려다 실패하고 러시아에서 돈벌이를 하는 중국동포가 적지 않다.

중국동포들은 생계를 잇기 어려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하는데 특히 한국 입국은 절차가 까다로워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

한국에 친척이 있는 중국동포는 정상적인 수속비 4천위안만 내면 한국을 방문할 수 있지만 연고가 없는 경우에는 브로커에게 중국돈 8만위안을 내야만 한국에 갈 수 있다는 게 이들의 전언이다.

이씨는 "일반인이 쉽게 구할 수 없는 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행을 포기하고 상대적으로 비자 받기가 수월한 러시아를 선택하게 된다"며 "이곳에도 우리 같은 처지의 중국동포가 많다"고 전했다.

아들 학비를 마련하고 밀린 빚을 갚으려고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꼬박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이씨는 "언젠가는 고향에 꼭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돼지굴이 중국의 방보다 좋다'는 말이 있습니다. 주변에 '한국에 가서 사기를 당했다'는 말도 종종 듣지만 그래도 고향땅이니까 가보고 싶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국적을 포기하는 사람도 많다는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침묵했던 이씨는 '한국을 왜 그렇게 가고 싶냐'는 질문에 "당연히 고향이 제일 좋은게 아닌가요"라며 반문한다.

하지만 이씨는 곧 "나라면 한국국적을 갖겠소. 돈 때문에 국적을 포기하는 일이 있는 모양이지만 돈보다는 고향이 좋소"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씨는 "나는 물론이고 우리 부모님도 한 번도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했지만 그냥 그립고 가고 싶은 곳이 고향"이라며 "언젠가 한국에 가서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일할 때면 지루함을 잊기 위해 한국 트로트를 틀어놓는다는 이들 부부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는 허름한 판잣집에 앉아 '그리운' 한국의 노래를 구성지게 불러 한국 땅을 밟고 싶은 염원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충분히 짐작케 했다.

   cimink@yna.co.kr
  (끝)

등록일 : 07/28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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