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 유가족회 서정길 회장
상태바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 유가족회 서정길 회장
  • 부산일보
  • 승인 2005.07.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부산일보 2005-07-20 12:12]
지난 주말 러시아 사할린에 사는 한 재러동포가 일본 기타큐슈를 방문했다.

사할린주 유즈노사할린스크에서 수산 관련 일을 하는 '사할린주 한인 이중징용광부 유가족회' 서정길(60) 회장이다.

그가 찾은 곳 은 기타규슈 인근의 지쿠호(筑豊) 탄광지역. 그의 부친이 강제노 동을 하다 사망한 곳이다.

서 회장에 따르면 사할린에는 이중 강제징용 희생자들의 유가족들 이 다수 살고 있다.

이중 강제징용 희생자들이란 제국주의 일본에 의해 러시아의 사할 린으로 끌려갔다가 일본의 패전이 임박한 1944년 또다시 일본 규 슈 등지의 탄광으로 끌려가 생사도 모르게 된 사람들을 말한다.

서 회장의 부친 자근씨는 지난 1942년 한국의 고향에서 사할린의 탑로(塔路) 탄광으로 끌려갔다.

자근씨는 이듬해에 가족을 사할린 으로 불러 함께 살았지만,사할린으로 끌려간 지 2년 만인 지난 19 44년 8월 일본의 긴급 재징용 조치로 사할린에 가족을 남겨둔 채 다시 규슈로 끌려갔다.

그는 규슈에서 일본의 패전을 맞았고 1973 년에 사망했다.

부친이 사할린에서 규슈로 떠난 지 3개월 후 유복자로 태어난 서 씨는 아무런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부친의 행적을 모르고 지냈다 . 그러다 수년 전 자근씨와 함께 일본으로 재징용됐던 한 징용 희생 자의 유가족이 갖고 있던 서류에서 부친의 행적을 발견했다.

그 유가족의 부친은 옛 히라야마 탄광에서 탄광매몰 사고로 숨졌는데 ,당시 그를 위해 부조를 했던 한국인 동료들의 명부 중에 자근씨 의 이름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서씨는 이번 방문 기간 중 기타큐슈의 한 보건소에 보관돼 있는 낡은 명부에서 부친의 이름 석자를 찾아냈다.

그러나 살아있다면 101세가 될 부친의 생사여부나 유골 등은 결국 확인하지 못했다.

서씨는 "한국과 일본,러시아 등 어느 곳에도 이중 강제징용 희생 자들을 위한 위령비가 하나도 없다"면서 "유가족들이 제사라도 제 대로 지낼 수 있도록 사할린에 위령비가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말 했다.

유가족회 회원의 현지 방문을 도와 온 재일한국인 2세 배동록(62) 씨는 "제국주의 일본은 한국의 젊은이들을 일본인이라며 사할린에 보내 탄광 일을 시켰지만 패망 후 이들의 귀환에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면서 "이중 강제징용 희생자 유가족의 가족 흔 적찾기는 지금부터가 시작인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일제는 1905년 러-일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사할린 땅을 할 양받았다.

일제는 이 땅을 개발하기 위해 수많은 한국인들을 징용 ,탄광과 벌목장,펄프공장 등에 투입했다.

일제 패망 당시 사할린 에는 4만3천명의 한인들이 있었고,지금도 약 4만명의 동포들이 살 고 있다.

1944년 8월 일본의 재징용 조치로 사할린에서 일본으로 끌려온 한 국인은 약 3천명. 대부분이 남한 출신이다.

후쿠오카=최용오기자 choice@busa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