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한국인 1호 기자, 이사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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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 한국인 1호 기자, 이사빈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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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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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통신사인 시파(SIPA) 프레스의 문화부 책임기자였던 이사빈 씨가 3년만에 고국을 찾았다.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프랑스 통신사인 시파(SIPA) 프레스의 문화부 책임기자였던 이사빈(67.여)씨가 3년만에 고국을 찾았다.

   여성가족부가 지난 5일부터 개최하는 제5회 세계한민족 여성네트워크 참가차 방한한 이씨는 지난 70-80년대에 걸쳐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이유진(66)씨의 부인이며 그 자신도 고국의 민주화를 위한 길에 동참했다.

   1980년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으로 투옥됐던 김 대통령의 석방운동에 참가해 당시 르몽드, 리베라시옹 등 현지 언론에 이 사건이 게재되도록 뛰어다녔다.

'빠리 망명객 이유진의 삶과 꿈'의 저자인 남편 이유진씨는 아직 그 진상이 밝혀지지 않은 1979년 '한영길 사건'과 관련해 무고하게 북한공작원으로 몰려 프랑스 파리에서 망명객으로 살아왔다.

이 사건은 코트라(KOTRA)의 파리무역관 부관장이자 이씨의 대학 후배로 반정부적 성향을 보였던 한영길씨가 가정불화로 부인이 센강에 투신자살한 뒤 문책성 소환을 당하게 돼 정치적 망명을 시도했으나 중앙정보부원에 붙잡혀 서울로 압송된 사건. 당시 중정은 한씨의 기자회견 등을 통해 이씨가 한영길씨와 그의 딸을 납치해 파리 주재 북한 통상대표부로 데려갔다고 발표했다.

워낙 유명해진 남편 때문인지 이씨는 6일 "기사를 작성할 때 남편과 자신을 한꺼번에 혼합해서 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이씨는 우선 내년 한ㆍ불 수교 120주년과 불ㆍ한협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2006년 6월 4일 프랑스 상원 내 룩상부르크 공원에서 열 계획인 '평화의 공' 행사에 대해 소개했다. 그는 불ㆍ한협회 부회장이다.

이씨는 "프랑스 상원의 후원으로 열리는 이 행사는 파리 한복판에 평화의 풍선을 띄우고 그 아래서 강강술래와 탈춤 공연, 태권도 시범을 하는 등 한국관련 행사를 여는 것"이라며 "평화의 풍선에는 유니세프(UNICEF)가 제공한 남북한 어린이 그림 600여 점이 채워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이 행사를 한국 정부가 지원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내 한 인터넷신문을 통해 장애인을 철창에 가둔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놀랐다는 그는 "프랑스의 지한파들은 한국은 인정 많은 나라인데 장애인에게는 인정을 베풀지 않는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며 "국내 장애인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겠다"고 계획을 밝혔다.

자신도 장애인 아들(24)을 둔 이씨는 장애인과 관련한 책 '어떤 스테판의 밝은 날들'을 집필 중이며 이번 한민족 여성네트워크 행사 때도 한민족 여성들에게 직접 제작한 동영상을 보여줄 계획이다.

여성의 권리와 인권에 대해 이씨는 "남들이 못하는 일 해 놓으면 누구도 밟을 수 없다. 그러면 여성 권리는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것"이라며 리더는 앞서 나가는 사람을 챙기는 것이 아니고 뒤에 처져 못 따라오는 사람을 보살핀다. 장애인을 잘 보살피는 것이 리더의 자질을 갖추고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구에서 출생한 그는 1962년 오스트리아대학에 유학했다가 1963년 프랑스 파리로 갔고 그해 결혼했다. 1968년부터 20년 간 파리 로베르아퐁 출판사에서 근무하다 1989년 시파 프레스에 들어가 프랑스 정부로부터 프레스카드를 받은 첫 한국인이 된다.

그는 "남편과 가족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길은 프레스카드를 받는 길밖에 없었다"고 술회했다.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활약하고 있는 그는 '세계 차(茶)문화', '한국 요리책' 등을 출간했으며 한민족의 한(恨)사상에 대한 논문 발표와 함께 대학 강단에 서기도 했다.

북한 룡천참사 당시 '북한 어린이 돕기 한마음 콘서트'를 주관해 얻어진 수익금 전액을 룡천에 보내기도 한 이씨는 "참전용사와 참전 언론인 등으로 구성한 불ㆍ한협회에서 북한을 지원하는 모금운동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이들을 설득해 콘서트를 열었다"고 말했다.

프랑스 FT-2 방송과 개고기 논쟁을 펼치기도 했던 그는 배우 브리지드 바로드는 물론 '개고기'를 통해 한국을 비하하려는 프랑스 지식인들을 설득하려 나름대로 애를 썼다.

그는 기자 생활 중 프랑스 혁명 200주년 행사와 빅토르 위고 탄생 200주년 행사 때 각각 700여 건의 기사를 세계 45개 언론사에 공급하는 총편집장을 맡았던 때가 가장 보람찼다고 회고했다.

그는 올 초 유공동포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ghwa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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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록일 : 07/06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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