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방패의 국적포기와 15만명의 재일 무국적동포들
상태바
인간방패의 국적포기와 15만명의 재일 무국적동포들
  • 김제완
  • 승인 2003.04.2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라크 바그다드와 요르단 암만에서 인간방패 등으로 활동했던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 소속 배상현씨와 임영신씨가 4월3일 네덜란드항공편으로 입국했다. 이들은 귀국 직후 인천국제공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라크 현지의 민간인 피해가 심각하다"고 호소하면서 "정부와 국회의 파병결정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대한민국 국적을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계기로 네티즌들 사이에 국적 포기 발언을 둘러싸고 찬반 여론이 일고 있다. 한국의 현행 국적법상 국적을 포기하기 위해서는 두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이중국적 상태일 경우 다른 나라의 국적을 선택하면 국적법상 '국적이탈'의 요건이 성립된다. 또는 다른 나라 국적을 취득한 경우에는 '국적상실'의 요건에 처하게 된다. 그러므로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한 인간방패들은 다른 나라에 망명을 하지 않는 한 사실상 국적 포기가 불가능하다. 이처럼 어느 한 국가의 소속이 없이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수십년동안 국적이 없이 무국적상태로 사는 동포들이 있다. 15만명에 이르는 재일 조선적(朝鮮籍) 동포들이다. 우리 민족의 일원이면서 남 북한 어느 쪽의 국적도 가져보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누구인가.  

  조선적이라하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속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중국의 조선족과 말만 비슷할 뿐 전혀 역사적 태생이 다르다. 이들은 휴전회담 당시 남과 북을 다 거부하고 중립국을 선택한 반공포로들과도 다르고 국가가 없이 이라크와 터키국경에 중심으로 퍼져 살고있는 쿠르드족과도 다르다. 이들은 식민과 분단이라는 고단한 우리의 현대사가 만들어냈다. 역사속으로 사라진 나라 조선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사실에 가깝다.  그래서 재일조선적 동포들은 역사가 멈춘 민족이다.

이들은 한국정부에 의해 현재 친북 또는 총련 지지자로 규정돼 입국하지도 못한다. 한국정부의 공식 통계숫자인 재외동포 570만명에 포함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들의 90%가 한반도 남쪽 출신이며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일제 말기에 240만명이 징병과 징용으로 일본에 머물러 있었다. 이중 이념으로 분단된 남과북 어느 한쪽도 선택하지 않은 60만명이 일본땅에 남아 있었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국적자였으나 일본정부는 패전뒤 이들의 일본국적을 무효화시켰고 일괄적으로 조선국적을 부여했다. 조선반도 출신이라는 하나의 기호였다.

재일조선적 동포사회는 65년 한일협정으로 또다른 분단이 시작됐다. 이후에 조선적 동포들중에 한국국적을 취득한 한국국적자와 조선국적자로 나뉘게된 것이다. 그리고 분단의 대리전을 치루게 되었다.

재일 조선적 동포들은 해외에 나갈 때 여권대신 일본정부에서 발행하는 재입국허가서를 들고 다녀야 한다. 해외에서 어떤 일이 있을 때 그들을 보호해줄 국가가 없다. 이런 수많은 불편을 감수하면서 그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강제징용 당시에 갖고 잇던 국적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

기자가 빠리에서 만났던 조선적 출신 여성의 경우, 민족학교 미술교사를 하다가 프랑스 유학을 나오는 데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미국에 있는 친지를 만나러 가기 위해 미국 비자를 받으려했으나 번번히 거부당했다.

  국적 포기를 선언한 인간방패들은 무국적의 아픔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적포기선언은 단지 상징적인 항의의 언사로 보인다. 이라크전도 끝난 이때에 인간방패들이 이루지 못한 무국적과 무국적 동포들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하고 싶다. 8.6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