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동포 애환 서린 ‘서울속 옌볜’
상태바
중국동포 애환 서린 ‘서울속 옌볜’
  • 조선일보
  • 승인 2005.04.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재개발 확정… 내년 상반기부터 철거 쪽방 절반 텅 비어…식당·상가 썰렁

[조선일보 2005-04-19 19:20]     

첨단 디지털단지로 변신 중인 옛 구로공단 뒤편 공단오거리. ‘서울 속의 옌볜(延邊)’이라 불리는 구로구 가리봉동 차이나타운이다. ‘구룡찬정(九龍餐亭)’ ‘연변구육관(延邊狗肉館)’ ‘금단반점(今丹飯店)’ 등 한자나 중국식 간자(簡字)로 쓴 간판들이 빌딩마다 걸려있고, 행인들끼리 중국어로 대화를 나눈다. 차이나타운이 요즘 존폐의 위기에 봉착했다. 먼저 구로구 일대를 휩쓰는 개발바람이 차이나타운까지 들이닥치고 있다. 옛 구로공단의 굴뚝공장은 고층빌딩으로 바뀌었고, 개발계획에 따라 인근 구로동 일대 쪽방 500여호도 이미 헐렸다. 마지막 남은 미개발지역인 가리봉동 일대 역시 지역균형개발촉진지구로 지정돼 이르면 내년 상반기부터 철거가 시작된다. 서울시와 구로구는 이곳에 호텔이나 컨벤션센터, 오피스텔 등을 지을 계획이다. 또 법무부가 지난 3월 “불법체류 중국 동포들이 자진 귀국하면 일정기간 후에 재입국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고 발표한 이후 불법체류자들이 속속 짐을 싸 한국을 떠나고 있다. 이 바람에 요즘 가리봉동 일대 쪽방 중 절반 정도가 비었다. 가리봉시장 김용인 상우회장은 “4∼5개월씩 가게세가 밀려 있는 상점이 태반”이라며 “IMF 때보다 더 힘들어 지난 설에는 행사도 못 가졌다”고 말했다. 가리봉시장을 중심으로 차이나타운이 형성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구로공단이 경쟁력을 잃자 한국인 노동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대신 3만여명의 중국 동포들이 그 빈자리를 메운 것. 그들의 입맛과 향수를 자극하는 중국 본토식 음식점과 중국 노래로 가득찬 노래방, 중국행 수하물 전문취급소 등이 하나 둘 생겨나면서 자연스럽게 차이나타운이 형성됐다. 현재 가리봉시장 일대 1100여개 상가 중 100여곳 정도는 ‘중국 동포 사장님’이 운영하는 가게고, 손님 중 80% 정도는 중국 동포다. 한국인과 중국 동포들이 부대껴 살아 애환 서린 사연도 많았다. 목욕탕 때밀이로 번 돈 300만원을 한국인에게 사기당해 날리고 하루아침에 폐인이 됐다든지, 브로커에게 수백만원을 주고 불법입국했다가 단속에 걸려 한 달 만에 추방당했다든지 등등이다.

‘성공 신화’도 있다. 청과시장 입구에서 중국식 만두집을 꾸려가는 오순일(여·53)씨는 1995년 무단장(木丹江)에서 한국으로 건너온 후 강남의 고깃집에서 7년을 일해 모은 퇴직금으로 지금 가게를 차렸다. 고향의 맛을 살린 덕에 저녁이면 중국 동포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유명한 가게가 됐다. 김씨는 “열심히 일한 덕분에 중국에 살고 있는 자녀들도 다 키우고 교사로 일하던 남편도 한국으로 건너와 국적을 취득했다”며 “이 모든 일이 대한민국 덕분에 가능했다”고 했다.

현재 주민과 상인들이 개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살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할 뿐이다. 일부에서는 중국 동포들이 모여살 수 있는 소형주택촌 구상도 나온다.그러나 구로구 관계자는 “현재 디지털 1∼3단지에서 외국인 바이어를 상담하거나 생산품을 전시할 공간도 제대로 없어 개발이 시급한 형편”이라며 “차이나타운 일대는 이미 슬럼화돼 보존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최규민기자 [ min4sally.chosun.com])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