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에서 '우승열패'까지의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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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에서 '우승열패'까지의 박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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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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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자
[연합뉴스 2005-04-20 06:16]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아랫것들'이 참정권을 요구하자 광무황제 고종은 다음과 같은 말로 단칼에 묵살했다. "백성은 통치의 대상일 뿐이노라."

19세기말 사정이 이럴진대 그 이전 한반도 사회에 '민족'이 있을 수 있겠으며 우리 모두는 단군의 자손이라는 '동포' 의식이 가당키나 한 소린가.

하지만 줄기차게 제기되는 탈민족주의 외침은 번번이 묵살된다. '민족'이라는 용어, '동포'라는 말이 19-20세기 교체기의 발명품이라고 할지언정 그런 개념은 그 이전 전통시대에도 존재했노라고. 그러나 이는 거짓말이거나 그에 가깝다.

민족은 그 용어는 물론이고 개념도 19세기 이후 발명품이거나 수입품이다.

이 땅, 소위 한반도에서 나고 자란 사람을 같은 민족, 같은 겨레라는 집합명사로 간주하는 지금과 같은 관념은 전혀 없었다. 당장 조선시대만 해도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양반이냐 아니냐, 양반이라면 어느 가문 소속이냐가 중요했지, 우리 모두는 한 핏줄이라는 의식은 존재할 구석은 거의 없었다.

왕(王)과 신(臣)이 갈라졌고, 왕과 신을 아우른 관(官)과 민(民) 사이에는 결코 건널 수 없는 또 하나의 거대한 심연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런 분절화한 신분제 사회에서 그 사회 구성원 모두(노비나 양반, 나아가 왕까지 포함해)가 '동등한' 구성 분자들이 참여해 구성하는 민족이라는 관념이 끼어들 여지가 있겠는가.

197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출생. 한국 귀화. 현재 노르웨이 국립오슬로대 교수. 이제 갓 33살 러시아 귀화인이 '귀화 모국'(母國) 대한민국을 향해 쏟아내는 쓴 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꽤 먹혀 들고 있는 까닭은 '민족'이 유구하다는 우리의 신념이 그만큼 허약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2001년 단행본 '당신들의 대한민국' 이래 최근의 '우승(優勝) 열패(劣敗)의 신화'(한겨레신문)에 이르기까지 단행본 기준으로 매년 1-2책 가량으로 나오고 있는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도 있다.

민족이 단군 할아버지 이래 한반도에서 자생하고 발전하고 내재적 변화를 꾀해 오늘에 이르렀다는 "당신들"의 이 굳은 신념은 잘못됐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의 모든 작업은 어쩌면 그런 강고한 대한민국의 민족주의가 도대체 어떤 과정을 거쳐 구축되었는가의 탐색 과정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에는 본받을 만한 구석이 많다. 무엇보다 그 주장을 증명하기 위해 동원하는 자료가 신문과 잡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부문을 망라하고 있다.

나아가 한국 민족주의의 우상처럼 간주되는 단재 신채호라든가 만해 한용운과 같은 소위 독립투사들에 대해서는 그들에게서 소위 국가주의적 색채가 농후하다는 점을 이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양계초(梁啓超. 량치차오. 1873-1929)라는 다소 '엉뚱한' 중국사상가에 대한 분석이라는 간접 방식을 택해 주장하기도 한다.

다소 묘한 것은 그의 활동 주무대가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한겨레신문'이라는 사실이다. 이번 '우승 열패'에 이르기까지 그의 이름이 단독 저자로 기재된 단행본은 모두 5종. 이 중 3종이 출판사가 한겨레신문이다. 그가 각종 기고활동에서 활용하는 주된 매체도 이 신문이다.

이것이 왜 묘하다 하는가. 다른 소위 '보수' 혹은 '우익'으로 지목되는 국내 언론에서 예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여느 국내 언론만큼이나, 어쩌면 가장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곳이 '한겨레신문'이다. 박노자는 절대적 존재가치를 민족에 두고 있는 그 신문사를 무대로 삼아 민족을 비판하는 선봉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책 '우승 열패'만 해도 그것이 주된 분석과 비판 대상으로 삼고 있는 주제가 '사회진화론적 민족주의'인데, 그것을 계승한 적자로 간주할 수 있는 부류는 기존 보수우익 계열이라기보다는 외려 좌파적 민족주의나 민중사관 계열이다.

그가 지금까지 제기한 일련의 민족주의 비판을 국내 일부 탈민족주의자에게서 발견되는 '민족주의 박멸론'이라고는 정리하기는 곤란할 듯하다. 그보다는 그의 민족주의 비판의 요체는 '민족(주의) 상대화론'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지고지순(至高至純), 누구도 그 위엄을 깎아내릴 수 없는 절대 도덕화한 민족을 이제는 이 지상으로 끄집어 내려, 절대 유일이 아니라 여러 다양한 가치 중의 '하나'로 자리매김하려는 과정으로 박노자의 작업을 해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겨레신문이 대표하는 소위 '진보진영'의 반대편이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라는 등식이 정말로 성립할 수 있다면, 어떤 면에서 동아일보나 조선일보에 가장 잘 어울리는 논객이 박노자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박노자는 매우 계산적이다. 적어도 그의 글에 나타난 한국 민족주의 담론에 대한 비판 대상에서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는 물론이고 한겨레신문도 결코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명목상 그의 비판은 전자를 향하는 것처럼 포장되어 있다.

아마 동아일보나 조선일보를 주무대로 지금과 같은 활동을 폈다면, 그를 향한 한국사회의 주목이 적어도 지금과는 사뭇 다른 방면에서 전개됐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의 매체 선택은 계산적이다. 512쪽. 1만8천원.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끝) <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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