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 전 미연방하원의원 김창준
상태바
[초대석] 전 미연방하원의원 김창준
  • 안동일 편집위원
  • 승인 2005.04.1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월과 라이스 차이 몇명이 알까요”

7년만의 만남이었다. 지난 1998년 미국의 총선이 있었던 그 무렵 김창준 의원은 연방 하원 4선에 도전하면서 동포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뉴욕을 찾았고 그때 김의원과 만났다.

그때도 그 와의 만남은 텔레비전 대담프로의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그런데도 7년 세월이 지난 느낌이 들지 않았던 것은 그의 근황이야 기자에게 늘 파악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미국 정세에 정통한 사람 드물어 ... 경험.정보 나누고파 고국 찾아

   
▲ 전 미연방하원의원 김창준
알고 보니 김 전의원은 진작부터 서울에 와 있었다. 지난 2003년 9월부터 고려대학교 동북아 연구소의 연구교수로 초빙돼 그간 서울과 미국 워싱턴을 오가며 지내고 있으며 그 이전인 99년에도 명지대학교 초빙교수로 서울 생활을 했었다는 것 아닌가.

재미 한국인의 성공 신화로 대변되던 김창준 의원. 그의 동정에 대해 세인들의 관심, 더 냉정하게 말하면 뉴스밸류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첫 얘기에도 그런 것에 대한 편치 않은 심기가 그대로 묻어 나왔다. 김의원과 만난 곳은 후배의 사무실이라 했는데 누구나 알 만한 대형 예식장 사장실이었다.

“그래 어떻게 지내십니까?”
“요즘에는 괜히 대한민국에서도 감옥에 갈까봐 입조심하고 지내지. 말해봐야 제대로 듣는 것 같지도 않고...”

그러면서 대뜸, 지난 2월 하순 대만 대학 초청으로 대만에 갔었는데 그렇게 극진한 대접과 예우를 받았다고 일침을 놓는다.

1992년 미 총선에서 김창준 당시 다이아몬드 바 시장이 미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한국계 뿐 아니라 아시아계 이민 1세로는 최초의 연방 의원의 탄생 이었다. 주 단위의 의회에는 중국계 혹은 아시아계가 얼마 만큼 진출해 있었지만 연방 레벨은 처음이었다.

미국이 아무리 기회의 땅이라고는 하지만 된장과 김치를 매일 먹는, 아무래도 영어보다는 한국말이 더 유창한 이민 1세가 캐피탈힐에 진출했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도 아시안 이민1세가 연방의원이 되는 일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첫 아시아계 연방의원, 그리고 3선을 역임했다는 역사적인 기록은 미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근대사편에 상징적 인물로 선정, 소개되기도 했다. 그가 내리 3선을 지냈다는 것은 어쩌다 운이 좋아서 얼떨결에 당선된 선량이 아니라는 얘기다.

세계 최강국 정치권의 중심에 섰었던 그런 그는 조국인 한국의 정치에 대해 할 말이 많다. 특히 대미관계에 있어, 한국의 현 집권층이나 정치권이 몰라도 한참 모른다는 얘기. 그래서 불만이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한데 요즘엔 더더욱 이른바 코드가 안 맞아 자신의 얘기가 전혀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적 문제만 해도 내가 벌써 몇 년전에 한국 국방부며 의회 사람들한테 얘기했었습니다. 미국 사람들 가만히 넘어 가지 않을 거라고... 아니다 다릅니까, 며칠 전에 미 국방 차관이 한마디했지요. 앞으로 계속 군 문제와 관련 해 이런저런 불협화음 파열음이 계속 나올 겁니다.”

근황을 묻는 질문이 주적 문제로 대뜸 비약해야 했다.

“라이스 국무가 얼마 전에 한국에 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라이스는 자신의 목소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파월하고는 달라요, 그저 대통령의 의중에 따라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한테 무슨 얘기를 듣겠다는 겁니까? 라이스의 얘기는 부시의 얘기입니다. 그런 걸 제대로 아는 한국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이쯤에서 본격적인 질문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워낙 내용이 많기에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최근의 근황은?
“ 2003 년도 하반기에 고려대 동북아 경제경영연구소 교수로 위촉된 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후학들을 위한 강연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나라 밖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 안에서 한국을 보는 것은 엄연히 차이가 있다. 미 의회에서의 경험과 미국에서의 생활 경험 등을 토대로 한국과 관련된 정치, 경제적 학술정보를 후세들에게 잘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나의 포부이기도 했고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현 상황을 어떻게 보는지.
“정치 얘기를 하기 전에 먼저 경제가 여러모로 어려운 것이 안타깝다. 이 문제부터 짚어보겠다. 먹고 사는 것이 어려우면 자연히 이념 투쟁이 나오게 되는데 상호간의 증오로 어떻게 국가 경제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지난 IMF 외환위기 당시 나라를 위해 금붙이를 서슴없이 내어 놓았던 선민들이었는데, 이들을 위해서라도 이념투쟁은 일단 접어 두고 '앞으로 먹고 살게 무엇이냐'에 대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

살 길은 오직 대외수출 뿐이라고 본다. 한국의 상품들이 세계 시장에서는 선진국의 상품보다 비싼 가격에 거래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내의 경제 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원인을 찾는 것이 우리들의 시급한 과제이다.

세계 시장에서의 컴퓨터와 전기,전자제품 등에 대한 평판도 날이 갈수록 상승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한국 제품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급신장하고 있는데 품질경쟁에서 뒤지지 않도록 신기술 개발에 계속해서 전념해야 하겠다.

구체적인 견해를 덧붙이자면, 생명공학이 조만간 국제적으로 유망한 학문이 될 것으로 내다 본다. 이때에 관련 첨단기술을 서둘러 개발하여 이 분야에 대해 ‘Made in Korea’의 위치를 우선 선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최근 한국 예술, 특히 영화 부문에 대한 국제적인 칭송이 자자하다. 연기자들의 연기는 기가 막힐 정도로 탁월하니 할리우드를 능가하는 국제감각을 투입한 월등한 작품들을 계속해서 양산해 주길 바란다.

-정치와 경제는 맞물려 있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 아닌가?
“그렇다. 한국이 현재 맞고 있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는 정치권의 개혁을 통해 자유경제를 보장함으로써 국민들과 함께 작금의 경제위기를 헤쳐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잘못된 제도하에서는 잘못된 정치가 나온다. 한국 정치판에서 흔히 보이는 '싸움의 문화'는 사람이 잘못된 게 아니라 잘못된 제도 자체가 그 근본 원인이라고 본다. 미국의 제도를 그대로 베낄 필요는 없겠지만, 선진 미국의 장점만을 골라내어 한국의 실정에 맞게 모든 제도와 시스템을 전환하는 것이 한국의 정치가 안고 있는 시급한 당면 과제이다.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개혁과 혁신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부 관계자들도 입으로는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어떤 방법을 택해야 하는지에 대해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다.”

- 혹시 구체적인 개혁 방안을 생각한 게 있는지.
“무엇보다 삼권분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즉, 대통령이 현 국회의원을 장관에 임명하는 제도 등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각 지역구를 대표하는 인물들로 구성된 국회는 자체 독립성을 갖추고 행정부를 감시, 견제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하는 것이 옳은데, 그런 사람을 데려 와 장관을 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미국에도 ‘체크 엔드 밸런스' (Check and Balance)라는 삼권을 상호 견제하는 제도가 있는데, 입법부와 행정부가 어떻게 동시에 그 역할을 겸임할 수 있겠는가. 대통령은 장관에 대해 추천만이 가능할 뿐 임명은 불가해야 하며, 국회 분과위에서의 공청회 등 적법한 절차를 통해서만이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문제점이 발생하게 되면 그것은 국회의 문제로 돌아간다.

미국에는 또한 ‘알 권리’ (Right to Know)라는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어 모든 법안이 통과되기 위해서는 청문회 등 철저한 절차를 통해 모든 이들이 동의를 얻어야만 가능하도록 못 박아 놓고 있다.”

-해외의 동포들에 대한 인사말.
“문화와 역사가 전혀 다른 선진국에 가서 끼어 살다 보니 여러가지 콤플렉스도 많지만, 한국에 대한 좋은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동포들은 자부심과 안위감을 갖고 살아간다. 내가 볼 때 미국에, 그리고 외국 나가 있는 사람들은 정직하고 열심히 살고 있으며, 모두가 애국자들이다. 그러나 가끔씩 터지는 비참한 고국 소식에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모국이 잘 살아야 해외에서 거주하는 동포들은 자신감을 갖고 이민생활에서의 각종 역경을 잘 헤쳐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국위선양이 되어 한국의 발전에 다시 이바지하게 된다.

-<나는 보수다>, <국산정치 미제정치> 등 의 책을 집필했는데, 후학들을 위한 앞으로의 집필 계획은.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어떻게 미 연방의회에 진출하게 되었는지 그 계기와 과정을 소개한 책이 <나는 보수다>이고, 학술적인 시각으로 한국과 미국의 정치제도를 상호 비교, 분석한 것이 <국산정치 미제정치>라는 책이었다. 앞으로도 시간이 허락 되는 대로 미의회 활동 당시의 체험담 등 일화를 중심으로 한 에피소드 모음집을 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

200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또 미국이나 한국이나 정치의 근간은 똑같다고 본다. 미 정계에서 재직하고 있었던 기간중의 방대하고 다채로운 자료를 잘 활용하여 정치가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 누구나 흥미롭게 이해하고 읽을 수 있는 교훈적인 책을 출간하고 싶다. 물론, 한국과 미국 국회와 의 차이점, 정치와 경제 분야에 대한 견해도 함께 피력해 후학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엮을 생각이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첫째로, 매일 1시간 정도씩 운동을 한다. 트레드밀이나 웨이트트레이닝 등의 운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좋아하는 골프는 90선이다. 둘째로,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다. 특히 금주는 아버님의 권유로 오래 전부터 실천해 오고 있다. 셋째로, 저녁에 종합 비타민제를 꼭 복용한다. 이 덕분에 감기나 몸살에 걸려 고생해 본 기억이 거의 없다. 또 매년 치르는 독감예방주사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있다.”
dongilah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