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한글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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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가슴 아프고 부끄러운 한글날
  • 리대로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 공동대표
  • 승인 2023.10.0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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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으뜸 지킴이 광주문화방송, 으뜸 헤살꾼 서울시를 뽑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한글날을 며칠 앞둔 10월 5일 서울 광화문 한글학회 사무실에서 ’2023년 우리말 으뜸 지킴이 광주문화방송‘에 상패를 주는 모습. 광주문화방송이 어지러운 말글살이를 바로잡겠다고 나서서 고마워 칭찬했다.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이 한글날을 며칠 앞둔 10월 5일 서울 광화문 한글회관에서 ’2023년 우리말 으뜸 지킴이 광주문화방송‘에 상패를 주는 모습

우리말살리는겨레모임(공동대표 리대로)은 한글날을 며칠 앞둔 10월 5일 한글회관에서 올해 우리말 으뜸 지킴이에 광주문화방송(사장 김낙곤)과 지킴이 4명, 으뜸 헤살꾼에 서울시(시장 오세훈)와 헤살꾼 4명을 뽑아 발표했다. 

오늘은 국경일 가운데 가장 경사스러운 한글날이다. 그런데 기쁘고 즐겁지 않고 슬프고, 가슴 아프고, 부끄럽다. 우리 말글을 사랑하고 바르게 써 국민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정부와 공공기관이 우리 말글을 짓밟고 우리 말글살이를 앞장서서 어지럽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지 말자고 국어기본법도 있으나 지키지 않고, 정부기관에 국어책임관도 있으나 제 할 일을 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말글살이가 더욱 어지럽고 나라가 흔들린다.

고려시대까지 수천년 동안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 글자가 없어 중국 한자만 쓰다가 조선 세종대왕이 우리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 1446년부터 한글을 쓰게 하면서 우리 말글로 말글살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세종대왕 때부터 성종 때까지 50여년 동안은 우리 글자를 살려서 쓰려고 애썼으나 연산군 때부터 그 마음이 식어 조선이 망할 때까지 한자로 공문서도 쓰고 한문으로 관리도 뽑았다. 중국 지배를 받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한글이 얼마나 좋은 글자인지 모르고 중화사상과 유학을 하늘처럼 섬기는 자들이 많고 그런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고 한심한 일이었다. 

다행히 조선 끝 무렵 서양 기독교가 들어오면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한글로 쓰기 시작했고, 고종 때 1886년 서양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 교사로 온 미국인 헐버트가 한글이 한자보다 더 좋은 글자인데 조선인들이 제 글자 한글을 쓰지 않는 것을 보고 그 잘못을 알려주려고 스스로 한글을 배워서 1891년 한글로 ‘사민필지’란 교과서도 만들어 가르치니 정부도 우리 한글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종 때인 1894년에 공문서를 한글로 쓰자는 ‘공문식’이란 규정을 발표했고 1896년에 서재필, 주시경이 헐버트와 함께 한글로 독립신문을 만들면서 한글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깨닫는 이가 늘어났다. 

그러고 주시경이 독립신문사에 ‘국문동식회’라는 한글을 갈고 닦는 모임을 만들어 한글 맞춤법을 연구했고 한글학자가 되어 제자들을 키우고 한글로 쓰러져 가는 나라를 일으키려고 했으나 뜻을 이루기 전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주시경은 그 4년 뒤인 39살 젊은 나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난다. 그러나 그 제자들이 조선어학회에서 한글날과 한글맞춤법을 제정하고 우리말 말모이를 만들어 1945년 광복 뒤부터 우리 말글로 공문서도 쓰고 교과서도 만들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본 식민지 국민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을 한자로 쓰자는 자들이 한글만 쓰기를 가로막았다. 그래서 문자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한글 지킴이들과 치열하게 싸운다.

서울시가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이렇게 영어를 마구 섞어서 쓰면 서울시의회가 바로잡아야 하는데 마찬가지 나라 말글살이를 어지럽히고 있고 다른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서울시가 국어기본법을 어기고 이렇게 영어를 마구 섞어서 쓰면 서울시의회가 바로잡아야 하는데 마찬가지 나라 말글살이를 어지럽히고 있고 다른 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한글지킴이들이 그 싸움에서 이겨서 한글로 우리말을 적는 한글나라가 다 됐는데 다시 영어를 섬기는 자들이 나타나 영어를 마구 써서 우리 말글이 바람 앞 촛불 꼴이 됐다. 오랫동안 한문을 섬기면서 뿌리내린 언어 사대주의와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식민지 근성 때문이다. 이들은 우리말을 살리고 빛내자는 국어기본법까지 있지만 일반인은 말할 것이 없고 요즘은 정부기관까지 지키지 않고 제 나라 말글을 헌신짝 보듯이 하고 있다. 한글단체가 외쳐도 듣지 않으니 언론이 그 잘못을 널리 알리고 국회와 지자체 의회가 바로잡아주기를 바란다.

우리는 지난 수천년 동안 우리 글자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중국 한자를 썼다. 그러나 1443년 세종대왕이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글자인 한글을 만들어 주었는데 500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쓰지 않다가 지난 70여년 동안 애써서 한글이 널리 쓰이지만 아직도 한글이 제대로 빛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부산시와 인천시는 영어 공용도시로 만들자고 한다. 그리고 문화재청은 한글이 태어난 곳인 경복궁 정문에 걸린 한글현판을 떼고 1910년 나라가 망할 때 걸렸던 한자현판을 복제해 걸어서 살아나던 우리 말글을 시들게 했다. 이것은 세계 으뜸 글자를 가진 자긍심과 자존심을 짓밟는 일이고 한글로 꽃핀 한류를 못살게 하는 일이다. 제발 정부기관부터 반성하고 이런 복 떠는 일은 그만하자.

지난 10월 4일 인천시청 앞에서 국어단체가 한 영어 통용도시 추진 반대 기자회견 모습.
지난 10월 4일 인천시청 앞에서 국어단체가 한 영어 통용도시 추진 반대 기자회견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