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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룡강신문
  • 승인 2003.03.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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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강신문 - 2002년 10월 14일

중한수교 10주년기념 특별기획 (연변특집)

(1)우월감 극복하고 배타성 자제하자

1989년도 말에 처음으로 한국인들을 만났을 때에 기대가 컸다. 근 반세기동안 갈라져있었기때문에 친인을 만나는 마음으로 접대도 열정적으로 했고 연변의 실상도 남김없이 소개하면서 인차 친숙해지게 되였다. 그런데 만나면 하는 말이 백두산을 돈 얼마면 살수 있느냐? 연변땅을 사려면 얼마면 되느냐고 문의하기에 점차적으로 기대와 반가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후에 알고보니 당시에 여기에 온 한국인들은 거의 보따리장사군들이였다.

후에 진짜 한국의 지성인들을 만나면서 한국에 대한 리해가 점차적으로 깊어지기 시작했다. 특히 박완서작가, 이문열작가, 성기조박사 등 유지인들을 만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였다. 이런 유지인들은 매우 겸허한 자태로 반세기동안 갈라졌던 중국조선족을 료해하려고 했고 어떤면에서 도와줬으면 좋겠는가고 진심으로 자기의 마음을 털어놓아 매우 감동스러웠다.

하지만 일부 한국인들은 제반 한민족의 안목으로 중국조선족을 바라보는것이 아니였다. 다시 말하면 중국조선족은 중국에서 사는 소수민족이라는 개념을 떠나서 자기 나름대로 여기에 와서 언론을 퍼뜨리다보니 조선족에게 불리익이 차례지게 하는것이 안타깝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자체의 저그마한 리익을 위해서 조선족동포를 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본다.

특히 한국인들의 의식차원과 중국조선족의 의식차원이 다르다는것을 승인해야 한다. 즉 중국조선족은 아직까지 농경문화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봉건의식상태에서도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다. 이러한 관계로 한국인들은 현대적인 의식차원에 들어가고있기때문에 조선족들앞에서 지나친 우월감과 자부심을 과시하고있어 조선족은 자비감을 가지면서 고국인들을 대하고있는데 조선족을 대할 때 정확한 자세가 바람직하다.

특히 지적해야 할것은 적지 않은 한국인들은 여기에 와서 무엇이나 한국이 제일이라고 자랑하면서 다른 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강한것이 문제시 된다. 물론 고국인들이 민족의 자부심이 강하게 나오게 된것은 그제날 일제침략의 반발심에서 나온것이라볼수 있겠지만 너무 지나치면 자부심이 아니라 개인의 자랑이라고 볼수 있으므로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는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례하면 문화적인 풍토차이에서 개인자랑이 너무 심하다. 지어는 조상3대까지 자랑하는 행실은 여기의 동포들로 놓고 볼 때에 너무나도 부자연스럽다. 선진민족이라면 응당 겸허해야 한다. 물론 그제날 고국이 다른 나라의 속국으로 오랜 기일을 지나다가 오늘에 와서 아부심리가 점차적으로 사라지고 자부심이 강해지는것은 리해가 된다.

또 타국가에서 살고있는 조선인들의 문화적인 재부를 자기의 재부로 간주하는것이 아니라 아주 락후하다고 배타적으로 대하는것이 문제시된다. 고국에 그 어떤 구심점이 있고 신념이 있으면 타국가에서 살고있는 조선인들의 문화적인 재부를 보물로 여길수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그 구심점이 강하기때문에 우수한 민족으로 세계에 이름이 있다. 응당 고국인들은 세계적인 안목에서 문제를 봐야 한다.

(국가1급 작가 림원춘)


(2)간과할 수 없는 한국초청사기

오늘까지도 일부 한국인들이 중국조선족동포를 상대로 한국내에서 로임을 떼여먹고 산재보상을 외면하고 지어 인권유린을 자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동포들은 6만,7만원이라는 거금도 서슴치 않고 한국이라면 가려고만 꿈꾸고있다. 특히 중국의 근 2백만 조선족들중 적지 않은 사람들이 한국초청을 미끼로 한 사기사건에 휩쓸려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채 갖은 고통을 겪고있다.

중국 동북3성의 조선말 신문, 잡지, 방송, TV 등 보도매체들도 1996년 말부터 사기사건들을 대서특필했다. 그리하여 지금은 "한국사기꾼을 잡아내여 우리의 한을 풀자"라던 원성에서 "한국사람은 믿기 어렵다" 등 악설과 험담들도 오가고있는데 그만큼 한국사기꾼들이 빚은 악과는 심각하고 간과할수 없이 증폭됐다는 얘기이다.

한국인초청사기가 한국내에서도 골치거리로 되자 민간단체, 언론, 나아가서는 한국정부가 그 해결대책에 휘말리게 되였다, 이런 사기행각이 사회언론으로 부각하면서 한국 우리민족서로돕기 운동본부가 1996년 9월부터 한달반 동안 연변 등지에서 실시한 현지조사를 발표하면서 조선족문가 한국에서 불거졌다. 한국의 언론은 중국동포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관심과 동정을 호소하고나서 이번 사기돌풍이 한반도의 통일과 한국의 미래와도 직결되는 문제로 부각되여 있어 한반도의 21세기 전략차원에서 다루어야 할 과제라고 지적하였다.

재중국동포시민대책위원회가 밝힌데 의하면 조선족에게 끼친 피해액수가 한화 700억이 넘을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6년 9월 23일부터 11월 8일까지 45일간 접수된 고소장이 피해 가구수만도 1만 가구에 이르고 있다. 고작민간인 2명이 연길지역 중심으로 45일동안 조사한 수치에 불과함을 감안할 때 실제피해가구는 현재까지 조사된 피해가구수의 배가 훨씬 넘어 최소한 2만 5000세대가 넘을것으로 추산된다. 조선족 1가구당 평균 인수를 4명으로 볼 때 초청사기로 직접 패해를 입은 사람은 10만명에 이르고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간접피해가구도 1피해가구당 3명으로 계산하여도 7만 5000가구 30만명에 달해 총피해자수는 40만명에 이를것으로 짐작된다. 이는 200만 조선족인구의 20%에 해당된다.

여기에서 볼수 있는바 직접피해자 10만명, 직접 피해가구 2만 5000가구, 가구당 4만원피해로 계산하면 중국돈 8억원, 한화 800억(피해당시)이여서 700억이란 수자는 이 주먹구구의 최소치에 불과한것이다. 직접패해자들은 돈을 빌릴 때 최저로 3-5푼리식을 내기로 했는데 3개월 내에 한국에 갈수 있다던것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그 행방은 묘연하고 류리걸식에 모대기는 궁상들이 생기고있다.

중한수교 10년사이에 벌어진 이런 사기사건은 고금동서에도 없는 전대미문의 사기사건으로서 조선족동포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는것을 철같은 사실로 받아들여야지 거기에 눈감고 아웅하는식의 부정은 반감만 살뿐이라는점은 지적하지 않을수 없다.

지금까지도 각종 명목의 가짜비자사건이 조선족동포사이에서 벌어지고있는데 과연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단 말인가? 완전히 해결할 방법이 있다. 우선 조선족동포는 비록 국적은 중국이지만 분명히 한 피줄이라는것을 알아야 하며 일제시대의 망국의 설음을 안고 이 땅에 이주한 동포라는것을 뼈저리게 느껴야 하며 한국정부는 소수의 불순분자를 그저 지켜보지 말고 공짜로 도와달라는것도 아니고 한국내의 동일임금보다 적게 받더라도 정상적인 로무경로구축을 심각한 문제로 해결해야 한다.

다음으로 한국인들은 조선족은 근대사의 아픈 력사가 낳은 사람들이라는것을 뼈아프게 인식해야지 국적이 다르다는것으로 문화적인 차이가 다소 다르다는것으로 인식하고 조선족을 대하지 말아야 하며 더우기는 리용가치의 족속으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피는 물보다 진한것"이 아니라 "피는 물보다 연해질수밖에"없다.

(동북아문화연구중심 연구원 림연)


(3)연변3자기업의 70%이상 한국기업

중한수교가 이루어진지 10년사이에 연변에서는 자체의 인연과 지리적인 우세를 리용해 한국과의 교류를 추진해 오면서 한국기업의 대연변투자는 연변의 "3자"기업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있다.

금년 6월까지 연변에 투자하여 설립된 한국기업은 463개소, "3자"기업총수의 73%를 차지하고있다. 한국자본의 계약투자액의 57%, 실제투자액은 2억 5137만 딸라, 실제외자투자액의 59%를 차지한다. 투자업종을 보면 방직, 침직, 목제품, 식품, 화학공업, 기계, 전자 등 제조업이 371개소, 농림목업이 24개소, 서비스업종이 29개소, 음식업이 22개소, 기타 업종이 17개소이다.

2001년 한국기업의 판매수입은 9억 7399만원, 연변의 "3자"기업총판매액의 61%를 차지하고 고용자인수는 8617명, "3자"기업 취업총인수의 54%를 차지한다. 한국기업의 년간납세액은 3503만원, "3자"기업의 세금납부액의 50%를 차지한다. 이상의 수자로 보아 한국기업이 연변의 경제발전에 준 영항은 매우 크고 연변의 외향성경제의 중요한 구성부분으로 되고있다.

한국자본이 연변에 대한 역할은 다음과 같이 개괄할수 있다. 우선 연변의 건설자금부족난을 완화시켰다. 다음으로 선진기술자와 선진경영관리경험을 인입했다. 그 다음으로 취업기회창출을 증가하고 인력자원개발을 다그쳤다. 그밖에 한국의 외자리용규모가 확대됨에 따라 대외무역이 크게 늘어나고있고 세금원천이 넓어졌으며 지방재력이 많이 늘어났다.

이로해 연변에서의 한국인이미지는 상당히 높아져 있고 아울러 한국인에 대한 대우도 따라가고있다. 하지만 경제협력면에서나 사회적으로 문제점이 없는것은 아니다. 연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은 적지 않지만 실패한 사례도 적지 않다. 그 실패원인은 아래의 몇가지에 있다.

첫째, 연변에 대한 한국기업들의 료해가 깊지 못하다. 연변에 동포들이 많이 살고있지만 문화의식, 경제토대, 사회제도, 풍속습관, 교역관례 등 여러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것을 알아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한국인들은 항목선택에서 신중성이 결핍하다. 때문에 투자항목을 선택할 때 왕왕 충분한 조사와 항목론증이 결핍한 상태에서 투자결정을 함으로써 시장정립이 정확하지 못하며 또 생산한 제품의 수준이 낮아 국내외 시장진입이 어렵다.

둘째, 일부 한국기업 특히는 전통산업분야의 중소기업들은 한국내의 치렬한 경쟁압력하에 기업을 만회하기 위해 출로를 국외에서 찾고 있는데 그 표현이 바로 한국에서 이미 도태되였거나 도태되고있는 기계설비들을 연변에 이전시켜 기술수준이 낮은 생산에 종사하고 있다.

셋째, 일부 불법한국기업인들은 가짜합작기업을 꾸리는 명의로 탈세루세하고있으며 또 한국에 "연수생"을 파견한다는 간판을 걸고 비법소득을 챙기는데서 연변의 경제질서를 심하게 교란했다.

(연변대학 동북아연구원 원장 박승헌)


(4)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알아야

90년도부터 즉 중한수교가 이루어지기전부터 고국에 다녀오면서 느끼는바가 한국문화교육과 중국문화교육이 다르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러므로 어떤 교육을 받았느냐를 잘 터득하고 현실을 정시해야 중국을 잘 리해할수 있다.

한국인들은 중국을 큰 시장으로만 보고 조선족을 파트너라고만 단순히 생각하면 성공하기 힘들다.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중국에 들어오는 경우를 보면 상업고찰차로 돈벌이차로 오면서 연변에 조선족이 집중해 있다는점을 감안하고 연변을 찾아온다.

그 목적인즉 조선족동포를 리용관계대상으로 손잡는것인데 한국과 중국의 수입격차를 내세워 우선"부"를 자랑한다. 또 조선족동포들도 한국에 가려는 욕망으로 없는 돈을 빌려서라도 잘 접대한다. 이렇게 한민족이라는 미끼로 서로 리용하려는 양상을 보여주고있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로 불신임이 점차적으로 확산되였다.

지난 몇년간 연변에 와서 투자한 한국인들의 심리를 보면 일시에 크게 해보려는 심정으로 조급증이 많이 생기다보니 겸손하지 못하고 동포를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례하면 1995년도부터 1998년도까지 한 제조업체가 연변에 들어와 있었는데 실제 전망이 있는 업체였지만 단시일에 돈을 벌려고 하는 욕망만 컸던탓에 중국관리일군들의 신임을 얻지 못했고 또 직원들에 대한 기술교육이 따라가지 못한 상황에서 직원을 무시하고 지방의 여러 정책을 무시하는 경향이 생겼다.

일단 일이 안되면 중국은 "만만디", "무식하다" 등등의 욕설을 퍼붓는 바람에 나중에는 갈등이 심해져 문을 닫는수 밖에 없었다. 후에 알고보니 한국에서는 관리를 그렇게 해도 어느정도 통한다지만 중국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한국인들이 연변에 와서 투자했다가 실패한 원인의 하나이다.

또 한국기업인들이 중국조선족에 대해서 상당히 거부감을 갖고있는것은 일부 허풍을 치고있는 조선족들을 만나 꼬임수에 들었고 또 일부 조선족들의 악덕행실을 구실로 중국조선족전체를 부정적으로 보고있기때문이다. 심수쪽으로 가보면 일본기업이나 미국기업은 아주 잘되고있는 상황이다. 그들은 우선 중국문화를 인식한 상태에서 중국사람을 자기의 가족처럼 대하고 직원들을 잘 가르쳐주고 너그럽게 대하기때문이다.

한국기업인들이 연변에 진출할 때에는 우선 한피줄이라는 민족적인 차원을 떠나야 한다. 물론 조선족과 언어가 잘 통하고 생활습성도 비슷하지만 필경 중국문화에 어느정도 물젖은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기업인들은 조급정서를 삼가해야 하며 중국실상을 옳바르게 보고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기업은 철저하게 리윤창출이 위주이기때문에 조선족을 리용하려는 심리를 없애고 함께 하는 파트너로 동반자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만 서로간에 부담이 없이 서로 장점을 배우고 단점을 극복할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때 한국인들은 중국 진출시 좋은 이미지 구축이 절실하다.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중국시장을 대하면 성공할 기회가 많고 또 다른 나라에 가서도 성공할수 있다고 본다.

중국 조선족도 치명적으로 극복해야 할 약점이 있다고 한국업체의 업주들도 입버릇처럼 외우고있다. 한국기업에 취직해도 주인공다운 모습으로 일해야 하지 기술수준, 전문지식이 낮은 상태에서 높은 월급만 바라는것은 참으로 바람직하지 않다.

열심히 일하고 지식수준을 부단히 높이면 그에 따르는 보수도 올라가기 마련이다. 기업은 참혹하다. 오직 리윤이 창출되여야 그에 따르는 보수도 많아진다. 그렇다고 남의 약점만 과대해서는 결코 중국에서 튼튼히 발을 붙일수가 없다는 도리를 한국인들이 똑똑히 명기했으면 한다.

(연변예술광고제작회사 사장 리성남)


(5)변화발전의 시각에서 중국과 조선족들 료해하자

한국인들은 중국에 들어와서 특히 연변에 들어와 자기사업이 뜻대로 잘 되지 않으면 조상탓만 하듯이 중국정부와 한피줄인 조선족을 탓하는것이 관례로 되었다. 이러니 차라리 변화와 발전의 시각에서 보다 좀더 적극적인 태도와 안목으로 중국과 조선족을 대하고 료해하는 자세가 필요하고 바람직하지 않겠는가고 생각된다.

저희들이 1993년도에 연변에 사업하러 왔을 때만해도 연길은 단층집이 다수였지만 지금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섰고 도로도 빨리 개선되고있으며 통신시설도 그 발전이 아주 빠르다. (비록 기타지역에 비하면 그 속도가 더딘감이 든다)특히 경영의식에서 많은 변화가 생기고있음을 피부로 느낄수 있다. 이전에는 백화점의 조선족판매원들의 서비스가 억망이였고 거스름돈도 그저 던져주던것이 지금은 봉사태도가 많이 개변되는 모습이 보이고있다.

즉 소비자중심의 봉사가 점차 륜곽을 나타내는 양상이고 시장경제에 수응하는 모습이라 하겠다. 더우기는 정부부문의 공무원들도 열심히 도와주려는 일본새이던데(일하려는 모양인데) 참 기분나고 미래가 트이는 변화가 기대된다.

여기 연변에도 적지 않은 한국인들이 창업을 하면서 중국의 이런저런 정책탓을 많이하고 연성환경미흡을 꼬집는데 물론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보다는 환경적응론 즉 적자생존을 까맣게 잊고 남타박만 하는것이 옳은가 묻고싶다. 저는 해외창업경력도 없는 햇내기로서 한국에서 먹히는 일을 여기서도 억지로 먹이자고 하는것이 바로 한국인이 자주 "꼴"을 먹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또 조선족들은 시장경제를 곧바로 돈 중심으로 착각하고 무단리탈한다면서 돈은 결과이지 목표가 아니다고 어른스런 소리를 하는데 한국인도 60년대 70연대까지만도 적지 않은 분들이 그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또 화장실문화도 많이 탓하고있는데 지어 아프리카보다도 못하다고하는데 하루 아침에 다 개변할수는 없는것이 사실이 아닌가? 큰 변화와 총체적변화를 미래 발전의 차원에서 깊이 있게 리해해야지 100% 내만족을 요구하는것은 어느정도 무리가 아닌가고 느껴진다.

이밖에 일부 한국인은 연변에서 퇴페적인 문화가 지어는 한국보다 더 성행하고 있다고보는데 이견해도 틀린다. "현지부인"이요,"애인"요 "술집아씨"요라는것은 죄다 한국인이 연변에다 전파해놓은것이고 한국에서 "수입"된것이지 한국인과 접촉하기전에는 소설이나 영화에서나 봤을뿐이다고 연변사람들은 말하고있다.

하기에 한국인과 조선족은 아직도 많은 교류와 상호리해와 인식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인들은 전략적차원에서 적극적인 시각으로 중국과 조선족을 접근하고 천천히 료해한다면 성공기반이 다져질 것이다.

(연변대학 과학기술학원 교수 오병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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