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러 교류 앞장선 러시아 대형가수 아니따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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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러 교류 앞장선 러시아 대형가수 아니따 최
  • 김정희기자
  • 승인 2005.01.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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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집념으로 화려한 ‘비상’

유서 깊은 문화와 예술이 살아 있는 러시아. 그곳에서 예술과 문화는 사회를 움직이는 거대한 힘을 갖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까레이스끼 아니따 최가 우뚝 서 있다.
2003년 러시아 연방 문화부에서 ‘러시아 연방 공훈연예인’ 칭호를 받은 한인3세 인기 여가수 아니따 최(33)는 동양인으로는 빅토르 최에 이은 두번째 대형가수이다.
지난해 한국관광공사의 홍보대사로 발탁, 한러 문화 교류에도 큰 힘이 되고 있는 그녀는 현재 한국에서도 관심을 끌고 있다.

지금은 러시아의 공훈예술인이자 러시아의 대형가수로 우뚝 선 자랑스런 한국인이지만 그녀가 지금과 같은 대형가수로 성장해 온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노래하는게 꿈이었다. 사범학교를 졸업했지만 교사의 길을 가지 않고 다시 음악원 학생이 된 것도 단지 노래를 하고 싶어서였고 음악에 대한 재능을 인정 받아 장학금을 받는 등 꾸준한 작곡과 작사로 자신의 능력을 키워나갔다.

20살 음악도였던 아니따와 서른네살 노총각 세르게이는 축복속에 부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에 아들 정석이가 태어났다.
   
▲ 러시아 국민가수 아니따 최

그 당시 하루 종일 일해도 먹고 살기 빠듯했던 시절, 생활 비용을 벌기 위해 질그릇 공장에서 일했던 남편과 남대문시장과 루즈니끼 시장을 오가며 옷장사를 시작한 아니따는 그 돈을 벌어 가수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노래를 세상에 알려야만 했고 음반과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위해서는 만달러 라는 거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옷장사를 해 번 돈으로 패스트푸드점을 열어 큰 성공을 하자 아니따는 본격적으로 음반과 뮤직비디오 제작에 들어갔다. 그동안 일을 하면서 한번도 잊어본 적 없던 가수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작곡하고 연습을 해도 소득이 없었다. 정작 음반을 만들어 주겠다는 제작자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이유는 그녀의 외모 때문. 당시 아니따는 몸무게 96킬로그램의 뚱뚱한 여자였다. 그녀의 몸매가 그토록 원하던 가수의 길을 가로막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아니따는 지체 없이 다이어트를 시작, 결국 40킬로그램 감량에 성공했다.

노래를 하고 싶다는 그녀의 집념은 아무도 꺾을 수 없었다. 드디어 자신의 첫 음반을 제작하면서 아니따는 정식가수로 데뷔했다. 그리고 그녀의 첫 앨범과 뮤직비디오는 러시아 대중음악계에 커다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그녀가 대중들에게 크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96년 인기가수 알라부가초바의 공연에서 자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 ‘비상’을 부르면서 부터이다. 구 소련의 변화와 자유를 노래로 표현, 사회변혁을 갈망하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된 히트 곡목은 오늘날까지 그에 대한 기억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 후 그녀의 넓은 음폭의 독특한 목소리, 독창적이고 시적인 곡, 좌중을 압도하는 에너지와 영감, 뛰어난 무대매너 등으로 수많은 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며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비상’(1997), ‘멀리’(1998), ’늦게‘(2002), ’너에게만‘(2003) 등 총 7편의 뮤직비디오를 제작했고 자신의 음악 쇼프로를 연출, 제작하기도 했다. 그녀가 직접 제작한 쇼 프로그램 ‘흑조, 또는 사랑의 전당’은 98년 ‘올해의 최고 쇼’ 부문에서 러시아 국민가요 상 ‘갈채’를 수상해 다시 한번 이목을 끌었다.

지난 97년 아니따는 유명 연예인, 공훈예술인에게만 주어지는 무대인 러시아 콘서트 홀에서 공연을 했다. 초대가수에서 당당한 공훈예술가수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후 아니따 최는 어디를 가든 팬들의 둘러싸이는 유명세를 치른다. 그녀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꽤 폭넓은 팬들을 가진 편이다.

이처럼 러시아 공훈예술인으로 우뚝 선 아니따는 “러시아는 차이콥스키, 까발렙스키, 라흐마니노프 등 많은 유명음악인들을 세상에 선사했죠. 전 이런 곳에서 살고 있는 것이 기쁘고 그런 예술문화에 제 음악이 조금이라도 속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기쁨”이라고 자평한다.

러시아에서 큰 인기를 얻으며 인정받은 아니따는 러시아 연방과 독립국가 연합국들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도 단독공연을 펼쳐 큰 성공을 거뒀다.
지난해에는 한러수교 140주년 기념 ‘열린음악회’에 가장 우선적으로 초청돼 무대에 섰으며 현재 한국문화관광 홍보대사로서 각종 한러 문화 행사에 적극 참석하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금 러시아에는 수많은 까레이스키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오늘 정상에 선 그들의 딸 아니따를 지켜보고 있다. 아니따의 화려한 성공은 결코 아니따의 것만은 아니다. 러시아에 살고 있는 한인 모두의 꿈이자 희망이기 때문이다.

모스크바=신성준기자 /김정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