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공공기관, 한글 오남용 실태 심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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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공공기관, 한글 오남용 실태 심각”
  • 서정필 기자
  • 승인 2020.10.07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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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말글문화협회, ‘영어와 한자 사대주의에 물든 정부와 공공기관 공문서’ 토론회서 지적

"공문서를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

"국어기본법 위반이다. 중앙행정기관마다 국어책임관 있으나 할 일을 제대로 안하고 있다"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있는 어려운 말 개선 본보기 (자료 법무부)
법무부가 추진하고 있는 “민법 일부개정법률안”에 있는 어려운 말 개선 본보기 (자료 법무부)

정부 및 공공기관의 공문서에 영어와 한자 사대주의에 사로잡힌 표현들이 너무 많이 쓰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글학회 부설 한말글문화협회(대표 이대로)가 10월 7일 574돌 한글날을 맞아 개최한 ‘국민 여러분! 우리말이 아파요!’ 이야기 마당 중 ‘영어와 한자 사대주의에 물든 정부와 공공기관 공문서’라는 주제 토론회를 통해 이같이 지적했다.

한말글문화협회는 “한국어인공지능학회와 유피아이(UPI)뉴스가 함께 정부 부처·청·위원회 등 정부 부처 43곳 주요 문서를 수집해 조사, 분석한 '2020년 공공문서 사용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 공문서에서 영어는 물론이고 한자, 오염된 언어가 수두룩하게 발견됐다”고 밝혔다.

협회가 소개한 로마자 오남용 사례에는 ‘AI, DB, TF’부터 ‘216억원 Processing-In-Memory CPU중’, ‘Real-time’ 등 길고 어려운 어휘까지 다양하게 쓰였다. 우리말로 쓸 수 있는 용어를 두고 영어(로마자)를 빌려 써 뜻을 쉽게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자를 그대로 사용한 표기도 적지 않았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現, 全, 新 등부터 "全軍的 노력 결집으로 전작권 전환", "데이터 확충 및 異種 데이터 연계 시스템 구축", "정상 訪美사상 최초 남북미 정상회동" 등 긴 문장도 등장했다.

또  ‘高價차사고’, ‘대응TF’, ‘e-사람’, ‘SW교육’, ‘TF팀’ 등 한글과 영어, 한자가 뒤섞여 얼른 뜻을 이해하지 못할 표현들도 많았다.

외국어 표기(국어기본법 위반)를 그대로 쓰거나 혼합어를 많이 쓴 기관의 순위는 ▲특허청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국방부 ▲관세청’ 순이었다. 반대로 가장 적게 쓴 기관은 ▲원자력안전위원회 ▲법제처 ▲문화체육관광부 ▲법무부 ▲여성가족부 순서였다.

협회는 “전체적으로 공공기관들이 국립국어원이나 법제처 등 다른 기관이 제시한 어려운 말을 쉽게 바꾸자고 제시한 순화용어를 따르지 않고 있다”고도 꼬집었다.

이날 주제 발표에 나선 유피아이(UPI)뉴스 김들풀 정보통신 전문기자는 “이는 명백히 국어기본법 위반이다. 현행 국어기본법은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한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14조 공문서의 작성)고 규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기자는 그러면서 “굳이 한자나 외국어를 써야 할 경우 괄호 안에 써야 한다는 단서는 국어기본법 14조 공문서 작성 규정은 엄밀히 따져 완벽한 한글 전용이라기보다는 한자 병기를 일정 부분 허용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토론자로 나선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영어나 한자를 좋아하고 사대하는 일은 이미 일상화가 됐다. 문제는 고급스럽다거나 세련된 느낌이라서 사용한다는 것”이라며 “언어 심리학 관점으로 볼 때 이는 스스로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사대 무의식이 드러난 것으로, 나라 전체의 정치 경제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43개 정부 부처 공문서에 로마자를 그대로 쓴 기관 순위 (출처 공공언어 실태조사 보고서)
43개 정부 부처 공문서에 로마자를 그대로 쓴 기관 순위 (출처 공공언어 실태조사 보고서)

박용규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은 “일제 치하에서도 우리말을 목숨 걸고 지킨 애국선열에 대한 예의가 없는 짓”이라며 “애국선열들을 존중하고 우대한다는 문재인 정부는 우리말과 한글을 소중히 여기는 모습을 앞장서서 실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사한 우리문화연구소 강순예 소장은 “정부의 잘못된 언어 사용은 세계 10대 경제대국과 문화강국에 걸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을 어렵게 만든다”라며 “무분별하게 영어 한자 한글을 뒤섞어 쓰는 행태는 어린이와 청소년은 물론 우리말글을 배우고자하는 세계인들에게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한글과 우리문화의 가치가 세계로 확산하는 이 시대에 정부 스스로가 국격을 깎아내리는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한말글문화협회 이대로 대표는 “서울 시내 거리에 영어 간판으로 뒤덮여 있고 영어로 이름을 지은 회사와 상표가 늘어나고 있다. 광복 75년이 지났는데도 일본 식민지 교육으로 길든 일본 한자말에다가 영어가 판치니 우리말이 죽을 판이다. 그런데 이런 잘못을 바로잡아야 할 정부가 그 잘못을 부채질하고 있다”며 한탄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현재 중앙행정기관마다 국어책임관을 두고 있으나 제 할 일을 제대로 안하고 있다. 각종 자료에서 외래어를 걸러내고 어문 규정에 맞게 고치는 업무를 잘 하도록 국어기본법을 고쳐야 한다."며 이제라도 정부가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