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은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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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은 세계 이주 노동자의 날] ‘외국인노동자 전용의원’ 르포
  • 국민일보
  • 승인 2004.12.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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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에서 온 소니(29)씨는 간장이 안 좋아 외국인노동자의원에 벌써 두번째 입원중이다. 한국에 온지 3년째인 그는 퇴계원에서 용접일을 하고 있다. “고향에 아내와 2년 2개월된 딸이 있습니다. 딸아이의 얼굴을 한번도 본적이 없어 늘 이렇게 사진으로만 그리움을 달래죠.”

맞은편 침상에 누워있는 쇼아입(35)씨가 한국생활 5년차답게 소니씨의 서투른 한국말을 도왔다. 쇼아입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다리를 크게 다쳤다. 치료가 끝나도 정상적인 보행은 힘들 것이라는 게 의사의 진단이다. 쇼아입씨는 파키스탄에서 기계디자인을 전공한,잘 나가던 엘리트였다. 그러나 코리안 드림을 좇아 한국땅을 밟은 그에게 남은 건 장애뿐이다.

그나마 이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병원 문턱은 무척 높기 때문이다.

지난 7월 개원한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원장 이완주)은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다. 병원은 서울 가리봉동 외국인노동자의집·중국동포의집(대표 김해성 목사) 건물 2∼3층을 개조해 만들었다. 의원이기는 하지만 내과 치과 안과 이비인후과 산부인과 정형외과까지 종합병원에 못지않은 진료과목을 자랑한다. 입원실 수술실도 갖추고 있고 병상 수도 30여개에 이른다.

개원 초기에 비해 진료 의사도 늘어났고 얼마전부터는 공중보건의 1명이 상주하면서 일의 하중도 많이 줄었다. 그러나 하루 50여명에 이르는 환자들을 오후 1시부터 밤 9시까지 1주일 내내 진료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일반진료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병원비,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이 없는 곳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점점 찾아오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간절함을 알기 때문에 이 원장을 비롯한 모든 봉사자들은 피곤할 겨를도 없다. 저녁 7시 식사시간. 자원봉사자들에게 오늘만은 꼭 저녁을 먹어야 한다며 식당에 내려갈 것을 독촉했다.

“전영남 할아버지가 고기를 사오셨어요. 감사한 마음을 전할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면서요.”

지린(吉林)성 출신 재중동포 전영남 할아버지(78)는 지난 15일 외국인 노동자의 집의 도움을 받아 아들 전명호씨의 장례식을 치렀다. 아들이 사업장에서 가스 폭발로 사망한지 꼭 1년8개월만의 일이었다.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한달음에 달려왔지만 병원비를 주지 않으면 시신을 내줄 수 없다는 차가운 답변만 들었다. 시신 확인도 거부했다. 할아버지의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지면서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전해졌다.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지요. 한국에 와서도 죽은 아들 얼굴조차 보지 못할 땐 피를 토할 것 같았는데 이제 하나님 곁에서 편안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합니다.”

식사가 끝나자 김해성 목사가 병실을 돌았다. 이 원장과 자원봉사자들이 육신의 치료를 맡고 있다면 김 목사는 영혼의 치유를 감당하고 있다. 누워있는 환자의 부은 발을 어루만졌다.

“이 친구는 큰 병원으로 가서 수술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병원에도 수술실은 있지만 시설이 영세하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가진 꿈이 있다면 외국인 노동자들이 마음 편하게 수술 받을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수술실과 중환자실을 갖는 것입니다.”

2000여년 전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병든 자와 이방인에게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었던 것처럼 김 목사와 이 원장,그리고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예수의 모습을 좇아 사랑을 전하는 외국인노동자전용의원. 그곳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미 품에 안긴 새끼 새들처럼 상처 입은 날개를 접고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서윤경기자 y27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