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행령은 그대로 아직도 추운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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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령은 그대로 아직도 추운 겨울
  • 김진이기자
  • 승인 2004.12.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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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올해의 인물 / 동포법 개정 이끈 중국동포들

서울 안산 창원등서 84일간 농성끝 법개정
임금체불 등 피해 여전 법적지위 보장해야

“부잣집에 시집간 딸만 딸이고 가난한 집에 시집간 딸은 딸도 아니냐?”

   
▲ 불법체류 중국동포 300여명이 지난 5월 11일 서울시청 옆에 위치한 국가인권위원회에 모였다. 이날 오충일 김해성 임광빈 박신호목사와 배덕호사무국장 등 재외동포불법체류사면 청원운동본부의 지도부는 김창국 위원장을 방문하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중국동포들과 함께 하며 조선족복지선교센터를 이끌고 있는 임광빈 목사가 집회 때마다 호소해온 이야기다.

작년 11월부터 올해 초까지 추운 겨울을 동포법 개정과 불법체류 동포 사면을 외쳐온 중국동포들, 이번 겨울도 춥고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불법체류자라는 굴레도 벗지 못했고 올해 초에 결국 국회 통과를 이끌어낸 개정 재외동포법도 그들에게는 해당사항 없는 얘기일 뿐이다. 

4백여 명의 중국동포들은 재외동포법 개정을 촉구하며 서울 기독교백주년기념관 등지에서 장장 84일 동안 농성과 집회를 계속했다. 또 중국동포들은 다른 나라에서 온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새로 시행될 고용허가제로 인해 강제 추방될 위기에 처한 불법체류 노동자들을 구제해줄 것을 요구했다.

농성 중에 지도부는 국무조정실 관계자, 정책입안자와의 면담과 협의를 계속했다. 이들의 노력이 헛되지 않아 마침내 2월 9일 국회는 재외동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고, 정부도 불법체류자 강제추방 시기를 한달 간 유예하고 출국 노동자들에게는 8월 재입국을 보장하겠다며 한 걸음 물러섰다. 

개정된 재외동포법의 ‘외국국적동포’ 정의에 "대한민국정부 수립 이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를 포함한다"는 귀절이 한줄 들어가면서 중국, 구 소련지역 동포들도 동포 범주에 포함됐다. 개정되기 이전의 재외동포법은 1948년 정부수립 이후에 국외로 이주한 동포들만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법무부가 시행령을 개정하지 않아 중국동포들은 개정된 동포법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법무부를 비롯한 관련부처들은 이들의 자유왕래가 허용되면 ▲국내 노동시장 교란 ▲안보상 허점 발생 ▲중국과의 외교마찰이 우려된다며 이들 동포들에 대해서는 법 적용에서 차별을 계속하고 있다.

결국 중국동포들은 예전과 똑같이 출입국과 체류에서 동포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 법 개정이후 한때 느슨했던 단속의 손길도 선거이후 다시 강화돼 법무부, 경찰에 의한 무차별 단속이 계속됐다.   

 ‘재외동포 불법체류 사면청원 운동본부’는 지난 5월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오충일 운동본부 공동대표, 최서연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공동대표, 임광빈 김해성 운동본부 공동위원장을 비롯해 재중동포 1천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차 중국동포 차별행위 및 인권침해 중단 촉구대회’를 열었다.

대회장 주변에는 ‘동포차별 중단하고 자유왕래 보장하라’등의 플래카드와 함께 ‘미국 유럽 동포는 동포의 권리를 행사하는데 조선족은 왜 차별하나요?’등의 피켓이 등장했다. 중국동포들은 불법체류 동포에 대한 대통령의 전면 합법화와 사면조치, 법무부에 대해서는 재외동포법 시행령의 즉각 개정을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국가인권위에 동포차별과 인권침해에 대해 진정서를 제출했다.

진정서에는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하지 않아 심각한 차별행위와 인권침해가 조장되고 있다 ▲불법체류자로 분류된 동포들도 동포로 인정되어야 함에도 체포당하여 추방되고 있다 ▲동포들의 자유왕래와 법적 지위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졌다.  

중국동포의 집 김해성 대표는 “중국동포들은 안중근 의사나 윤동주 시인, 홍범도 장군처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싸우며 죽어간 순국선열들의 후손인데 이들을 동포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애국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도대체 어느 민족, 어느 나라가 자기 동족을 불법체류자, 외국인 노동자로 낙인찍고 체포하고 추방하느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김대표의 주장처럼 현 정부는 여전히 시행령 개정을 외면하고 중국동포들을 불법체류자로 몰아 단속을 계속하고 있다. 헌법불합치 결정, 대한민국 국회의 만장일치 개정 의결, 대통령의 공포 등 합법적인 절차를 밟은 법 개정을 법무부가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전히 중국동포들은 임금체불, 산업재해에다 불안정한 신분으로 인한 각종 범죄에 노출돼있다. 신문 사회면에서는 중국동포들의 피해소식이 끊이지 않고 보도되고 있다. 겨울나기 준비를 미처 하지 못한 중국동포들은 민간 차원의 중국동포 보호시설로 모여들고 있다. 건설현장은 겨울이 되면서 일감이 끊기고 경기침체에 불법체류자 단속까지 이어지자 중국동포의 집에만 3~400명의 중국동포들이 모여 생활하고 있다.       
       
김진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