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년간 동포문제만 연구... 척박한 땅 개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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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간 동포문제만 연구... 척박한 땅 개척
  • 연합뉴스
  • 승인 2004.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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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인터뷰>재외동포 연구 산증인 이구홍소장
(서울=연합뉴스) 왕길환 기자 = 8일부터 이틀간 종로구 크라운호텔에서 재외동포 문제 관련 학술행사를 여는 해외교포문제연구소 이구홍(62) 소장은 올해도 감회에 젖어있다. 매년 학술대회를 열 때마다 힘들게 준비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국내외 재외동포 관련 학자와 전문가 60여 명을 초청해 '현장의 동포 목소리'를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국내 민간단체 여건에서 이만한 규모의 행사를 여는 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41년째 한글 월간지 'OK(Overseas Korean) 타임스'를 발행하고 있다. 물론 단 한 호도 빠진 적이 없다. 해외 공관이나 무역관, 한인회 사무실 등에 비치된 책자 중 단연 돋보이는 월간지로 외국에 나가 본 웬만한 사람이면 한번쯤은 본 잡지다.

이 소장은 7일 "처음 5년 버티기가 힘들지, 그 이후엔 저절로 굴러가지"라고 태연스럽게 말하지만 '척박한 분야에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전문가에게 누가 선뜻 나서 지원해 줬겠나'하고 생각해 보면 그의 속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많던 충남 부여의 논과 밭이 없어지고, 1995년 사무실을 구입하기까지 매년 한 차례씩 30여 회나 이사를 하고, 직원 월급을 주지 못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유혹도 많았지. 평생 잘 먹고 잘 살 수 있는 거액이나 사업프로젝트를 제시한 사람이 많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시절 외교관계 분야 측근이었는데, 욕심 냈으면 뭐라도 한 자리 없었겠어. 다 '노(No)' 했어."
자신은 성격상 '쓴소리'를 하는 게 맞기 때문이란다. 그래선지 국내 세미나나 공청회 등에 그가 나타나면 아주 시끄럽다. 40년 풍상을 겪는 동안 쌓인 현장 노하우는 아무래도 이론과 학술 중심인 젊은 후학들에게 자성을 촉구하는 죽비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

모두 다 외면한 길을 우직하게 걸어온 그와 재외동포와의 인연은 특이했다. 1960년대 초 한국외국어대 영어과 재학 중 그는 한일회담 반대 투쟁에 앞장섰다. 주동자급이던 그가 맡은 분야는 재일동포 문제로, 난생 처음 접한 새로운 세계가 그를 동포사회로 깊숙이 끌어들였다.

국민들의 반대에도 한일회담이 성사되자 그는 아예 학업까지 뒤로 한 채 동포문제 연구자로 발벗고 나섰다. 1963년 4월 1일 연구소를 창립했다. 그의 나이 24세 때였다.

"당돌하기 짝이 없었지.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대구사범 동창이며 막후 실력자인 엄민영 내무부 장관을 열아홉 번 찾아가 만났어. '브라질 10만명 이민론'을 말하기 위해서였지. 브라질에 10만명의 농업이민을 보내 정착시키면 그들이 보내오는 송금액으로 경제기틀을 다지는 데 유용할 것이라는 게 요지였어."
엄 장관은 묵묵히 듣고 있다 그를 다짜고짜 박 대통령에게 끌고 갔고, 청와대에서도 겁없이 이민론을 얘기했으며, 박 대통령은 즉석에서 '이민대학을 만들어줄 테니 초대학장을 맡아 잘 해보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 지시는 엄 장관이 작고하면서 유야무야됐고, 이후 잠시 맛본 영화를 끝으로 그는 고단하고 외로운 길을 오로지 자력으로 헤쳐나가야 했다.

"이번 학술대회에 오는 해외 학자와 전문가들은 전부 막역한 사이지. 하지만 공짜는 없어. 동포를 얼마나 사랑하고, 동포문제라면 자다가도 일어나는 사람들인데 나라도 대우를 해줘야지."
환갑을 넘긴 나이이지만 쇳소리를 내면서 정부의 동포정책을 비판하는 그의 눈은 빛이 났다. 그의 경험에 따르면 정부의 동포정책은 '불가근 불가원'이란다. 좋게 말해서 그렇지 사실은 '적당히 대하자는 식'이라고 다시 풀이했다.

"외교통상부가 교민청 신설을 왜 반대하겠어. 산하 기관을 만들어야 자기 밥줄이 생기는데도 반대하는 것은 교민청이 생기고 동포정책이 강화되면 외교부로선 난감한 일거리가 많기 때문이지 않겠어."
정부의 동포 현지화 정책은 이론상으로나 실제로나 잘못된 정책이라고 그는 주장했다. '미국 시민권을 가졌으니 미국인이다. 우리랑 상관없다'는 식의 동포정책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다고 단언한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재외동포 참정권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원칙적으론 참정권을 부여해야 하지만 우선 동포정책이 제대로 정립되고 나서야 논의돼야 한다는 것이 그의 소신이다. 정당(政黨)의 논리를 좇다보면 동포사회는 걷잡을 수 없이 분열된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이 소장은 밥 먹듯이 외교부에 들어가 관계자들과 싸우던 얘기, 중국동포 불법체류문제, 고려인ㆍ조선족의 문제 등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41년 간 동포문제에 천착해 살아온 그에게 그런 열정이 없었다면 현재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 동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사진있음)
ghwang@yna.co.kr
(끝)


등록일 : 12/07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