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독일의 외국인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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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변하는 독일의 외국인 정책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04.1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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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문화논쟁

네덜란드에서 이슬람 테러에 이어 신나치들과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한 방화사건으로 이어지면서 이제 그 영향이 독일에까지 번져가고 있다. 독일에서는 하이델베르그 근방 소도시에서 이슬람사원 방화사건이 있었지만, 벨지움에서 발생한 백주 테러사건 등에 관련된 테러단들이 독일을 거점으로 활동한 흔적이 나타남으로서 독일에는 다시 한번 경각심을 불러 일으켰다.


독일사회는 현재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테러사건보다도 앞으로 독일의 외국인문제에 관심의 초점을 모으며 바짝 긴장하고 있다. 외국인 정책, 외국인통합(Integration), 문화에 대한 이해 등 더 근본적인 문제가 다시 한번 열띈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

정치권은 외국인에 대해 매우 강경한 요구조건을 내세우고 있다. ‘독일어를 배우라’는 것이다. 제발 독어를 배우라고 간청을 하다시피 한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엄한 경고를 발하기도 한다. 독어가 불완전하면 복지제도의 혜택을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독일어가 불완전한 외국인은 학교에서 실패하고 직업교육의 기회를 얻지 못하며 결국 실업자 대열에서 사회보호대상자로 가는 길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또 이들은 자연히 독일인과 접촉이 단절되며 사회에서 격리되어 자기 모국어만 사용하면서 독일사회와는 관계가 끈기는 ‘평행사회’ (Parallelgesellschaften)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외국인이 자유스럽게 자신의 언어와 생활습관, 자기 문화를 유지하며 살도록 해주며 이를 방관하는 것을 외국인에 대한 ‘관용’으로 착각해왔다고 본다. 그러나 이런 형태의 관용이란 오히려 외국인에 대한 무관심(Gleichgueltigkeit)에서 유래된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슈뢰더 수상은 우리가 외국인을 받아드리려는 성의를 보이면 외국인도 그만큼의 성의와 노력이 따라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통합을 피하려는 평행사회의 존재에 대해 노골적인 경고를 보낸다.
여기서 다시 대두되는 것이 2년 여 전에 독일에 있었던 ‘주도문화’라는 개념논쟁이다. 이 개념을 제시한 아랍계열 정치학자는 서구문화와 이슬람문화를 공통적인 주도문화라고 주장했다.



주도문화라는 개념자체가 거부감을 야기시키는 것은 주도문화의 이면에는 주도문화에 짓눌리는 변방문화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즉 문화간의 우열을 전제하는 것이다. 이는 평등의 이념과는 일치할 수 없다. 따라서 특히 녹색당 등 좌파성향의 정치가들은 주도문화의 개념을 받아드리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 유럽에 사회 여건이 급격한 변화를 야기시켰다. 사고의 전환 (Umdenken) 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외국인정책을 전적으로 재고해야 할 단계라는 것이다. 외국인통합에 전력을 투입해야겠다는 것이 유럽연합 내무, 법무장관의 결정사항이기도 하다.

이들은 11개 조항을 내놓았다. 문화적인, 종교적인 다양성( Vielfalt) 은 인정하되 남녀평등의 사상과 같은 기본법을 관철하기 위해 국가는 강압조치를 취하겠다는 엄한 경고를 발하기도 했다. 지금 나타나는 독일정부의 반응이 앞으로 구체적으로 어떻게 현실화 될지는 두고 볼 문제지만 유럽이 문명갈등의 최전방이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역력함을 엿볼 수 있다.

여기서 대두되는 것이 ‘보편적인 가치관’(universelle Werte) 에 대한 이해이다. 이는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최고의 선으로 꼽히는 사회적 가치이다. 여기에는 자유, 인권, 민주주의, 남녀평등과 같은 개념을 포함시킨다. 기독교정신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유럽에서 보편적 가치를 양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가 다르고 다른 문화권 출신이라는 이유로 인간의 기본적 존엄성을 경시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이다.

이런 토론이 한창 진행되는 와중에 이슬람교도들의 저질성이 전국적으로 보도되었다. 터키인들이 이용하는 이슬람사원에서 다음과 같은 설교내용이 있었다. ‘선한 독일인도 있으나 이들은 무 종교인이므로 쓸모없는 인간이다. 저 세상에서 이들은 지옥의 불바다 세례를 받게 된다. 독일인들은 겨드랑이 털을 깎지 않기 때문에 땀이 나고 악취를 품긴다. 그래서 향수를 사용하며 향수 제조업체가 육성됐다’는 선동이었다. 몰카로 촬영한 것이다.

방송이 나간 후 이 설교자는 공식적으로 사과했다지만, 우리가 전쟁화면을 통해서나 보아왔던 원시적 이슬람교도들이 유럽의 중심부에서 천박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데 대해 독일사회에 작은 쇽크로 받아졌다.

‘다수문화사회’(multikullturelle Gesellschaft)에 대한 이해도 이제 새로운 변화를 겪어가고 있다. 다수문화사회가 과연 실질적으로 존립 가능하며 용납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70년대 이후 좌우파간에 끊임없는 논쟁의 초점이 되어왔다. 녹색당에서는 아직도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독일은 이미 다수문화사회가 되었다고 말하는 정치인도 있지만 이는 개념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반대로 녹색당 출신 환경부장관 트리틴은 다수문화는 물론 ‘관용’조차도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함으로서 민주주의 국가의 한계점을 명백히 하며 급격히 변화된 사회분위기를 반영했다.

Multi-Kulti는 이제 Inter-Kulti라는 신개념으로 대치되어 간다. ‘다수문화’가 문화의 병존을 시사하는 데 반해 Inter-Kulti 는 문화와 문화간의 간격을 의식한다.
보수계뿐 아니라 사민당에서도 이제 다수문화사회는 최종적으로 환상에 지나지 않음이 판명되었다고 주장한다. 그 결과는 주도문화의 개념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사민당 출신 슈미트 전 수상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다수문화 사회’란 성취시킬 수 없으므로 60년대 초 다른 문화권에서 외국인노동자를 불러온 것이 잘못이라는 극단적인 표현을 했다.

발췌: 베를린 리포트 http://berlinrepor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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