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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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은 동색이 아니다
  • 송광호
  • 승인 2004.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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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94년 어느 날. 러시아 하바로프스크에서 선교사업을 하던 Y목사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그가 보호하고 있던 탈북자 L씨가 모스크바로 떠났으니 연락 오면 좀 도와주라는 얘기였다.

92년부터 96년까지 모스크바 초대 특파원(지방신문 공동특파원)으로 모스크바에 상주해 있던 시절이다. 며칠 후 그 탈북자를 한 아파트에서 만났다. 처음 접하게 된 30대 후반의 탈북자였다. 탈북자에 관심이 깊던 클라우디 로젯 미 월스트리트 저널 특파원이 필자에게 “L씨 경우는 근본적으로 UN 판무관을 만나 난민으로 등록 시키는 게 좋겠다”고 조언을 했다.


솔직히 그때까지 모스크바에 UN이 개설돼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무튼 L씨를 데리고 UN 난민처에 등록을 시켰다. L씨는 조사를 받은 후 신청자 사진이 부착된 UN 발급 서류를 받았다. 이제 러시아 내의 불법체류 신세더라도 이 서류만 있으면 최소 체포는 면하게 된다는 피난민 인정서류였다. UN판무관은 이 L씨가 유엔에 등록된 최초의 난민신청 탈북자라고 밝혔다.

이로부터 수년 후 한국정부는 UN을 창구로 탈북자 문제를 검토하게 되고, 상당수의 탈북자들이 유엔을 통해 한국행이 가능해졌다. 마음 한켠 씁쓸한 기분이 남은 것은 첫 유엔 난민신청자인 L씨가 위급한 상황에 쫓기는 탈북자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UN사무실에서 판무관과 인터뷰 할 때도 그는 다리를 꼬고 앉아 싱글대며 여유를 부렸다. 마치 놀러 나온 사람 같았다.
    

그로부터 한참 후 L씨가 한국에 들어가 새로 결혼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L씨 주변에선 그가 서울에 오기까지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고 한다. Y목사조차 L씨에 대해 섭섭해 했다.


그를 보니 여기저기 ‘반공강연’ 초청연사로 다니고 TV에 출연하는 등 한껏 기고만장해 있었다. 또 북한에서 고교만 나온 터에 서울 A대학 대학원에까지 입학해 있었다. 나중에는 미 LA등에 까지 진출(?)해 북한 욕하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필자가 경험한 바로 L씨는 결코 진실한 사람이 아니었다.

탈북자들 중에는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데 슬픔을 느낀다. 지금 북한 땅에서 배고픔에 못 이겨 중국 땅으로 필사의 탈출을 한 탈북자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판단해야 한다. 최근에는 베이징에서 한 북한 외교관이었다는 R씨가 위조여권으로 토론토에 와서 피난민 신청을 했다. 한국과 캐나다 정부간의 무비자협정을 이용해 캐나다로 온 것이다.

30대의 R씨를 만나보니 그는 북한무역 업무를 맡아 하다가 북한 돈을 훔쳐 달아난 횡령범이었다. 무역일로 돈을 한탕 해 발각이 나자 중국에서 한국 위조여권을 사서 캐나다로 들어 온 것이다. 캐나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파악했는지 처음엔 그의 난민신청을 기각했다가 나중 인도주의를 부르짖는 인사들의 압력으로 결국 허용을 했지만 찜찜한 마음이다.

지금도 계속 국내외에 크게 화제가 되고 있는 탈북자들. 한국에 온 그들 중 10명중 8명이 적응을 못하고 극빈자로 전락해 있다는 통계 발표는 여러 의미를 둔다. 기아선상의 불쌍한 탈북자들을 돕자는데 이론을 펼 사람은 없다. 그러나 그들을 한번 가려 생각할 필요가 있다. 탈북자라도 다 같은 환경과 조건의 탈북자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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