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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유엔 크메르루즈 전범특별재판소 이야기“인류는 과거의 아픔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 낼 힘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백강진 유엔 크메르루즈 전범특별재판소 국제재판관  |  dongpo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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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9  10:3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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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강진 유엔 크메르루즈 전범특별재판소 국제재판관
캄보디아에서 만나는 분들에게 ‘유엔 크메르루즈 전범특별재판소(ECCC)’를 제대로 소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나아가 ECCC가 왜 ‘아직도’ 필요한지에 대해 공감을 얻는 부분은 더욱 어렵다. 그리고 그러한 어려움은 캄보디아 사람들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대학살 박물관인 ‘뚜얼 슬랭’과 ‘킬링필드’는 수도 프놈펜의 주요 관광지가 됐지만, 그 역사적 비극에 누가 책임이 있고, 그들에게 어떠한 법적 처분이 내려졌는가에 대해서도 역시 대부분 사람들은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과거의 집단 망각 현상은 새로운 것이 아니고, 이미 인류의 역사가 꾸준히 반복해 온 일이다.

ECCC(Extraordinary Chambers in the Courts of Cambodia)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캄보디아 사법부 내에 위치한 특별 재판부로서 국제 재판관과 캄보디아 판사들이 함께 일하는 혼합 형태의 재판소다. 국제 재판관은 세계 각국의 판사 자격을 가진 사람 중에서 유엔 사무총장의 추천을 받아 캄보디아 국왕이 임명한다.

크메르루즈 범죄는 1975년부터 79년 사이에 벌어졌지만, 그 후에도 내전이 계속됐고, 캄보디아 정부는 내전이 잦아들 무렵인 1997년 유엔에 크메르루즈 범죄자를 처벌하는 데 대한 국제사회의 협조를 요청했다.

장기간 협상 끝에 2003년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 사이의 협약이 체결돼 2006년 2월 ECCC는 비로소 출범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이 ECCC는 유엔과 캄보디아 정부의 타협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다. 오랜 협상 결과 현재와 같은 혼합 형태로 재판소를 두기로 하면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사람의 범위에 대해서는 크메르루즈의 고위 지도자 및 중대한 범죄행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로만 정하되, 그 구체적 선별 작업은 재판소 검사와 판사의 결정에 맡기기로 했다.

이후 현재까지 ECCC는 4개의 사건을 다뤘다. 첫 사건은 툴슬랭(S-21) 감옥의 책임자인 캉 구엑 이브, 일명 '두크'에 대한 사건으로 2012년 2월 3일 종신형이 확정됐고, 그는 현재 캄보디아 국내 감옥으로 이감돼 형을 살고 있다.

참고로, ECCC 재판에서 사형 선고는 불가능한 반면, 확정된 형에 대해 캄보디아 정부가 사면을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두크는 크메르루즈의 고위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만 여 명의 수감자를 끔찍하게 고문하고 살해한 범죄의 직접 책임자로 인정됐다.

뚜얼 슬랭 감옥은 각종 심문기록과 수감자의 사진을 비롯한 증거들이 잘 보존돼 있고, 그 기록 및 재판 과정에 대한 풍부하고 다양한 문헌자료들이 남아 있다.

두 번째 사건은 4명의 피고인 중 2명이 재판 도중 사망하고, 2명만이 남아 있다. 사건이 2개로 분리돼 첫 번째 분리사건에서 2016년 11월 23일 두 사람 모두 종신형이 확정됐다.

피고인들 중 키우 삼판은 크메르 루즈 정권의 대통령으로, 누온 치아는 국회의장 등으로 각각 재직한 바 있다.

이들은 재판 대상자 중 ‘고위 지도자’에 해당하는 사람들로 캄보디아 전역에서 벌어진 학살 행위 등과 자신들은 직접 관련이 없다는 점을 주로 주장했다.

크메르루즈 지도자들 중 널리 악명을 떨친 폴 포트나 타 목 등은 ECCC 출범 전 모두 사망했다.

위의 두 번째 사건은 사안의 복잡성과 피고인들의 건강, 나이 등을 고려해 비교적 간단한 사안을 먼저 재판하기 위해 2개로 분리됐다.

그 결과 현재 재판 중인 두 번째 분리사건은 무슬림 주민에 대한 집단 학살, 강제 결혼 등과 같이 범죄 성립 여부에 대해 다소 논란이 있는 부분을 다루고 있다. 이 사건은 2017년 6월 23일 변론이 마무리돼 2018년 하반기 중에 선고가 있을 예정이다.

세 번째 사건과 네 번째 사건은 아직 기소 전 단계다. 이 두 사건은 4명의 피의자를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그 중 임 챔에 대해서는 2018년 6월 28일 기소하지 않는 결정이 확정됐다. 위 피의자들이 “중대한 범죄행위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자”에 해당하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다투어지고 있으며, 대부분 비공개로 절차가 진행 되고 있다. 현재 수사는 모두 종결된 상태로서 최종 결정을 앞두고 있다.

ECCC는 그 꾸준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비판을 받고 있다. 먼저 캄보디아 정부의 비협조, 나아가 부당한 영향력 행사에 대해 지적하는 견해가 있고, 절차가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다거나 비용을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사실 이러한 문제점은 출범 시부터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장기간의 협상 끝에 타협안이 마련됐으나 이는 캄보디아 정부의 성실한 이행의지가 계속될 경우에만 성공 가능한 모델이었다.

특히 어느 범위까지 수사와 재판을 확대할 것인가에 대한 재판소 내부의 견해 차이는 여전히 쉽게 해소되지 않고 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고 있다. 참고로 2006년부터 2015년까지 ECCC가 사용한 예산은 약 2억 6천 3백만 달러였다.

반면 ECCC에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먼저 피해자들의 적극적 절차 참여를 들 수 있다. 특히 수천 명의 피해자들에게 사건 당사자의 지위를 부여했다.

이들은 직접 또는 변호인을 통해 진술하거나 증인과 피고인을 신문할 권리, 피해 회복을 청구할 권리 등을 행사하며 판결에는 피해자들에 대한 다양한 피해 회복 조치가 명시된다. 범죄 장소인 캄보디아 내에 법정을 설치하고 피해자들이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는 점은 이전의 다른 국제형사재판소와 차별화되는 점이다.

훈센 총리는 1997년 유엔에 도움을 요청하면서 크메르루즈의 범죄를 처벌하기에는 당시 캄보디아 사법부의 역량이 부족하다는 점을 언급했다. 여전히 이곳의 법의 지배(Rule of Law) 수준은 세계 최하위권에 머물러 있지만, 엄격한 국제적 기준을 따르는 ECCC의 재판에 관여했거,나 후일 그 내용을 학습할 이 나라의 젊은 법률가들, 그리고 지금까지 재판을 방청하거나 재판소를 견학한 오십만 명에 달하는 캄보디아인들에게 ECCC가 남긴 경험과 기록이 소중한 자산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나아가 ‘홀로코스트’ 이후 최대 규모라고도 하는 크메르루즈의 대규모 학살 행위에 대해 국제 사회가 면죄부를 주지 않았다는 의미 역시 중요하다. 모든 국제형사범죄에 대한 처벌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특히 강대국에 속하는 범죄자의 행위일 경우에는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나, 그러한 현실적 제약이 국제형사범죄행위를 정당화할 근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크메르루즈의 범죄와 비슷한 시기에 광주에서 비극을 겪었지만, 그 철저한 진상 조사와 책임자들의 처벌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고, 한국 전쟁 시의 민간인 학살이나 일제시대의 성노예,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법적 책임 또한 제대로 묻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명확한 법적 책임의 인정 없이 ‘진정한 화해’란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저린 경험을 통해 배우고 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에게 있어 가장 큰 비극은 지나간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한다는데 있다”고 했고, 칼 마르크스 또한 프랑스 혁명이 거듭, 전제정(專制政)으로 귀결되는 것을 보면서,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또 한 번은 희극으로”라는 말을 남겼다. 국제형사재판소는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치 전범재판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인류의 절실한 염원을 담고 있는 기관이다.

나치 희생자인 발터 벤야민은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보고 “역사의 광풍에 하염없이 날려가면서도 천사는 고개를 뒤로 돌려 쌓여만 가는 죽음의 잔해들을 정면으로 응시한다”고 해석했다. 비록 벤야민은 소망을 이루지 못했고, 국제정치의 현실은 다시금 우리를 어두운 반복의 길로 향하게 하려 하고 있지만, 인류는 과거의 아픔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이끌어 낼 힘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싶으시다면 ECCC 영문 웹사이트(https://www.eccc.gov.kh/en)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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