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전문가로 돌아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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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전문가로 돌아올 것”
  • 미디어오늘
  • 승인 2004.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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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아시아 전문가로 돌아올 것” [인터뷰] 카자흐스탄으로 봉사활동 떠나는 원낙연 중앙일보 기자 안경숙 기자 ksan@mediatoday.co.kr 다르다는 것은 그르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같지 않다’는 것일 뿐이다. 7년 동안의 기자 생활을 잠시 멈추고, ‘다른’ 세상으로 떠난 사람이 있다. 중앙일보 원낙연 기자. ▲ ⓒ 이창길 기자
원 기자는 지난 7일 카자흐스탄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외교통상부 산하 한국국제협력단의 자원봉사자로 2년 동안의 봉사 활동을 떠나게 된 것이다. 카자흐스탄에 도착하면 3개월의 어학 과정을 끝내는 대로 ‘고려일보’에서 ‘기자’ 신분으로 본격적인 봉사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고려일보는 1930년대 스탈린의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중앙 아시아로 이주된 고려인들이 무려 80여년간 발행하고 있는 역사가 깊은 신문이다. 러시아어판과 한국어판을 함께 발행하는 고려일보는 한창때는 1주일에 5일 발행했지만, 독자층의 감소 등으로 자금난을 겪으면서 지금은 주 1회 발행되고 있다.

컴퓨터과학을 전공하고 주로 IT 관련 취재만 해 온 원기자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된 것은 지난 IMF 때부터다. 경영 상황이 여의치 않은 회사가 1개월 순환 휴직을 실시하자 원 기자는 배낭을 메고 인도로 떠났다. 워낙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인도나 네팔 등 제3세계는 한 번도 가 본 일이 없었다.

인도에 도착한 원 기자는 말 그대로 뒤통수를 맞은 듯이 멍해졌다. “나와는 다른 세계관과 가치 속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어요. 내가 당연하게 생각해온 가치관들이 그 세계에서는 통용되지 않더라구요. 미국이나 일본 등에 업무차 여러 차례 출장을 다녔는데, 우리나라가 서구적 사회 시스템을 그대로 모방해 와서인지 이질감은 느끼지 않았거든요.”

다른 세계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충격 속에 이뤄졌고, 이후 출장이나 여행차 중국, 태국, 필리핀, 이라크 등을 두루 다니면서 제3세계 나라들에 더욱 빠지게 됐다고.

“제3세계라고 하면 후진국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인프라와 발전 양태가 선진국과 후진국을 나눠선 안돼요. 문화가 그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 얼마나 잘 녹아있느냐가 문제죠.”

제3세계 중에서도 이상하게 중앙 아시아 쪽에 끌리더니, 인연이 되려고 했는지 2년 전에는 카자흐스탄에 봉사활동을 다녀온 사람을 취재할 일이 있었다. 그 사람을 통해 국제협력단에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컴퓨터나 한국어 교육 분야만 있었을 뿐, 신문 분야는 올해 처음 생겼고, 원 기자가 그 행운을 거머쥐게 됐다.

주거비 외에 매달 390달러의 생활비를 보조받으며 2년 동안 원 기자는 고려일보에서 기자로 일하게 된다. 하지만 고려일보는 자금난과 인력난에 빠져 있어 기자로서의 고유 업무 외에 여러 가지 ‘잡무’도 도맡아 해야 한다. 원 기자는 자신의 전공을 살려 고려일보 홈페이지도 만들어 운영해 볼 구상도 갖고 있다.

“말은 봉사활동이지만 내가 배울 게 훨씬 많을 겁니다. 80년 넘게 고려인이 기록해 온 역사와, 카자흐스탄이 러시아로부터 독립하고 중앙아시아의 신흥국으로 부상하면서 고민하기 시작한 많은 문제들, ‘같지만 다른’ 고려인과 한국과의 관계 등 너무 많죠. 열심히 일하고 또 공부해서 중앙아시아 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8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16년 동안 교육을 받고, 20대 후반에는 대학을 졸업해서 직장을 갖고, 30대 초반에는 결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시작하고, 30대 중반부터는 남들에게 너무 뒤쳐지지 않도록 적당히 승진하고…

몇 살이 되면 뭘 해야 한다는, 지나치게 철저한 한국형 시간표를 찢고 카자흐스탄으로 떠난 원 기자. 아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따라갈 수 없다고 했던가. 원 기자는 이 ‘다른’ 세계와 경험을 진정 즐기고 있다.               

 

입력 : 2004.09.08 10:0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