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북한 잇는 ‘녹색경제’ 힘찬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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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북한 잇는 ‘녹색경제’ 힘찬 박동
  • 한겨레신문
  • 승인 2004.08.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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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004-08-29 21:48]

[한겨레] 간도 심장부 연길 ‘연화촌’ 두레마을 공동체 현장
중국 길림성 연길시 의란진 연화촌은 간도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잡아 천연 요새인 이곳엔 일찍이 홍범도 장군이 사령부를 두었고 김좌진 장군도 일정 기간 주둔한 바 있다. 연화촌 북쪽에는 동북항일연군 김일성 부대의 신병 훈련소 유적지가 있다. 동북항일연군의 활동무대 가운데 한 곳이던 왕청현과도 지척 거리다. 작가 박경리씨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고성촌도 걸어서 한 시간 거리에 있다. 깊은 산기슭엔 항일무장대원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돌무덤도 더러 눈에 띈다.

항일무장투쟁의 요충지이던 연화촌이 오늘날엔 ‘녹색의 가캄를 전파하는 심장으로 변신해 새로운 박동소리를 울리고 있다. 녹색의 심장이 형태를 갖춰가기 시작한 건 1998년부터다. 두레마을(대표 김진홍 목사)은 97년 연길시와 계약을 맺어 연화촌 130만평을 50년 동안 임대해 이듬해 ‘연변 두레마을’의 문을 열었다.

정병석(50) 연변 두레마을 사장은 이곳에 두레마을을 연 목적이 세 가지라고 설명한다. 첫째는 96년 이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던 북한을 지원하기 위한 식량기지 노릇을 하기 위해서다. 둘째는 한-중 수교 이후 한국과 중국의 대도시로 일손이 빠져나가 공동체 와해 현상을 보이고 있는 조선족 사회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공동체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다. 셋째는 한·중·일 세 나라가 동북아 경제공동체를 향해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장기적 안목에서 그 실현을 위한 민간 차원의 공동체 운동 기지 노릇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두레마을은 이 옛 독립운동가들의 보금자리에 지금까지 250만달러(약 30억원)를 투자해 본부 건물과 식당, 공동 목욕탕, 캠프촌, 비닐집, 운동장 등 기반시설을 갖췄다. 지역 농민 등 조선족 동포 40여명도 공동체의 식구로 들어왔다. 새로운 공동체 건설이 순조롭지만은 않았다. 냉해 피해지역이라 논농사는 소출이 적었고, 포교단체로 의심한 중국 당국의 간섭도 어려움을 더해주었다. 시행착오를 거쳐 지금은 작물을 콩으로 특화했다.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 메주 공장을 만들어 북한에 매년 메주를 일정량 보내고 있다. 또 헐벗은 북한의 민둥산에 심기 위한 잣나무 묘목을 3000평 터전에서 기르고 있다. 연변 두레마을은 묘목밭을 내년엔 3만평 규모로 확대해 북한에 묘목 지원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생태농업등 모색 재중동포 살림터 꿈꿔
콩·메주생산 특화‥황태덕장도 계획
잣나무 묘목사업은 북 산림보호에 연계

북한의 아궁이 개량을 위한 기술개발도 추진 중이다. 아무리 많은 묘목을 지원해도 산림자원을 “아궁이가 다 잡아먹기 때문”이다. 한응수 전 두레마을 본부장은 북한과 중국 동북지역에 유연탄이 많이 나오므로 이를 땔나무 대신 사용하는 보일러를 개발해 북한과 중국 동북지역에 보급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이 보일러 개발에 성공할 경우 북한 산림자원 보호와 농가 주거환경 개선, 중국 내수시장 개척 등 일석삼조의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 전 본부장은 설명한다.

연변 두레마을은 130만평 부지 가운데 30만평을 올 가을부터 단계적으로 ‘조선족 발전기금’으로 내놓아 조선족 지도자들이 스스로 운영해나가도록 할 계획이다. 정 사장은 우선 올 가을에 1만평 규모의 황태 덕장을 조성해 여기서 황태와 명란젓·창란젓을 생산할 예정이다. ‘조선족 발전기금’으로 내놓은 부지에서 나오는 이익금은 10%를 적립해 조선족 자녀들의 장학금으로 쓴다.

한국의 동북아 녹색경제발전 네트워크와 중국의 중국조선족발전연구회는 27~28일 ‘녹색 경제’를 통한 조선족 공동체의 재건을 모색해 온 연변 두레마을에서 ‘동북아 녹색경제문화 발전 심포지엄’을 열었다. 이 행사엔 환경운동가, 평화운동가를 비롯해 동북 3성의 조선족 농촌 지도자 등 250여명이 참석했다. △국제 논단 △향촌간부 논단 △교육·문화인 논단 △기업가 논단 △청년학생 논단 등 다섯 분야로 나눠 진행된 이번 행사는 동북아 평화공동체라는 장기적 목표에서부터 구체적인 생태농업·유기농업의 실천을 위한 모범사례와 경험 교류에 이르기까지 환경과 평화공동체를 결합시키기 위한 다양한 실천 방안이 토론마당에 올랐다.

임진철 중앙민족대 객좌교수는 ‘21세기 동북아 그린 르네상스 시대를 열자’는 발표에서 92년 유기농업의 과감한 도입을 통해 미국의 경제봉쇄와 식량위기를 극복한 쿠바의 사례를 전해 눈길을 끌었다. 임 교수는 “‘도시의 농업화’가 세계의 새로운 조류”라며, “베이징에 녹색대학과 테크노-에코폴리스를 조성하고 연변에 녹색대학과 에코폴리스를 조성하는 게 연변 두레마을의 미래상”이라고 제시했다.


이번 대회의 한 참가자는 “녹색경제와 동북아 평화공동체가 아직은 모색단계이지만 우리가 가야 할 미래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연화촌 방문한 ‘두레마을 설립자’ 김진홍 목사
“6만원이면 잣나무 1천그루
북 민둥산 ‘평화의 숲’으로”

연변 두레마을에서 열린 ‘동북아 녹색경제문화 발전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27일 연화촌에 온 두레마을 대표 김진홍(63) 목사는 “녹색경제야말로 조선족 사회에 새로운 응집력을 줄 수 있는 미래지향적 가치이며, 중국도 곧 녹색경제의 가치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심포지엄을 바탕으로 내년엔 북한 동포를 비롯해 미주·러시아·일본의 동포들까지 대규모로 초청해 좀더 본격적으로 동북아 녹색경제와 평화공동체 운동을 논의하고 추진할 것”이라고 청사진을 밝혔다. 그는 또 연변 두레마을의 북한 지원사업을 본격화하기 위해 ‘북한에 잣나무 1천주 보내기 운동’을 전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잣나무 4년생 1천주에 6만원이 든다. 각급 학교와 교회·성당·사찰이 작은 성의만 보여도 북한의 민둥산을 ‘평화의 숲’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일으킬 수 있다.” 지금까지 30억원 가까운 자본을 투자한 연변 두레마을의 수지타산을 묻자 “두레마을이 장사하는 곳이 아니므로 돈이 남았느냐보다 목적을 달성했느냐를 가지고 수지타산을 따져야 한다”며 “녹색경제와 동북아 평화공동체를 위한 작은 기지 노릇을 시작했다면 충분히 남는 장사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1971년 청계천 빈민촌에 활빈교회를 열면서 빈민운동을 전개한 김 목사는 74년 13개월의 옥고를 치른 뒤 76년 남양만에 두레마을을 세워 공동체운동을 본격화했다.

연길/글·사진 이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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