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집단지성’을 통한 동포사회의 발전 방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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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집단지성’을 통한 동포사회의 발전 방안
  • 권찬호 상명대학교 교수(전 시애틀총영사)
  • 승인 2017.12.27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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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찬호 상명대학교 교수(전 시애틀총영사)
동포사회와 집단지성의 필요성

“다수가 함께 모이면 몇몇 뛰어난 사람보다 더 훌륭하다. 이는 마치 연회에 한 사람이 음식을 마련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가져 왔을 때가 더 좋은 것과 같다”(아리스토텔레스, Politics: 3장).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은 없지만 누구나 어떤 무엇인가를 알고 있기 때문에 완전한 지식은 인류 전체에 퍼져 있다”(P. Levy, 1997: 38).

모두 집단지성(collective intelligence)의 중요성을 언급한 말들이다. 몇 가지 전제하에서는 “우리는 나보다 더 똑똑하다”(J. Surowiecki, 2005)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집단지성이란 무엇인가? ‘집단’이라 함은 둘 이상의 집합 중에서 상호 교류하는 무리를 말한다. ‘지성’이라 함은 다양한 환경에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행위자의 능력, 즉 문제해결 능력을 지칭한다. 물고기나 새의 무리가 집단을 이루어 움직이는 것이나, 개미들이 음식과 집 사이의 가장 가까운 길을 찾아 한 줄로 움직이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집단지성 사례이다(Wheeler, 1910). 위키피디아는 가상공간에서 다수의 지식을 하나로 취합하는 집단지성의 결정체이다. 웹에서 250가지의 집단지성 사례를 찾은 학자도 있다.

모든 집단의 지성이 우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불법을 저지르는 범죄 집단이나 사익을 추구하는 회사집단은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러나 동포사회 집단은 독특하다. 동포사회는 로빈 코헨(R. Cohen)이 말하는 디아스포라의 여러 속성들 중에서 ‘공통의 역사의식에 기초한 강하고 지속적인 민족 공동체’이다. 단체들 중에서 상당한 수준의 응집력(cohesion)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동포사회의 집단지성을 제고하면 집단의 고유한 정체성(unique identity)을 살리고 주류사회와 교류하면서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 특히, 여러 유형의 동포사회 중에서 다원주의(pluralism)의 특성을 가진 국가에서 살고 있는 한민족에게는 집단지성의 역할이 중요하다.

집단지성 형성의 필요충분 요건들

그렇다면 동포사회가 전체로서의 역량을 발휘하려면 어떤 요소들을 고려하여야 할까? 어떤 특색을 지닌 집단이 집단지성을 형성하기 쉬울까? 집단구성원들 개인의 수준이 우수하면 집단의 문제해결 능력이나 성취도가 높아질까? 어떻게 하면 개인의 능력을 키우며, 이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취합할 수 있을까?

파편화된 지식의 효율적 취합

집단지성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에 존재하는 지식들을 모아야 한다. 이 세상에는 대체로 세 유형의 취합의 프레임이 존재한다. 하나는 단순한 통계적인 취합이다. 빅데이터(big data)로 표현되듯이 빈도의 누적을 합하여 최빈값이나 평균을 구하고 그 의미를 도출해 내는 방식이다. 둘은 마치 자연계에서 다양한 변수들이 자유롭게 활동한 후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자기조직화 방식에 의한 통합 방식이다. 최근 컴퓨터사이언스에서 로봇연구나 AI연구에 응용되고 있다. 셋은 인간 세계에서 구성원들이 스스로 협력하는 방식으로 지혜를 모으는 것이다.

상부 조직이 하부조직을 통치하는 방식이 아니라 사회의 다수 집단들이 서로 협치하는 방식을 거버넌스(governance)라고 한다. 동포사회의 지성의 취합방식으로 거버넌스를 생각해볼 수 있다. 한인회를 중심으로 하여 각종 단체들, 주류사회의 조직들, 한글학교 등 지원받는 기관들, 대사관이나 총영사관과 같은 행정지원 조직들, 동포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개별 시장의 여러 조직들이 모두 협력하는 것이다. 예컨대 오지에서 한인이 사고를 당하였을 때에 가장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단체의 회원이 먼저 도와주는 것이 필요하다. 동포들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혜를 모으는 방식을 거버넌스로 제도화해야 한다.

협업의 동기(motivation) 요인

우리는 협업(collaboration)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 각자 할 수 없는 일을 두 사람이 하면 가능한 일이 많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협력이 잘 이루어지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집단지성에 참여하는 유인으로 금전, 공유, 인정, 영광, 사랑 등 이기적이거나 이타적이거나 혼합된 동기들이 거론된다. 레비는 좋은 집단지성을 만드는 조건으로 구성원들의 성찰과 구성원들 간의 신뢰를 꼽았다. 양극단의 한쪽은 이기적이고, 다른 한쪽은 이타적이다. 한쪽은 현실적이고 다른 쪽은 이상적이다.

수많은 동기이론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이론은 합리성 이론(rational theory)이다. 인간은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특별한 이득이 없으면 협력하지 않는다. 이 이득의 교환과 관련하여서는 세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직접적인 상호성이다. 주고받는 직접적인 이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간접적인 상호성이다. 내가 협력하면 동포사회에서 그 평가가 높아져서 다른 사람이 나를 도와줄 것이라고 보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일반화된 상호성’이다. 내가 동포사회에 기여를 하면 나도 동포사회로부터 무엇인가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내가 어려움에 처하거나 외로울 때 궁극적으로 기댈 수 있는 집단은 동포사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타성에 가까운 일반화된 교환으로서의 상호성이 가장 중요한 동기부여 요인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동포사회가 어려울 때 같은 동포들이 운영하는 가계를 이용하자는 캠페인을 벌일 수 있다.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 정리(‘diversity trumps ability’ theorem)

유능하고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세계를 보는 눈이 편향(bias)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동포사회의 입장에서 본다면 각 영역에서 고루 유능한 사람을 배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랑드모어(Landmore, 2012)는 “다양성이 능력을 이긴다”고 주장하였다. 이 점에서 직역별 단체장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연구에 의하면 여성들이 포함된 그룹과 포함되지 않은 그룹의 성과 차이도 크다고 한다. 조직에 섬세하고 부드러운 특성을 가미하게 될 것이다. 젊고 유능한 젊은 층을 참여시키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세대 간 다양성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페이지(S. Page, 2007)는 ‘현명한 동질적인 집단보다는 덜 현명하더라도 다양한 집단이 낫다’고 하였다.

다양성은 조직 내에서 기존에 없던 정보를 가져다주는 통로를 제공하며, 조직 내의 파괴적 속성을 제거하고, 새로운 관점을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특히 작은 집단일수록 다양성이 중요하다. 작은 집단의 리더가 주도하면 구성원이 매몰되어 다양성이 이익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구성원의 개별적인 능력보다 이 다양성이 더 중요하다. 개별 구성원의 능력을 증가시키기는 쉽지 않으나 다양성을 확보하는 것은 비교적 쉽기 때문이다.

한편 독립성이 없는 다양성은 진정한 다양성이 아니다. 각 단체들은 다양성과 함께 독립성을 가져야 한다. 집단으로서의 한인동포 사회는 각 단체들이 독립성을 가졌는지 점검해야 한다. 독립성은 자유의 극대화와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구성원의 수, 조직의 분화정도, 의사결정 구조, 재원의 동원능력과 지속성, 리더십 체계 등이 판단의 요소이다. 동포사회에서는 각 단체들이 독립성 내지 자율성을 갖도록 후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생활상담소의 경우에 지속적인 자생력을 갖추도록 후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토의와 협력을 통한 창발(creative emergence)

다양성이 높으면 협력과 취합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취합을 강조하다보면 거버넌스 체계는 홉스의 리바이어던적인 상의하달의 괴물체 하이어라키(hierarchy)가 되고, 다양성을 강조하다보면 무질서한 아나키(anarchy)가 되나, 이를 조화시키면 협력으로서의 질서가 만들어 진다. 이는 조각그림 맞추기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러나 다양성이 크다면 취합이 어렵지만 그 효과는 새롭고 창의적일 것이다. 학자들은 이를 창발(creative emergence) 또는 창의적 집단지성이라고 표현한다. 집단이 창발을 유도해 내기 위해서는 집단 내에서 구성원간 활발한 토의가 긴요하다.

현대 민주사회에서 심의의 중요성은 대의민주주의에서 심의민주주의 또는 토의민주주의로의 전이라는 말로 대변할 수 있다. 미국의 영화 “열두명의 성난 사람들(twelve angry men)”이란 영화에서 특정 피의자를 두고 12명의 배심원들 중에 11명이 유죄를 주장하고 한사람만이 무죄를 주장하였는데, 이들이 격렬한 토론 이후에 무죄로 확정하였다는 스토리는 심의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인류의 미래를 집단지성의 발전에 두고 있는 레비(Levy)와 같은 학자들은 심의를 통해 인류가 가진 산재한 지식들을 취합하여 가치를 극대화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심의의 과정이 반드시 최적의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다. 집단지성 논자들 중 다중 지식의 단순한 취합이 집단지성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측(Surowiecki 유형)에서는 심의의 부정적 결과를 우려한다. 예컨대 집단사고(group thinking)로 표현되는 편 가르기 현상에 휩쓸리거나, 사회적 증거(social proof)로 표현되는 다수의 견해를 추종하거나, 집단 동조화(conformity), 집단 양극화(polarization), 원형선회(circular mill), 집단의 광기(madness of crowds)로 표현되는 현상들에 종속될 수 있다. 집단 내에서 소수를 배려하며 토론의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하는 등의 심의의 기술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참여를 통한 정통성 확보

동포사회에 아무리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고 하여도 이들이 참여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참여는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과거에는 참여의 배제가 문제되었지만 현재는 참여의 비용이 문제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참여하는 시간에 오히려 다른 유익한 일을 하는 것이 낫다는 참여의 기회비용을 고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고등교육을 받고 주류사회에서 교류하는 전문가들이 기회비용에 민감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하루하루를 힘들게 꾸려가는 동포들의 경우에 참여가 어렵다. 동포사회의 지도자들은 이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전략을 펼쳐야 할 것이다. ‘숫자가 능력을 이긴다(numbers trumps ability theorem)’는 말은 다수가 가진 지성의 힘을 적시한 말이다.

적어도 다수의 참여를 위한 노력을 어느 정도 전개한 다음에는 이들이 참여하지 않고 뒤에 숨어서 한인회나 민주평통협의회나 총영사관을 비판하는 경우에는 무시해도 좋을 것이다. 참여의 사각지대를 찾아가 민원을 해결하여 주면서 이들에게도 대표성을 부여하거나, 일정 계층에는 회비를 작게 받거나 유예해 주거나, SNS를 통하여 익명의 참여를 확대하는 등의 방법들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동포사회 내 정보 소통의 중요성

동포들 개개인이 국가나 동포사회에 대해 무지하다면 동포사회에 기여할 수 없다. 이 점 때문에 동포사회의 소식을 전하는 커뮤니케이션 시스템과 매체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정치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의하면 언론은 여론지도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고, 여론주도층은 일반 대중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Wilcox and Cameron, 2009).

예컨대 장님들 개개인이 코끼리라는 실체나 전체를 파악하기 어렵듯 누구도 완벽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는 전제에서 본다면 상호 소통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 점에서 한인회 등 동포사회의 이슈를 만드는 기관들과 동포 언론이 여론주도층을 비롯한 동포들에게 많은 지식과 소식을 전파하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정보화 시대에 정보는 많다. 그러나 이를 가려서 바른 정보를 제대로 전달할 필요가 있다. 동포언론이 골키퍼(gatekeeper) 역할을 하는 것이다.

구성원들 개개인의 능력 제고

집단지성의 관점에서는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다면 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전제 하에서 집단의 지성도 우수할 가능성이 높다. 행위자의 능력이란 각자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를 내부시스템(internal system)에 투입하여 가공한 다음 새로운 형태로 산출하고 해석하며 설명하고 예측하는 능력을 말한다. 구성원 개인의 내부시스템이 정교할수록 더 큰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지식정보화 사회에서 지식은 곧 자본이며, 지식의 공급은 동포사회의 문제해결 능력을 높이게 된다.

그러나, 동포사회가 개별 행위자들의 능력을 인위적으로 제고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동포사회를 위해 봉사한 사람들을 표창하는 것, 각 분야에서 창의력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은 모범사례(best practice)로서 사회적인 전파력이 높다. 나아가 동포사회에서 동포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하도록 장학금을 지급하고, 한글학교를 육성해 나가며, 젊고 유능한 청년들을 발굴하고 격려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다.

아름다운 동포사회를 위하여

정보화 시대에 접어들어 사람들이 사회의 각종 조직에의 참여가 용이해지면서, 집단지성이 중요한 연구주제가 되었다. 소수 엘리트들의 결정보다 평범한 대중들의 의견이 모아졌을 때 더 현명한 결정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을 믿어야 한다. 모든 집단의 지성이 극대화되는 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동포사회 집단은 지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다.

좋은 인생은 지식에 의해 안내된다는 말(B. Russell)이 있듯이, 집단지성은 좋은 동포사회를 가꾸게 할 것이다. 동포사회가 자생력을 갖추고 지성을 발휘할 때 주류사회에서 보는 눈도 달라진다. 동포사회 지도자들과 동포언론은 집단지성의 요인을 살펴보고 집단지성 형성의 조정자, 촉진자 역할을 하여야 한다. 동포 구성원 모두 동포사회의 집단지성을 이해하고 추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