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레 네레이드’ 중남미 총판 박찬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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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레 네레이드’ 중남미 총판 박찬영 대표
  • 임광수 재외기자
  • 승인 2017.09.04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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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사업에서 전자사업으로, 다시 새로운 도전, ‘레 네레이드’ 중남미 판권 획득

▲ 인터뷰 장소에 함께 한 박찬영 대표(오른쪽)과 그의 삼촌인 김영길 프랑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수석부회장. 가운데는 임광수 재외기자 (사진 임광수 재외기자)

지난해 11월 15일 파라과이 아순시온 중심가에 세계적 프랑스 보석 브랜드 ‘레 네레이드’ 매장이 들어섰다. 이 매장은 개장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중남미 국가와 일본 등지에서 프랜차이즈를 내고 싶다는 의뢰가 쇄도할 정도로 자리를 제대로 잡았다.

장사도 하고 문의 차 가게를 찾는 이들을 맞이하기 위해 하루가 48시간이라고 해도 모자라는 삶을 살고 있는 ‘레 네레이드’ 중남미 총판 박찬영 대표를 만났다. 특히 이 자리에는 그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마다 큰 힘이 되어주고 있는 박 대표의 삼촌 김영길 프랑스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수석부회장이 함께 했다. 다음은 박찬영 대표 그리고 김영길 부회장과의 인터뷰 전문이다.


▲ 브라질 꾸리찌바에 문을 연 ‘레 네레이드’ 프랜차이즈 상점 (사진 임광수 재외기자)

임광수 재외기자 : 두 분 모두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김 부회장께서는 지난 번에 파라과이에서 개최된 ‘월드옥타 차세대 글로벌 창업무역스쿨’ 행사에서 일정이 끝나면 바로 프랑스로 돌아가신다고 했는데 아직 파라과이에 계시는군요.

김영길 : 네, 브라질 꾸리찌바 프랜차이즈 오픈 준비로 박 대표와 함께 현지답사를 하여야 하기에 더 체류하게 되었습니다.

박찬영 : 항상 삼촌께 도움만 받고 있어 감사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렇지만 추진하고 있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어 고생하신 보람이 있으실 겁니다.

임광수 : 두 분은 삼촌과 조카 사이 이신데 어떻게 해서 함께 일하시게 되었는지요?

박찬영 : 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미 자리를 잡아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전자 사업에 안주하지 않고, 제2의 창업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잠시 파라과이를 떠나 대기업 경험이 풍부하신 프랑스 삼촌께 자문을 구하려고 방문했습니다. 함께 여러 기업들의 문을 두들기며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이제는 단순한 유통업에서 벗어나 글로벌 브랜드 사업을 시작 해야겠다는 비전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 전시된 상품들 (사진 임광수 재외기자)

김영길 : 그때 저를 찾아온 박 대표는 전자사업을 돌보는 와중에서도, 프랑스 유명 브랜드 시장조사를 면밀히 끝낸 뒤 조사 자료들을 내보이며, 자문을 구했었습니다. 말도 통하지 않는 이곳에 혼자 와서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해낸 조카의 집념과 의지에 감탄했고 그때부터 제 일처럼 함께 고민하고 있습니다. 조사한 여러 브랜드 중 ‘레 네레이드’ 를 택해 수년 간 끈질기게 문을 두드린 끝에 결국 중남미 전체에 대한 판권을 획득했습니다.

임광수 : 언제 이민을 왔으며, 의류 업에 이어 어떤 계기로 전자관련 업종으로 업종을 바꾸게 되셨는지요? 그리고 그 즈음 모두들 아랍이나 브라질 상권에 밀려 거상들이 문을 닫는 상황에 박 대표는 어떻게 갈레리아 센트럴 내 12개 상가를 운영하는 사업가가 되었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 부연 설명을 좀 듣고 싶습니다.

박찬영 : 저는 군대 제대 후 92년도에 지인의 소개로 파라과이에 오게 되었고, 2년 간 할부판매업을 하다가 한국에 귀국해 결혼했습니다. 이듬해 아내와 함께 다시 파라과이로 돌아와 의류매장을 열었습니다.

하지만 그 길로는 제가 생각한 자녀 교육과 가족의 미래에 미치지 못한다는 판단이 서서 고심 끝에 전자 업종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 저는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에 합격하고도 진학을 못한 것이 한이 되어, 제 아이들만큼은 원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해 주고 싶었습니다.
 
▲ 박찬영 대표

하지만 막상 사업을 시작하니 소자본으로는 전자 제품을 취급할 수가 없어, 초심으로 돌아가 배낭을 등에 메고 지방 도시들을 돌며 카메라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발품을 팔아 하나 둘씩 주문을 받기 시작했고, 점차 밀려드는 주문에 자본과 물량이 부족하게 된 저는 더 큰 시장인 CDE로 달려가 여러 업체들의 문을 두들겼습니다.

끈질긴 시도 끝에 운 좋게도 삼성 수입상 부사장을 만나게 되어 대규모로 일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더욱더 삼성 카메라에 집중해, 피나는 노력 끝에 전에 없던 판매실적을 올렸고, 이를 계기로 연결된 수입상들과 일하며 더욱 실적을 올려 이들로부터 무제한 크레딧을 받게 되었습니다.

삼성 카메라에 이어서 아이폰 역시 가격 경쟁을 위해 직접 미국 유통사로 찾아가는 등의 끝없는 노력을 하였고, 이렇게 찾아가 어렵게 만난 판매담당과의 긴 협상 끝에 좋은 가격을 선점 할 수 있었습니다.
 
▲ 브라질 꾸리찌바에 문을 연 프랜차이즈 상점

이때부터 사업에 탄력이 붙게 되었고, 아랍은 물론 중국, 브라질 업체들과의 경쟁에서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임광수 : 앞으로 전자회사와 ‘레 네레이드’  사를 어떻게 병행하여 운영하실 계획인지요?

박찬영 : 우리 전자회사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요구에 대처해 더욱 발전해 나갈 것이며, 12개 매장을 6개 매장으로 통합하여 유통시스템을 단순화 시킬 것입니다. 또한 힘들고 어려울 때 회사를 위해 생사고락을 함께 한 직원들에게 분야별로 책임을 맡기는 소 사장 시스템을 만들고 있습니다.

 ‘레 네레이드’사는 여러 국가에서 프랜차이즈 신청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임으로 프랑스 본사와 함께 중남미 시장을 계속해서 확보해 나갈 것입니다. 이를 기점으로 중남미 외에 아시아 지역으로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임광수 : 말씀을 듣자니 지금껏 한인사회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 동안 우리 박 대표 께서 그 많은 어려움과 고충 속에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에 놀라움이 앞설 뿐입니다.

외람된 얘기 같지만, 외모 역시 워낙 귀공자같은 인상이라 그런지 대개들 고생하고는 거리가 먼, 아마도 부모의 도움에 의해 사업을 일궈가는 정도로 동포들은 알고들 있었습니다.

마치 한국의 기업인 대우그룹 김우중 전 회장을 연상시키듯, 박대표 께서 지금껏 거의 빈손으로 일군 지금의 성공담은 앞으로 우리 한인사회의 주역이 될 차세대 들에게 크게 본이 되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특별한 계획이 있으시면 말씀 해주시지요.

박찬영 : 네, 제가 알기로는 백년 이상 된 기업이 한국엔 5개, 일본은 54개, 유럽은 수천 개가 넘는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는 그만큼 한국의 기업 역사가 짧다는 뜻이고,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것이지요. 저는 꿈이 있습니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현재 있는 자리에 안주하지 않고, 열정을 다해 끊임없이 달려가 결국엔 모두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의 모토는 결코 실패하지 않는 일들을 함께하며, 함께 가는 사람들과 윈윈하며 백년대계를 위한 꾸준한 발걸음을 밟아 나가는 것입니다. 특히 세계 각국의 여러 한인들과 함께 성장하길 원합니다.

이 때문에도 프랜차이즈라는 사업형태를 선택한 것입니다. 저희들의 행보를 지켜 봐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