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에서 미군정과 일제 영향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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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에서 미군정과 일제 영향 연구
  • 김진이기자
  • 승인 2004.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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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서진규씨

“고등학교 졸업식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우리 성아가 하버드에 떨어졌을 때는 내가 충격이 더 컸어요. 그런데 지금 와서 생각하면 성아가 그냥 하버드에 갔더라면 아마도 버려진 인물이 됐을 거라고 생각돼요. 성아도 엄마가 됐는데 나도 될 줄 알았다며 실망을 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나 성아나 겸손을 배우는 계기가 됐죠.”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싶다’는 책의 저자로 가발공장 공원에서 출발해 미군 소령으로 전역하고 하버드대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서진규(56)씨는 딸을 걱정하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서씨의 딸 성아는 조지타운대에 입학했다가 2년을 마치고 하버드로 전학해 어머니와 같은 교정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다. 엄마가 어려운 시절을 보냈다는 것이 오히려 부럽다고 말하는 철든 딸 성아는 그의 긍지이자 자랑이다.

식모살이를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가 미군에 들어갔고 능력을 인정받아 소령이 되고 중령 진급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하버드 박사를 도전하기 위해 전역한 한국인. 하버드에서 ‘해방이후 미군정에서 일제의 영향’에 대한 내용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는 동아시아언어학 전공자기이기도 한 서씨의 인생은 그러나 한권의 책으로도 담을 수 없는 파란만장한 세월이었다.

1948년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딸이라는 이유로 푸대접받고 가발공장에서 ‘퇴짜’가발이 절반이나 돼 월급도 제대로 못받았던 여공이었다. 식모살이를 떠난 미국에서 운이 좋아 대학도 들어가고 월급도 많이 받는 일을 했지만 손찌검을 일삼는 남편을 만나 아이를 임신한 줄도 모르고 유산해버리는 힘든 세월을 살았다. 어찌보면 평범한 우리네 어머니의 삶을 산 그녀의 지금이 남다른 이유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그의 태도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상에서 가장 나쁜 것은 희망없이 산다는 것’이라는 그녀의 신념처럼 그는 너무나 힘겨운 순간에도 꿈을 잃지 않았고 자신에 대한 채찍질을 멈추지 않았다.

남편의 폭력 앞에서, 아들을 떼어놓고 떠나는 길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이혼의 눈앞에서 자신이 진정 원하는 걸 생각해내 군에 입대했고 상황에 안주할만한 마흔 둘의 나이에 하버드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모두에게 찾아오는 갱년기가 나른한 일상을 유혹할 때 하버드 박사를 선택했다. 중령진급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하버드 박사를 선택한 건 쉬운 길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해보겠다는 자기 기대에서였다. 생각보다 하버드 천재들과의 씨름은 힘들었다. 무시받기 싫다는 듯 세월이 그녀에게 갱년기, 시력약화 등의 신호를 보냈다. 장애를 불평할 시간에 하나씩 넘어오면서 살아온 지금까지처럼 서씨는 책과 자료에 파묻혔다.

20살, 30살씩 어른 동급생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도움을 주고 받기도 했다.
박사 논문은 한국 역사에 대한 관심을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결정했다. 한국학 전공 교수가 그의 주제를 듣고는 “하버드에서 최초의 논문 주제”라며 매우 반겼다. 이번의 한국 방문도 논문자료 수집차 일본에 오게되면서 들른 셈이다.

방대한 자료를 모아 검토하면서 서진규씨는 직접 경험하진 않았지만 일제시대 우리 부모들의 고통과 아픔을 간접 체험했다.
“한국 현대사 연구하면서 독립군의 생활을 생각하게 됐죠. 생각해보세요. 나같으면 나라위해 그렇게 했겠나. 형제, 가족들 데려다 고문하며 독립운동하지 못하게 하면 저는 형제 가족을 선택했을 겁니다. 그런 사람들의 공적을 인정해주는 건 너무나 당연하죠. 국제적으로 일본이 미움을 받는 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정할 건 하고 앞으로 나가야죠.”
미군 소령출신으로 당연한 일이겠지만 서씨는 자신을 원래 ‘박정희 신봉자’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그는 매우 냉정해졌고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미군정에 일제의 영향이 분명히 있습니다. 통치의 효율성을 위해 친일파나 일본을 이용한 측면도 있고요. 그러나 지금 와서 잘잘못을 따지자는 건 아닙니다.”
박사 논문 마무리 단계여서인지 매우 조심스런 입장을 밝히며 서씨는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진상규명 특별법 등이 진실규명 수준에서 논의됐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