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봉자의 쿠바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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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봉자의 쿠바여행기
  • 코리아미디어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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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에 도착한 지 사흘째 되는 날 우리는 첫번째 현지 관광 길에 올랐다.
대 문호 헤밍웨이의 저택을 그대로 보존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었다는 헤밍웨이 기념 박물관(Museo Momerial Ernest Hemingway)과 그가 묵었던 호텔, 그가 갔던 곳이나 작품 구상의 배경이 되었던 장소 등, 그의 살아서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는 관광코스였다. 이날 우리 부부를 포함한 일곱 명의 관광객 일행은 네 명의 소련의 여행사 여직원들과 한 명의 스페인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이드 알랙스씨는 3개 국어로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뺐다.
헤밍웨이 박물관은Havana 市에서 15km 떨어진 Sanfrancisco de Paula 촌의 Vigia Farm에 있다. 이곳은 헤밍웨이가 1937년에서부터 쿠바 혁명이 나던 다음 해인 1960년, 스페인으로 가기 전까지 살던 저택을 그대로 보존한 곳이다.
큰길에서 빠져나와 그의 영지로 들어가는 길 초입에는 보초 막 같은 매표소가 있는데, 여기서 가이드가 일곱 명의 입장권을 사서 돌려준다. 그리고 사진기와 비디오 사용 허가비는 각자가 내라고 하는데, 그 값이 상상 외로 비쌌다. 카메라는 한 대 당 $5, 비디오는 자그만치 $25라 한다. 우리는 비디오 촬영은 포기하고 내 소형 카메라만 허가비를 냈다.
각종 Palm Tree들과 빨간 꽃들이 만발한 이름 모를 꽃나무들이 들어찬 숲 속으로 난 좁은 자동차 길을 따라 약 200m쯤 가다가 길의 끝에서 차가 크게 좌회전을 하니, Royal Palm Tree들이 꼭 들어찬 정원을 배경으로 눈부시게 하얀 저택의 전경이 우뚝 마주쳐 왔다. 바로 헤밍웨이의 옛집이자 박물관인 ‘La Vigia’였다.
La Vigia는 1886년에서 1887년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1937년에 헤밍웨이가 세들어 살다가, 3년 후에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For Whom the Bell Tolls) 영화제작에서 나온 권리금으로 이 저택을 완전히 자신의 소유로 사버렸다 한다.
맨 처음 헤밍웨이가 쿠바를 방문한 것은 1930년이었다. 1929년, 전쟁의 허무함과 고전적인 비련을 테마로 한 ‘무기여 잘 있거라’를 발표한 이듬해, 야외 스포츠를 좋아했던 아버지가 권총 자살로 사망하자 극도의 정신적 충격을 받은 헤밍웨이가 현실 도피 겸, 바다 낚시를 목적으로 찾아온 곳이 바로 쿠바였다. 처음에는 Havana시내에 있는 암보스 호텔 (Hotel Ambos Mundos)에 머물다가, 37년에 이 ‘La Vigia’를 구입한 것이다. 53년에 퓰리처상을, 54년에는 노벨문학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도 바로 이 저택에서 집필됐다.
우리는 우선 La Vigia 본관을 돌아보았다. 헤밍웨이의 서재와 가구, 손님들과 함께 식사하던 식당, 아내와의 침실은 물론, 그가 사용했던 낚시 도구와 낚시 대회 수상 트로피들, 각종 사냥 용품과 사냥으로 포획한 동물들의 박제들이 방마다 가득히 전시되어 있고, 9천여권의 장서들이 서재와 집필실엔 물론 침실, 식당, 거실, 화장실에까지 구석구석 꽂혀 있다. 그는 음악도 좋아하여 세계 각지로 여행 중에 사 모은 9백 여 장의 클래식과 재즈 레코드들도 진열되어 있었다.
그는 키가 무척 큰 거인이었던 모양이다. 면도할 때 들여다 보기 위해 걸어놓은 화장실의 거울의 높이로 보아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크고 전망 좋은 거실의 그의 옛 의자 옆에는 각종 술병들이 가득 놓인 테이블이 하나 있는데, 이는 평소에 술을 무척 좋아했던 헤밍웨이가 실제로 그 자리에서 독서할 때마다 따라마시던 술병들이라고 한다.
그는 애완 동물들도 극히 좋아해서 수십 마리의 고양이와 네 마리의 사냥개들을 기르기도 했다.
헤밍웨이의 집필실은 기념관 오른쪽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3층 건물 꼭대기에 있다. 이 건물은 그가 이사와서 증축했다는데, 그는 생전에 이곳에서 선반 같이 만들어진 긴 책장 위에 타이프라이터를 올려놓고 이른 아침마다 그 앞에 선 채로 아름다운 창 밖 풍경을 내다보며 글을 썼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남달리 꽃과 나무를 좋아했기 때문에, 이 방의 창문으로는 수많은 종류의 꽃나무들과 야자수들, 그 중에도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쿠바의 나무’로 지정된 Royal Palm Tree들과, 그가 특히 좋아했다는 Giant 대나무들로 숲을 이룬 아름다운 앞뒤 정원이 한 눈에 내다 보인다. 나는 헤밍웨이가 이 창가에 잠옷 바람으로 서서 떠오르는 찬란한 태양을 바라보며 글 쓰는 모습을 상상하며 혼자 미소를 띄웠다. 마침 창가엔 탐스런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린 야자수 몇 그루가 서 있어 환상적인 이국의 정취를 더해 주었다. 내가 밴쿠버의 우리 집 정원에서 가물에 콩 나듯 드물게 보는 여름 철새 허밍버드(벌새)들도 그 곳에는 수십 마리가 꽃나무 가지마다 분주히 드나들며 꿀물을 즐기고 있었다.
숲으로 가는 오솔길 앞엔 작고 반듯한 비석 네 개가 나란히 서 있는데, 그가 사랑하던 네 마리 사냥개들의 무덤이란다. 숲 속 오솔길 옆에는 그가 생전에 거의 매일 수영했다는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옆에는 그가 친구들과 멕시코 해협에서 바다 낚시를 즐겼던 보트 ‘El pilar’가 Royal Palm Tree들의 깊은 그늘 속에 깨끗이 보관되어 있다.
노인과 바다 (The Old Man And the Sea),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For Whom the Bell Tolls) , Across the River and into the Trees, Paris Was a Party, Island in the Stream, The Garden of Eden, 그리고 그의 마지막 소설인 When Dawn Breaks 등이 다 이 집필실에서 쓰여졌다고 한다.
이 곳에는 ‘노인과 바다’를 영화화했을 때의 소도구들과, ‘노인과 바다’와 관련된 사진을 비롯하여, 그의 문학적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생전의 모습들, 또 Fidel Castro와 나란히 악수를 하고 있는 사진들도 걸려 있다. 카스트로가 젊은 나이로 민족주의를 부르짖으며 혁명에 성공한 후, 이를 축하하는 모습이라고 한다.
본관의 오른쪽 앞에는 그의 아들들과 VIP들이 머물었다는 별채도 있는데, 헤밍웨이는 이곳에서 헐리우드의 유명 배우들과 이름난 투우사들, 권투 선수들, 작가와 화가들을 초청하여 파티를 벌렸다고 한다. 그들 중에는 영화배우 조지 C. Scott와 게리 쿠퍼도 단골 손님으로 끼어 있었다. 헤밍웨이는 항상 겸손하여 조금도 허세나 거만을 떨지 않았고, 특히 사람들을 좋아해서 많은 부류의 사람들과 우정을 나눴다. 그 중에서도 그레고리오 후안테스 (Gregorio Fuentes) 씨와는 함께 멕시코 해협으로 낚시도 자주 다녔고, 후에 ‘노인과 바다'의 실제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헤밍웨이는 1928년에 코히마르(Cojimar) 라는 작은 어촌에서 후안테스를 처음 만났는데, 그의 낚시 보트 “El Pilar’도 이곳에 정박장을 두고 후안테스에게 이를 맡아서 관리하게 했다. 1930년엔 그를 월 250달러에 보트 관리인 겸 선박 요리사로 고용했으며, 쿠바 혁명 후 헤밍웨이가 1960년에 스페인으로 돌아가기 직전, 그의 마음이 한참 착잡할 때에 이 코히마르의 후안테스의 집에서 얼마간 머물기도 했을 정도로 둘의 사이는 각별했다.
후안테스는 그 후 헤밍웨이로부터 ‘El Pilar’를 상속받았으나, 그는 이것을 쿠바 정부에 헌납, 헤밍웨이 박물관에 보관케 했다. 우리의 이번 관광코스에서 빠지긴 했지만, 이 박물관에서 30분 거리에 있는 코히마르 어촌의 입구에는 헤밍웨이 사망 후 마을 사람들이 헤밍웨이를 기리기 위해 세운 동상이 서 있다고 한다.
불과 10년 전까지도 후안테스 노인은 낚시를 마치고 돌아오면 바다가 내다보이는 <카페 테라짜>(Terraza)의 창가에 앉아서 ‘모히토’를 즐겨 마시며 관광객들을 맞곤 했다고 한다. 후안테스 노인은 2002년 1월에 104세의 나이로 암으로 사망했다.
하바나 시에는 헤밍웨이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곳 세 군데가 있다. 그중 하나는 술집 겸 음식점인 El Floridita 로, 지금도 조개 음식과 헤밍웨이가 전 세계에 다니며 소문을 내서 유명해진 다이끼리(Daiquiris)라는 칵테일로 유명하다. 그곳 카운터 왼쪽 맨 끝자리엔 그가 즐겨 앉던 자리엔 실물 크기로 만들어 앉혀놓은 헤밍웨이의 동상이 빙그레 웃으며 세계에서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맞아주고 있다.
다음으로는 음식점 la Bodeguita del Medio 이다. 이곳에서 헤밍웨이는 친구들과 환담을 하며 그가 제일 좋아하는 칵테일, 모히토(Mojito)를 마시곤 했는데, 어느 때는 한 자리에서 열일곱 잔이나 마신 적도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이곳에 오면 너도 나도 모히토를 사서 마시며 세기의 문호 헤밍웨이를 추모한다. ‘모히토’는 Rum에다 라임쥬스, 민트, 설탕 그리고 잘게 부슨 얼음을 섞은 칵테일로, 한때 쿠바에 마약, 노름 등으로 Maffia 들이 들끓을 때, 그들이 선호하여 마셔서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 다음은 Hotel Ambos Mundos 이다. 이 호텔은 하바나 시내의 중심가인 ‘하바나 성당’ 근처에 있는데 헤밍웨이가 맨 처음 큐바에 와서 ‘La Vigia’에 이사 오기 전에 살던 곳이란다. 이 호텔의 5층에 있는 아파트먼트 511호 실에는 67년 전에 헤밍웨이가 사용하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보존해 놓은 채 관광객들을 맞고 있다. 우리 일행이 그 곳에 갔을 때는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발들일 틈도 없이 붐볐다. 5층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우리는 자그만치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미국의 경제봉쇄 정책으로 타격을 받고 있는 쿠바가 미국 국민 헤밍웨이로 하여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하다고 생각이든다. 그 호텔에 운둔하여 집필하던 헤밍웨이는 나중에 자기 때문에 너무 유명해져서 매일 찾아오는 친구들과 그의 애독자들로 더 이상 집필을 할 수 없도록 복잡해지자, ‘La Vigia’로 이사하게 된 것이란다.
La Vigia에서 나온 우리는 호텔 Ambos Mundos의 헤밍웨이의 옛 아파트를 돌아본 후, 그 곳 식당에서 단체로 점심 식사를 하고, Bodeguita del Medio에 들려 ‘모히토’의 딸딸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으로 가슴을 적신 다음, El Floridita에 가서 거인 헤밍웨이의 동상 옆에 나란히 앉아 활짝 웃으며 기념 사진도 찍는 등, 온통 ‘헤밍웨이’로 흠뻑 취하여 하루를 보냈다.

2004-06-09 07:5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