뮌헨 그레펠핑 묘소에서 이미륵 박사 제67회 추모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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뮌헨 그레펠핑 묘소에서 이미륵 박사 제67회 추모식
  • 나복찬 재외기자
  • 승인 2017.04.04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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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륵 박사의 '압록강은 흐른다'는 독일인에게 동양 이해의 가교 역할

그가 잠든 지 67년이 지났지만, 독일인들은 봄이 오면 여전히 한 묘소를 찾는다.
그 묘소는 1899년 3월에 태어나 1950년 3월에 유명을 달리한 한국인 이미륵의 것이다.  

▲ 이미륵박사 추모식 참석자들 (사진 나복찬 재외기자)

지난 3월 25일, 이미륵박사 기념사업회(회장 송준근)는 이미륵박사 제67회 추모제를 주최했다.

“3‧1운동에 가담했다가 독일로 망명한 이미륵 박사의 추모제를 지내며 독일에는 봄이 찾아온다”는 사회자 박미경 씨의 인사말로 추모제는 시작됐다.

기념사업회의 관계자들이 준비한 제례상은 이미 이미륵 박사의 묘소 여기저기에 놓인 화환과 리본과 함께 잘 차려져 있었다.

한국인들 사이로는 독일인들의 모습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사회자는 먼저 이미륵 박사의 간단한 약력과 작품을 소개하며, “오늘 이렇게 이미륵 박사님의 묘지가 영구적으로 보존되고 안치될 수 있기까지 큰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은 그레펠핑 시에 깊이 감사한다”고 전했다.

▲ 잔을 올리는 뷔스트 그레펠핑 시장 (사진 나복찬 재외기자)

이어서 송준근 기념사업회장은 참석자들에게 환영과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프랑크푸르트 총영사관 백범흠 총영사를 대신해 방문한 뮌헨 명예영사 토마스 옐스터 씨를 소개했다.

뮌헨에서 변호사로 일하는 옐스터 씨는 뮌헨의 신임명예영사로 임명된 사실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자신을 소개했다. 또한, “외국 땅에서 이렇게 전통적인 제례방식으로 조상을 모시는 한국인들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동서양 가교역할을 한 이미륵 박사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밤새 읽고 왔다. 이 박사의 업적과 생애를 알게 되고 이토록 귀한 초대를 받아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앞으로 한국과 독일의 가교 역할을 하는 데에 많은 관심을 보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뮌헨 코트라 은지환 관장, 아우크스부르크 한인회 파울루스 회장, 뷔스트 그레펠핑 시장과 케스틀러 부시장, 뮌헨 한인회 정하영‧신순희 전 회장과 현재 한인회 문화부장 이명옥, 한상은, 뮌헨 대학교 학생회장 이선준, 뮌헨 한글학교 박안나벨 등이 소개됐다.

▲ 잔을 올리는 뮌헨코트라 은지환 관장 (사진 나복찬 재외기자)

추모제는 뮌헨 한인회 전 회장이었으며 참석자들 중 최연로자인 정하영 씨가 초헌을 울리며 시작됐다. 이어서 송 회장은 한국에서 이미륵 박사의 유족대표 이영래 회장이 보내온 축문을 낭독했다. 초헌이 올라가고 이어 그레펠핑 게마인데 뷔스트 시장이 서툴지만 정성을 들여 절을 올리고 그레펠핑 문인협회 슈테들러 박사와 옐스터 명예영사 역시 두 손을 모아 절을 올렸다.

모두가 고인을 기리는 합동 묵념을 드리고 애국가를 제창한 후, 마지막 인사말과 함께 제67회 추모제는 막을 내렸다.

사회자 박미경 씨는 이미륵 박사 살리기 운동에 한평생을 바친 송준근 회장과 기념사업회 임원진 말고도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남긴 이미륵 박사 알아가기에 더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박미경 씨는 “어느 특정 인물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진심으로 머리를 모아 앞으로 어떻게 이미륵 박사의 묘소를 보존시켜 나가고 이 전통을 계승해나갈 것인지, 한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도 당연히 필요하겠지만, 우선 뮌헨과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의 따뜻한 관심과 보살핌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하며 행사를 마무리했다. 

▲ 지난 2011년 11월 에센 재독동포역사자료실에서 거행된 이미륵박사 흉상제막식 (사진 나복찬 재외기자)

※이미륵 박사는 우리나라가 1945년 광복되기 전 일제에 강점되었던 시기에 한국이라는 나라를 독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알리는데 크게 기여한 한독작가다. 그의 작품들에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인간에 대한 애정, 세계평화에 대한 동경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생전에 “사람은 하늘 아래 다 똑같다”는 평등주의를 주장, 결코 종교와 출신, 이념에 따라 사람을 구별하거나 차별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그가 51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장례식에는 많은 독일인 조객이 참석했다. 또한, 에센 재독동포역사자료실과 공관 등 여러 곳에는 독일 땅에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알린 고 이미륵 박사의 흉상이 있어 방문자와 후손들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