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엔 ‘무능’ 영접엔 ‘으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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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엔 ‘무능’ 영접엔 ‘으뜸’
  • 내일신문
  • 승인 2004.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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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 총체적 부실 도마위 … “세금이 아깝다” 국민들 분통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지켜보면서 국민들은 깊은 좌절감을 맛봤다. 우리 정부의 외교 무능력에 대해서다. 외교 무능력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선일씨 사건을 보면서 ‘아마추어 외교’ 수준을 넘어 ‘외교부재’의 상황까지 이르렀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최근 AP통신 보도를 둘러싼 진실공방에서 외교부 직원들의 통화사실이 속속 공개되면서 외교부 무능과 은폐의혹을 둘러싼 파장은 계속될 전망이다.

◆ 감사원도 못 믿는 외교부 = 선일씨 사건으로 외교부에 대한 감사를 진행 중인 감사원이 외교부 발표를 믿을 수 없어 모든 것을 원점에서 재조사하겠다는 뜻을 27일 밝혔다. AP통신으로부터 한국인의 피랍 여부 문의를 받은 외교부 직원이 2명이 아니라 5명 일수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다. 외교부 발표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감사원조차 확신이 없는 것이다.

전윤철 감사원장은 27일 “외교부의 업무자세, 교민 안전체제, 또 위기 상황과 관련해서 관련부처가 어떻게 종합적인 체제를 마련할 것인가 이런 것이 주안점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감사원은 28일부터 현장조사에 들어갈 예정이다.

열린우리당도 마찬가지 태도다. 27일 열린우리당 김씨 사건 진상조사단 회의에서는 외교·안보라인의 총체적 부실에 대한 불신이 끊이질 않았다. 한명숙 의원은 “김천호 사장이 대사관에 네 번이나 갔는데 피랍사실을 알리지 않은 것은 외교·안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고, 최 성 의원은 “참여정부 아마추어 외교의 극치를 보여준 사례”라고 비판했다.

열린우리당은 이날 당 차원의 외교·안보 시스템 개혁을 위한 정책기획단을 발족했다.

그러나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이날 언론사 정치부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심의 눈으로만 보면 대화가 안 된다”면서 “외교부가 거짓말쟁이가 돼 버리고…, 나라는 어떻게 되나”라고 말해 극명한 인식차이를 드러냈다.

◆ 되풀이 되는 망신외교 = 외교 부재 사례는 한두 건이 아니다. 최근 몇 년 사이에도 외교라인의 수치스러운 경험은 여러 번 나타났다. 특히 지난 2001년 중국 공안당국에 의해 체포된 뒤 ‘방어권 행사’ 한 번 하지 못하고 사형까지 집행된 한국인 신 모씨 관련 사건은 외교부재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당시 한국정부는 중국 당국이 한국인에 대해 사형집행을 했음에도 그 결과를 뒤늦게 알게 되는 외교적 치욕을 맛보았다. 당시 우리 정부는 “중국으로부터 사전통보가 없었다”며 공식 항의까지 했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중국 소재 우리 공관들이 중국으로부터 문서를 전송받고도 대장에 기록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담당영사에게 보고도 안했던 것이다. 더구나 일부 문서들은 보관조차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로 인해 당시 김하중 주중국 한국대사와 한승수 외교통상부 장관이 잇따라 대국민 사과를 했다.

2002년 5월엔 망명신청을 한 탈북자 처리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인민군 장교출신 탈북자 석 모씨가 베이징으로 잠입, 한국 영사관 관리들에게 수차례 망명요청을 했으나 번번이 묵살 당했다는 내용이다. 이 같은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되자 우리 공관에서는 ‘망명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부인했으나 나중에 사실로 드러났다. 또한 이 과정에서 대사관 직원들이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익명으로 대사관을 두둔하는 글을 올리는 등 한 번 더 망신을 당했다.

◆ 서울만 바라보는 현지 공관 = ‘외국에 있는 현지 공관에서는 서울만 바라보고 있다’는 말이 있다. 현지 교민들이 주된 관심이 아니라 출세를 위해 본국에만 관심을 쏟고 있는 점을 비꼰 말이다. 때문에 현지 공관들은 교민 안전이나 보호는 관심 밖인 대신, 국회의원이나 장관 등 본국 상관들이 외유 올 때 영접은 최고 수준이라는 낯 뜨거운 평가까지 받고 있다. ‘외교는 없고 영접만 있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사례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을 통해 지적됐다. 재외국민 보호라는 기본업무에는 무기력하면서 모든 관심을 엉뚱한데 쏟다보니 이번 선일씨 피살사건과 같은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이다. 물론 인력의 부족이나 4강 위주의 외교가 가진 한계 등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국민전체 보다는 특정 집단을 위해 존재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여론이 고울 리 없다.

외교부 홈페이지에는 질책과 불만도 끊이질 않고 있다.

‘이지현’이라는 네티즌은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인 국익 없다”면서 “자국민 하나 보호 못하고 정보력도 없고 이렇게 무능력한 곳이라면 뭣 하러 국민혈세로 만들어 놓은 건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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