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얼굴을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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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얼굴을 찾아”
  • 이혜승
  • 승인 2004.06.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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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고려인 화가들의 작품세계

중앙 아시아의 고려인들은 대단히 국제적이다. 이들은 푸시킨과 톨스토이의 문학혼을 느끼며 베쉬바르막(카자흐스탄 특유의 고기 요리)을 즐기고 산다. 120여 민족들과 섞여 사는 만큼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독일 그리고 다른 여러 나라의 문화는 고려인들에게 무척 친근하다. 하지만 고려인들은 스스로도 잘 알지 못하는 근원에의 향수를 진하게 품고 있다. 고려인들은 까레예츠(한국인을 뜻하는 러시아어. 남북한, 고려인, 조선족, 재미교포 등의 구분이 없는 한국인의 통칭이다)를 만날 때 제일 먼저 ‘본이 어디요’ 라고 물어본다. 뿌리에의 강한 집착은 다른 민족들에서보다 고려인들에게서 훨씬 두드러진다.

고려인 화가들의 작품에서도 이와 같은 시선은 알게 모르게 배어있다. 물론 고려인 화가들이 러시아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게다가 시대와 장소, 민족을 불문하고 ‘자아 찾기’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화두로 삼아 왔던 문제다. 그래서 고려인 화가들의 작품에서 정체성 문제가 두드러진다고 해도 그것을 굳이 고려인의 문제라고만 말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140 여년 동안 낯선 땅에서 거친 역사의 풍랑을 겪고 살아온 이들에게 ‘우리는 누구인갗 라는 질문은 예사롭지 않다.


고 보리스 박은 중앙 아시아에서, 그리고 소비에트 시대의 러시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고려인 판화가였으며 비운의 천재였다. 그는 1935년 알마티 생으로 레닌그라드의 레삔 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지질학자’ (1966) 시리즈를 비롯하여 ‘광부들’(1967), ‘알라 타우’(1969), ‘사릐 아르카’(1970), ‘움직임’ (1979-1980), ‘역동적 정물화’(1982) 등의 리놀륨 판화 시리즈를 남겼다. 보리스 박은 이밖에도 에칭, 수채, 구아쉬 등 다양한 기법을 이용한 삽화 작품들을 상당수 남겼다. 현재 카자흐스탄 국립 미술 박물관에는 안데르센 동화집(1981)의 수채화 삽화나 롱펠로우의 시집 ‘하이어워사의 노러(1984)의 에칭 삽화 약 60여점이 소장되어 있다. 보리스 박의 삽화는 문학 원작의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독립적인 가치를 충분히 지닌다. 서정성과 낭만성, 철학적 깊이와 동화적 환상의 결합은 보리스 박의 작품 세계 전반에 흐르면서 독창적인 그 만의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디자이너이자 판화가, 삽화가인 스뱌토슬라프 김에게 정체성의 문제는 한국적인 소재와 직접 연관된다. 그는 2000-2003년 고려인 소설가인 알렉산드르 강, 미하일 박, 아나톨리 김의 작품을 읽고 떠오른 영상을 판화로 남겼다. ‘업자’는 알렉산드르 강의 소설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성인이 된 ‘나’에게는 짐밖에는 될 수 없지만 결코 버릴 수 없는 늙고 나약한 어머니. 그 어머니를 업어야 하는 ‘숙명’은 고려인들이 러시아인들의, 혹은 카자흐스탄의 옷을 입어도 바뀌지 않는 내면의 얼굴인지도 모른다.


현재 알마티에서 활동하고 있는 고려인 화가들의 스타일은 개성이 뚜렷하다. 한 작가에게서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화풍이 급격하게 변한 경우를 발견할 수 있는데 세르게이 김이 그 예이다. 1980년대 세르게이 김의 수채화 (‘올가 게르세비캄(1983), ‘스베타’(1982), ‘노인’(1982), ‘정물’(1984)에서는 섬세한 터치가 두드러진다. 특히 ‘정물’은 신사임당의 화초 그림을 연상케 할 정도로 여성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세르게이 김은 목우회 초청으로 1990년대 초반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이후 약 8년간 붓을 잡지 않다가 1990년대 말 다시 창작 활동을 시작했다. 대담하고 단순한 선과 구성, 거의 도발적이기 까지 한 색채 등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세르게이 김의 90년대 말 이후 작품들에서는 ‘얼굴’이라는 소재가 일관되게 나타난다. ‘얼굴’은 물에 빠지거나(‘수족관’(1999) 총알이 관통하여 일그러지고 (‘총알’(2001) 철창에 갖힌 형상(‘새장’(2002-2004) 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거의 자기 조소적이기까지 한 그림들(‘포장’(2002)부터 나비, 달팽이를 품고 있는 소녀의 얼굴에 이르기까지 정체성은 고려인에 관한 것이라기 보다는 인간 본연의 실존적 문제로 확대된다.


엘레나 조는 한국인 어머니와 러시아인 아버지를 둔 혼혈 화가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고려인’이라고 생각한다. 엘레나는 그림이 그리는 사람에게서나 보는 사람에게서나 즐거운 유희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작품들은 그래서 밝은 움직임으로 가득하다. 그녀의 꽃, 춤, 풍경화 등은 즐겁고 안락한 세계를 지향하는 현대인의 요구를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상상으로 버무린 시골 마을의 그림은 어딘지 모르게 한국적 정서가 깊이 담겨 있어 엘레나 조가 꿈꾸는 세계의 편린을 드러내 보인다.


우즈베키스탄에서 알마티로 이주해 온 보리스 림은 쉰을 넘겼지만 만년 학생같은 인상을 풍긴다. 그에게 화폭은 창조와 실험, 철학 그리고 배움의 공간이다. 방탕한 천사나 샤먼, 이카루스, 예언자 등이 보리스 림의 주인공들이다. 평소에 노자와 장자, 불경 읽기를 즐기는 보리스 림은 예술과 철학을 별개로 생각하지 않는다. 촛불을 들고 어딘가를 향해 조용히 방랑의 길을 떠나는 구도자의 모습은 그래서 화폭 앞에 선 보리스 림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들 고려인 화가들의 스타일이나 소재는 그들이 벗하고 사는 민족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들은 어린 시절 보았던 혹은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서 들었던 동화속의 형상들, 한복과 초가집 지붕 위에서 마르고 있는 빨간 고추를 화폭에 담는다. 그런가 하면 카자흐스탄 전통 악기인 까브이스, 카페트, 유르트, 러시아의 사모바르(전통 화로), 넓게 펼쳐진 스텝과 지평선, 천산, 눈, 말 등의 소재도 고려인 화가들의 그림에 자주 등장한다.

어떤 면에서 그들이 그리는 ‘한국’은 그들의 ‘러시아’보다도 어색하다. 하지만 고려인들의 그림은 분명 다른 민족 작가들의 작품과 구별된다. 유목민의 혼을 받아 선이 굵고 대담한 카자흐스탄 미술가들의 작품과는 달리 고려인 화가들에게서는 섬세함과 정교함이 두드러진다. 그 섬세함과 부드러움, 정교함, 이들의 세계관이 투영된 형상들 속에서는 그래서 고려인들이 찾고 ‘꿈꾸는’ 얼굴이 짙은 흔적을 남기고 있는 듯만 하다.


사진
1. 보리스 박 (롱펠로우 시집의 삽화. 1984, 리놀륨 판화)
2. 세르게이 김(포장, 2002, 아크릴)
3. 엘레나 조(회상, 1997, 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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