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익중이 꾸는 또 다른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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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익중이 꾸는 또 다른 꿈
  • 김제완
  • 승인 2004.06.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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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적 영감은 분노를 삭힐 수 있어...”
‘임진강에 평화의 다리 설치 하겠다’

재미동포 설치 작가 강익중이 또 큰 일을 꾸미고 있다.
UN 본부 건물 대형 벽화며 뉴욕 지하철 조형물, 상항 공항 메인 홀 벽화 등 지구
촌의 평범한 사람들을 예술 애호가로 만들어내고 있는 생활 친화적 작품을 비롯
, 지난 84년 이후 무려 50,000여 작품을 제작해내면서 독일유수의 미술관 루드비
히가 선정한 '20세기 미술작가 120명'에 선정되기도 하는 등 세계수준의 작가로
우뚝 선 그의 지칠 줄 모르는 창작열이 몰고 온 이번 일은 엉뚱하게도 다리를 건
설하는 일.
그것도 금단의 지역인 38선 비무장지대인 임진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만드는
일이다.
남 북 한이 통일되었을 때 베를린의 장벽을 허무는 것과 같은 하나 됨의 상징으
로 사용할 수 있는 분단의 강을 가로지르는 평화의 다리다.
예술 그리고 예술가와 통일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강익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개인이 국가의 일부분이듯이, 국가도 개인의 일부분으로 녹아 있습니다. 국가가
반으로 잘려 팔과 다리가 서로 만나지 못하면, 거기에 몸담고 있는 개인도 역시
온전히 움직일 수 없는 것 아닙니까. 남 북 한이 서로 품고 있는 분노를 삭혀줄
수 있는 것은 상대에 대한 사랑,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예
술적 영감이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서 잠자는 의식을 깨워 주는 것이
분단의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해야 할 책임이라는 이야기다.
“평화의 다리야 말로 끊어진 허리를 이어주고 팔다리에 피가 돌게 하는 그래서
벌떡 일어서 세계를 향해 우뚝 서는 우리의 기개를 과시하는 그런 다리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그는 지난 6월 중순 고국을 찾아 임진강을 누볐다.
임진강 검푸른 물에 바지를 걷고 들어가 강 저쪽을 살피는 그의 눈빛은 예사롭지
않았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좋은 재료를 가지고 있는데 진정 깨어 있어야 할 이들은 예
술인들 입니다.
사상과 생각의 좌표를 잘 잡아 가야해요. 이태리작가 클레멘티가 6개월간 인도에
서 지내며
조국을 떠나서야 내 나라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나와서 모
든 것을 볼 수 있어야 하고 그것은 자신을 포기할 때야 가능하겠죠."
어차피 민족의 구성원인 예술가의 예술 정신도 민족의 감성이 위치 파악의 중
요한 힘이 되어야 한다는 지론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에게 있어 생존을 의미하고
있기도 하다.
사실 그의 특허품이 되다시피 한 3인치짜리 캔버스들은 생존을 위한 도구로 태
어났다. 80년대 중반, 초기 미국 유학 시절, 학교와 몇 개의 파트 타임 직장을 병
행하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 작업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그에게, 지하철에서
보내는 긴 이동시간은 그냥 흘려 보내기에는 아까운 시간이었고, 이를 작업시간
으로 전환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 바로 손바닥이나 호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크기의
캔버스였다.
그는 드로잉 도구나 수채화 물감 같은 기본 재료는 물론 때로는 실과 바늘까지
도 가지고 다니며 이동 중 작업에 몰두했다. 이때부터 강익중이 만난 이국의 새
로운 환경과 문화, 생활 들이 이 작은 캔버스 안에 고스란히 녹아들기 시작한 것
이다.
그랬던 그의 생존은 그의 성가와 맞물려 눈을 더 크게 뜨게 했고 이제 고국 한반
도의 생존에 까지 다다른 것이다.
하지만 다리를 건설하는 일, 눈으로만 즐기는 전시용 작품이 아니라 정말 사람
과 차들이 다닐 수 있는 그런 다리. 그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다리를 만드는 일
은 그간 그가 해왔던 일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역사라고 불러도 될 큰 프로젝트다
.
그 비용만도 수십억 수백억 원이 드는 일 아닌가.
이럴 때 그의 역시 예사롭지 않은 비유가 이어진다.
“예술은 낚싯대를 던지는 행위이고, 이를 끌어올리는 것은 과학입니다, 그리고
자르는 것은 경제, 그리고 최종 분배는 정치가 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이번 그의 임진강 평화의 다리 제작 프로젝트는 그의 비유처럼 경제계와 정치권의
참여와 후원을 전제로 했을 때 가능한 일. 다행스럽게도 이런 정치 경제적 측면
의 후원이 가시화 되고 있기는 하다.
중앙일보의 홍석현 회장이며 재미동포 활동가 정기열 목사, 국내의 통일운동가
민화협의 조성우 의장 등 한국인들이 중심이 되고 있는 가운데 지구촌의 유력자,
활동가들이 뜻을 모아 세계적 평화의 굿판 한판을 기획하고 있고 그 굿판의 일환
으로 강익중의 설치 작업이 거론 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문화 오픈 (WCO) 프로젝트로 명명된 이 행사는 많은 사람들의 참여와 노력
으로 구체적인 결실을 보이면서 오는 9월 중순 판문점 평양 서울서 동시에 열릴
본 행사를 향해 착착 진행 중에 있어 지난 6월 18일 서울 조선호텔서 그 구체적인
계획이 공표된 바 있다.
하지만 9월 까지는 이제 두달 여의 시간 밖에 없기에 그의 꿈의 다리, 평화의 다
리가 실제로 완공까지 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래서 그는 시공행사 만이라도
갖고 싶어 한다.
미술가가 설계한 다리, 남북한 어린이를 비롯 세계의 어린이 들이 보내온 수십만
수백만의 작은 그림으로 장식된 설치 예술 작품으로서의 다리, 그 다리가 아직
피를 뚝뚝 흘리고 있는 분단의 상처 위에 굳건하게 놓여져 혈맥을 잇는 그런 상상
만으로도 우리는 즐겁지 않은가.
그가 그간 해낸 세계 곳곳의 작품과 전시의 화두가 무엇인지 이제 우리는 안다.

스스로 공부하는 의미라면서 유엔 본부에서 가졌던 'Amazed World'의 작업도
135 개국의 34.000 어린이들의 작품들로 이루어 낸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함속에
서 타임머신을 타듯 미래를 가보자는 뜻이었다.
또 북한 아이들의 시선이 주인공인 '100.000 Dreams' 같은 작품은 분단의 아픔을
공감하는 독일의 유력지들이 ‘분단의 아픔과 고통의 극복 과정을 지난한 상상
력을 통해 표현했다’ 해서 대대적인 보도를 했다. 이 작품은 '괴테 인스티튜트'
에서 일년 반 동안 전시 됐었다.
‘상상이 부재하고 정보만 넘치는 시대에 어망을 어디에 던지느냐에 따라 예술
가는 정보를 상상해서 담아줘야 하는 책임과, 그래서 장보고 같은 개척정신이 더
욱 필요하다’는 그의 일갈에서 업그레이드 된 그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엿보게
되면서 그의 이번 프로젝트가 성공하기를, 그래서 재외 동포를 보는 고국 국민들
의 눈 또 한 한차례 더 업그레이드 되기를 기원해본다.
(안동일)

* 강익중은 1960 년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나, 1984년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1987년 뉴욕 프랫 인스티튜드를 졸업했다. 그 후 뉴욕 부르클린 에서
작업하면서 백남준 이후 국제무대에서 한국을 빛내는 미술가로 꼽히고 있다.
1994 년 휘트니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전을 열었고, 1997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한국대표로 참가하여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