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영사업무부터 먼저 개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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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영사업무부터 먼저 개혁하라
  • 경향신문
  • 승인 2004.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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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일씨 피랍·피살사건으로 엘리트 의식에 빠져 교민보호를 허드렛일로 제쳐놓는 외교부의 병폐가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지 못하는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그럼에도 정부의 분신처럼 움직여야 할 외교관료들의 무사안일로 영사업무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외교부는 지난 2001년 중국 당국에 의해 한국인 마약사범이 사형됐는데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가 ‘공문파동’까지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중국 눈치를 보며 ‘알아서 기는’ 무력한 외교 때문에 질타를 받았지만, 얼마전 설마설마 하다 탈북자 7명의 강제북송을 방치하고 말았다. 이번 김씨사건도 연장선상에서 일어났다. 주이라크 대사관 직원 14명이 57명의 교민 신변을 꼼꼼히 챙겼더라면 김씨의 목숨을 구할 여지는 있었다고 본다.

아무리 변화와 혁신을 외쳐도 구성원들의 의식과 자세가 달라지지 않는 한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 북핵문제와 쌀협상, 인권외교 등처럼 거창하고 생색내기 쉬운 정무·경제분야만 선호하는 상황에서 대교민 업무가 찬밥 대우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더구나 영·미국가들을 전전해야 성공한 외교관으로 인정받는 풍토를 바꿔놓지 못한다면 외교부의 개혁은 요원하다.

김씨 피살사건을 계기로 영사업무를 개선해야 한다. 모든 외교관들이 반드시 영사민원을 경험해 교민들의 신변문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물론 원만하게 업무를 처리하면 인사혜택 등의 인센티브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외교부가 진정으로 재외국민 보호의 중요성을 인식한다면 김씨와 같은 억울한 희생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다.

최종 편집: 2004년 06월 27일 18:3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