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러의 ‘소프트 타깃’ 재외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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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의 ‘소프트 타깃’ 재외공관
  • 한인택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6.08.05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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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공관은 재외국민과 재외동포를 보호하는 책임을 지는 우리 외교관들의 근무공간이고, 비상시에는 우리 국민과 재외동포의 최종적인 대피처다. 따라서 재외공관의 안전은 외교관의 안전뿐만 아니라 재외국민과 재외동포의 안전과도 직결된다.

최근 북한의 권력층뿐만 아니라 일반 주민, 고등학생까지 탈북하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이 점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북한은 연이은 탈북에 대한 보복을 목적으로 중국과 동남아에 10여 개의 테러조를 파견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이에 따라 망명신청을 한 북한 학생이 진입한 것으로 알려진 홍콩주재 우리 영사관에 대한 홍콩 당국의 대테러 경비가 강화되었다.

다행히 홍콩특구정부는 우리 영사관을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지켜줄 수 있는 능력과 의사가 있지만, 그러한 능력이 없거나 의사가 부족한 나라도 없지 않다. 특히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 아프리카와 중동지역의 국가들에서는 주재국 정부의 협조를 기대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홍콩 영사관의 경우 혹시라도 한중 관계가 소원해질 경우, 홍콩특구정부의 협조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에 무조건 안심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는 과거 김선일 사건을 계기로 재외국민의 안전을 위한 많은 조치를 도입하였다. 외교부 내에는 재외국민보호과와 재외국민안전과가 신설되었고, 영사콜센터, 여행경보제도, 해외안전여행 홈페이지, 문자서비스, 신속해외송금제도, 신속대응팀과 같은 재외국민보호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와 달리 재외공관이나 재외공관원을 보호하려는 조치는 그간 별로 취해지지 않아, 재외공관은 여전히 테러 위협의 ‘소프트 타깃’으로 남아있다. 현재 외교부 재외공관담당관실에서 공관에 대한 테러에 대비하는 경호와 보안시설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데, 실제로 대테러 경호와 보안시설을 담당하는 인력은 1명에 불과하다. 더욱이 그 1명의 담당자는 경호나 보안 업무 외에도 “세출 예산 편성 및 결산, 국고채무부담행위 원리금 및 이자상환 사업”도 같이 맡고 있는 현실이다.(출처: 외교부 홈페이지)

우리 공관이나 공관원의 희생이 발생하고 난 이후 뒤늦게 안전을 강화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보다는 선제적으로 안전 조치를 강화해서 재외공관과 공관원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문제는 발생의 개연성이 높은 중대한 위험이 있더라도 사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심리적, 정치적으로 힘들다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작은 위험이라도 일단 발생한 후에는 대대적으로 사후대응이 따르다가 시간이 경과하면서 무관심해지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다. 

물론 이러한 문제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보편적인 현상이다. 멀리는 벵가지 사태부터 가깝게는 리퍼트 대사 피습 사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재외공관과 재외공관원에 대한 테러공격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된 국가는 미국인데, 미국의 경우에도 대형 테러공격이 연이어 발생하고 난 후에야 비로소 공관의 안전을 위한 조치들이 본격적으로 취해졌다. 

이 글에서는 미국의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이 재외공관과 공관원의 안전을 위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


1. 외사안전 전담 직책과 조직의 필요성

현재처럼 1명의 직원이 재외공관의 대테러 경호와 보안시설에 관련된 업무를 담당하는 것은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 미국의 경우에는 ‘외사안전 차관보’ 밑에 ‘외사안전국’과 ‘외사경호처’가 있어서 재외공관의 안전을 담당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여건상 그렇게 하는 것이 힘들다면 외교부의 기획조정실 내 외사안전관직을 신설하여 그 밑에 기존의 재외공관담당관, 외교정보보안담당관, 비상안전담당관을 두고 지휘하도록 하는 대안을 생각해 볼 만하다. 


2. 사설 경호 인력 활용

미국의 경우는 ‘외사경호처’와 미군 해병대가 재외공관의 경호를 담당하고 있다. 미국처럼 별도의 조직을 창설하거나 군의 도움을 받는 것이 힘들다면, 차선책으로 사설 경호업체와 현지 채용 경호원을 이용하여 고위험국가 내 공관과 공관원을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특전사나 해병대를 전역한 장교와 사병이 많기 때문에 사설경호업체가 발달할 수 있는 여건이 우수하고, 현지채용 경호원의 경우 인건비 부담도 비교적 크지 않다. 


3. 물리적 안전 강화

폭탄테러, 총격, 방화 등으로부터 공관이 보호될 수 있도록 기존의 건물은 보강하고, 신축되는 공관은 처음부터 보안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고 건축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특히 일반도로부터 거리유지, 방벽강화, 출입구 통제 등만 아니라 건물 내부에는 비상시 대피할 수 있는 안전실(safe room)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4. 현지 정보의 수집과 활용

주재 지역과 국가에 존재하고 있거나 예상되는 위험을 정확히 평가하고, 가능한 한 예측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공관장과 공관 내 외사안전 담당자가 현지에서 수집된 정보와 분석을 활용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만약 공관과 공관원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공관의 폐쇄나 이전, 공관원의 철수까지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공관장에게 부여하는 것을 고려해 볼 만하다. 다른 나라의 사례가 반드시 우리에게 적합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미국의 경우에는 재외국민과 공관원의 철수(ordered departure)에 관한 권한을 국무부 장관뿐만 아니라 현지 공관장도 보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업, 국민의 활동영역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재외국민과 재외공관이 해외에서 처하게 되는 각종 위험이 증가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공조하거나 인류의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우리의 외교에 대해서도 불만을 품는 개인이나 집단들이 있으며, 그러한 이들이 우리 국민이나 정부를 대상으로 테러행위를 할 가능성 또한 증가하고 있다. 해외에 있는 우리나라의 모든 소프트 타깃에 대한 보호는 불가능하지만, 최소한 우리 외교관의 근무지이고, 우리 국민과 동포의 최종적 대피처인 재외공관에 대한 안전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며, 위기가 발생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 한인택, “외교안전(diplomatic security) 강화방안: 사례와 함의,” 제주평화연구원,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