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예산초교에 윤봉길 의사 흉상 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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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예산초교에 윤봉길 의사 흉상 건립
  • 유선종 기자
  • 승인 2016.05.20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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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교역 광장에 망명기점 표지석도 조성키로

▲ 예산초등학교 교정에서 열린 윤봉길 의사 흉상 제막식.

매헌 윤봉길의사 흉상건립위원회(회장 박충신, 집행위원장 윤주)는 지난 5월 15일 충남 예산군 예산읍 아리랑로 205번지 소재 예산초등학교 교정에 윤봉길 의사 흉상을 건립했다. 흉상(높이 94cm)은 황동으로 만들어졌으며 윤 의사의 실제 모습과 똑같이 제작됐다.

흉상제막식에는 박충신 회장, 윤주 집행위원장(윤봉길 의사 조카), 조각가 이진자, 국회의원 이명수, 예산군수 황선봉, 교육장 박흥진, 읍장 방한일, 교장 박재신, 도의원 김용필, 군의원 이승구‧임영혜‧명재학, 수덕사 큰스님 옹산(만해 한용운선생기념사업회 이사장),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사업회 부회장 윤용, 윤봉길 식량지키기연합 공동대표 이은혁, 월진회 회장 송정진, 이봉창의사 생가복원추진위원회 회장 이종래, 효창원 7위선열기념사업회 부회장 최석, 고하 송진우선생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김종윤, 독립운동단체 관계자, 동문 등 1000 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히 거행됐다.

윤봉길 의사는 재향시절 예산초등학교에서 열린 학예회를 관람하고, 이를 착안해 일본침략을 풍자한 '토끼와 여우'라는 연극을 만들어 향리 마을에서 공연했다. 이 공연으로 일경의 조사와 감시를 받게 된 윤 의사는 국내에서 독립운동의 한계를 자각하고, 결국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지난 1932년 4월 29일 역사적인 상해의거를 결행했다.

이 의거는 나라를 다시 찾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윤 의사의 의거는 중국 장개석 총통의 마음을 크게 감동시켜 지난 1943년 카이로회담에서 장 총통이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원인이 되었다.

박충신 회장은 제막 식사에서 “윤봉길 의사가 농촌계몽운동을 전개하면서 주창한 '세움 내움'(세상을 움직이려거든 내 몸을 먼저 움직여라)정신을 어린 새싹들에게 심어줌으로써 제2, 제3의 윤봉길이 배출될 것으로 굳게 믿는다”고 말했다.

또한 윤주 집행위원장은 “제가 뛰어 놀고 공부하던 모교 교정에 흉상을 건립해 감개무량하며 윤봉길 의사가 큰 뜻(장부출가 생불환)을 세우고 지난 1930년 3월 6일 망명길에 오른 출발점인 삽교역 광장에 망명기점 표지석을 세우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