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달보다 더 값진 올림픽 본선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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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달보다 더 값진 올림픽 본선 진출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6.04.25 0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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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변방국가 선수들과 한국 지도자들에게 박수를
▲ 박정연 재외기자

브라질 리우 올림픽이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지난 2일(현지시각) 그리스 올림피아 헤라신전에서 드디어 성화가 채화됐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탈 많고 시끄러웠던 4.13총선이 끝나자 이제 국민들의 관심이 다가올 올림픽에 조금씩 쏠리기 시작한 상태다. 하지만, 전 세계 모든 나라들이 우리나라처럼 메달색이나 성적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 반대편 여러 나라들을 살펴보면 올림픽 출전권 획득 자체가 화제가 되는 나라들도 적지 않다. 기자가 사는 국민소득 1,100불의 가난한 나라 캄보디아도 예외는 아니다. 사실 동남아나 아프리카 가난한 나라들은 올림픽 본선에 진출하는 것만으로도 그야말로 ‘가문의 영광’이다.

이들 나라들이야말로 근대올림픽 창시자 쿠베르탱 남작이 강조한 그저 ‘참가하는데 의미를 둔다’는 표어에 가장 충실한(?) 국가들이다. 캄보디아는 1896년 근대올림픽이 생긴 이래 단 한번도 ‘자력’으로 본선무대를 밟은 적이 없다. 70년대 중반 잠시나마 스포츠 중흥기를 경험했지만, 곧이어  ‘킬링필드의 시대’가 열리는 바람에 국제스포츠무대에서 거의 종적을 감추고 말았다.

그 후 캄보디아 스포츠는 무려 30년이 넘는 긴 암흑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이 되어서야 태권도 종목 손 다빈 선수가 첫 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 역시 자력 진출이 아닌 ‘와일드 카드’ 출전이었고, 결과는 참담하게도 첫 번째 본선경기 패배였다. 당시 경기를 지켜보면서 느낀 점은 “이 나라는 올림픽과는 지지리도 인연이 없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난 16일(현지시각) 뜻밖에 낭보가 날아왔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올림픽본선진출자격대회에서 손 다빈 선수의 여동생인 손 시브메이 선수(+67kg급)가 금메달을 따 리우 올림픽본선진출권을 획득했다는 소식이었다. 현지 국민들은 물론이고 신문과 방송 언론들도 이 소식을 크게 다루며 기뻐했다. 훈센총리도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이 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축하하는 글을 남겼다. 

솔직히 이미 세계스포츠강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 입장에선 올림픽 본선진출권 획득이 큰 뉴스와 화제가 된다는 사실 자체가 언뜻 이해가 안 될지 모른다. 하지만, 반세기 전 낡은 흑백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마음 졸이며 우리 선수들을 응원하고, 이름 없는 작은 국제대회 메달소식에도 환호하고 열광하던 과거 우리 모습을 회상한다면 결코 이해 못할 일도 아니다.

참고로, 이번 리우 올림픽 본선 진출권을 딴 손 시브메이 선수는 지난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에서 사상 처음 조국에 금메달을 안겨주어 큰 화제를 모았던 선수이기도 하다. 지난 주 캄보디아 올림픽평의회(NOC)는 올림픽 개막식 기수로 손 시브메이 선수가 결정됐다고 전격 발표했다. 

남미에서 최초로 열리는 이번 리우 올림픽은 우리 국기(國技)인 태권도 종목 말고도 본선진출에 기대를 걸만한 종목이 또 하나 있다. 대한민국에 올림픽사상 첫 금메달을 안겨준 종목이 바로 레슬링이다. 이 나라 스포츠 계에서는 아세안 게임을 비롯해 국제대회에서 여러 차례 금메달을 안겨다 준 초우 소띠아라 선수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5월 터키 이스탄불에서 열리는 아시아선수권 토너먼트대회에서 입상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둔다면 본선진출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들 두 선수에게 대략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첫째, 둘 다 여성 선수이고 둘째는 이 선수들을 지도하는 감독들이 모두 한국인이라는 사실이다. 태권도 종목은 현재 최용석 국가대표감독이 지도하고 있으며, 레슬링 종목은 김수길 감독이 가르치고 있다. 

태권도에 이어 레슬링 종목까지 올림픽 본선 진출에 성공한다면 캄보디아 스포츠 사상 최초로 올림픽 자력 진출 선수들을 두 명이나 배출하는 셈이다. 현지 언론들도 두 종목 모두 감독이 한국인이라는 점을 강조해 기사를 내보냈다. 

지난해 5월 부임한 김수길 감독은 초우 쏘띠아라 선수의 본선진출을 위해 오늘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특히, 초우 선수는 남한과 북한 출신 감독으로부터 수년간 지도를 받은 특이한 경력을 가진 선수다. 그녀는 최근 대한레슬링협회 지원으로 한국에서 한 달여 간 전지훈련을 갖기도 했다. 김수길 감독은 초우 선수의 재능을 높이 사며 “감독 본인의 이름을 딴 세계적인 특허 기술을 적절히 활용한다면 충분히 본선진출권은 물론이고 본선에 가서도 기대 이상의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어느덧 메달수로 국력을 과시하거나 순위를 매기며 평가하던 시절은 지났다. 우리 국민들도 더 이상 메달 수나 성적에만 집착하지 않고 스포츠를 즐기는 팬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은메달에 머문 것이 아쉬워 시상대에서 질질 짜는 선수들의 모습은 이미 흘러간 추억이 되어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팬들도 메달색깔이나 국적에 상관없이 선수들이 노력하고 선전하는 멋진 모습에 더 환호하고 박수갈채를 보낸다. TV를 통해 전해지는 진한 감동은 분열된 국민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고 국가 간 친목을 도모할 수도 있다. 이게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며 근대올림픽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일부 스포츠 선진국을 뺀 대부분의 나라 선수들은 본선에 진출해 세계무대에서 기라성 같은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자 명예로 여긴다. 캄보디아 같은 가난한 동남아나 아프리카 선수들은 평생 단 한번이 될지도 모를 이 무대를 오르기 위해 지금 이 순간도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그리고 가난한 나라 선수들 뒤에는 자랑스러운 우리나라 출신 지도자들이 여럿 있다. 우리나라 스포츠계의 위상이 그만큼 올라갔다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것 같아 가슴 뿌듯하다. 국적 불문 올림픽 출전을 위해 열심히 땀 흘리는 선수들뿐만 아니라 먼 타국 땅에서 외국인 선수들을 지도하느라 고생하고 있는 우리 지도자들에게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