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이 류이치(土肥隆一) 전 의원 추모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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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류이치(土肥隆一) 전 의원 추모행사
  • 김희정 원코리아 이사장
  • 승인 2016.03.2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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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양국 화해를 위해 애쓴 노고 기려

‘살아있는 양심’으로 불리며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 애쓰다가 별세한 도이 류이치(土肥隆一 전 의원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3월 26일 오전 일본 도쿄의 요도바야시 교회에서 열렸다. 

 
한·일 양국의 많은 사람들 가슴 속에 깊은 감동으로 남아있는 도이 류이치 전 의원은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의 과거사 반성을 촉구하는데 앞장서다가 77세의 나이로 올해 1월 22일 별세했다. 고인은 7선 중의원을 지내며 일본이 과거사를 직시하고 한국과 일본이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게 하려고 많은 힘을 쏟았다.
 
이날 추모예배는 미네노 다쓰히로 요도바시 교회 담임목사가 이끌었고 고인의 유가족, 간 나오토 전 일본 총리를 비롯한 정계, 교계 인사들과 한국 측 대표로 김영진 전 농림부 장관과 장상 전 총리서리, 김희정 사단법인 원코리아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장 전 총리는 도이 전 의원이 돌아가시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것이며 모든 것을 잃었지만 내 양심은 이렇게 편할 수 없다’라고 했던 말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성을 받은 사람만이 그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도이 전 의원은 일본인 뿐만이 아니라 모든 신앙인의 양심을 대변했고 그분의 삶은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웠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도이 전 의원은 한일 관계에 관한 올바른 역사인식을 가지고서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실천하신 분이다. 고인의 삶을 생각하면 너무 숙연해지고 마음이 아프다. 이 시대의 진실한 하나님의 종이었다”고 추모의 말을 전했다. 
 
도이 전 의원은 1998년 한일기독의원연맹 창설을 위해 일본을 방문한 김영진 전 국회의원으로부터 부친이 일제 강점기에 일본 탄광으로 징용됐다는 얘기를 듣고 울면서 용서를 빌었다. 그러한 인연으로 한일기독의원연맹의 한국측 대표회장인 김 전 의원의 뜻을 받아들이고 사죄하는 심정으로 일본측 대표회장을 맡게 됐다. 
 
"일본과 한국의 화해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겠다. 한일 관계는 나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밝혔던 도이 전 의원의 갑작스런 별세 소식에 일본의 역사 인식 문제나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오랫동안 같이 협력을 해왔던 김 전 의원은 가장 먼저 일본 고베의 빈소를 찾아 조문을 하고 추모 예배를 함께 추진했다. 그는 향후에도 도이 전 의원의 뜻을 기리는 활동을 계속해서 펼쳐나가겠다고 말했다.
 
도쿄성시화운동본부 오영석 회장은 "평소 김치를 좋아하시던 고인이 입원해 있을 때 김치를 가지고 병문안을 가서 김치파워로 빨리 자리에서 일어나시라고 말하자 몸을 움직이며 반응했던 기억이 있다"며 이렇게 빨리 가실 줄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유가족 대표로 인사를 전한 고인의 동생 겐이치씨는 “형님은 어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항상 기도하고, 본인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행동했던 분이다. 집안에서는 절대로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사실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잘 몰랐지만 형님이 돌아가신 뒤 여러 관계자들을 만나며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형님은 희생과 봉사로 평생을 사신 정말 훌륭하신 분이었다”고 말했다. 
 
추모예배가 끝난 뒤 고인의 외아들인 준 씨에게 지금 심정을 물었다. 그는 “ 집에선 정치나 바깥 이야기를 전혀 안 하셔서 아버지가 어떤 일을 하셨는지 잘 몰랐다. 돌아가신 뒤에야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또 오늘 추모사를 들으며 우리 아버지가 참 훌륭하신 분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아버지가 자랑스럽고 그래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라고 말했다. 
 
준 씨에 따르면, 한·일 양국의 화해와 화합을 위해 애쓰다가 일본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어려운 위기에 처하고 극우 세력의 공격에 심하게 시달리다가 돌아가셨지만 한국을 원망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님은 정치인 이전에 목사님 이셨다”는 말로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그의 모습이 잔잔한 감동으로 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