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국간호사 파독 50주년을 되돌아보며
상태바
[기고] 한국간호사 파독 50주년을 되돌아보며
  • 이영남 재독작가
  • 승인 2016.02.11 09: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74년 함부르크 파독간호사 이영남, 프랑크푸르트 행사 참관기

올해는 파독간호사 5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다. 1974년 함부르크로 파견됐던 이영남 간호사가 재외동포신문으로 한장의 편지를 전해왔다. 프랑크푸르트 시에서 주최한 '한국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행사'를 참관한 소감이 다소 흥분되고 감동적인 어조로 적혀 있다. 50년 전 프랑크푸르트 시장이 파독간호사들에게 50년 후에 같은 자리에 다시 모시겠다는 약속을 지킨 행사였기 때문이다. 감동은 큰 규모나 많은 내외빈들이 아닌, 사람들을 대하는 진정한 마음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파독 간호사들을 위해 이런 진정성 있는 행사를 마련하고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이영남 간호사가 보내온 편지 전문을 게재한다. - 편집자 

 

프랑크푸르트 시장으로부터 온 우아한 편지 한통

행운을 가져 준다는 "붉은 원숭이 해"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1월 초 고급스런 편지 한 장을 받았습니다. 수신인 주소를 보니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Frankfurt am Main) 시장으로부터 온 편지로 겉봉에 프랑크푸르트 시의 우아한 마크까지 찍힌 편지였습니다.

 
 호기심에 급하게 뜯어보니 “프랑크푸르트 지역 및 그 주위에 온 한국간호사 파독 50주년을 축하하며 여러분들을 초청합니다.” 라는 내용으로 Peter Feldmann 프랑크푸르트 시장님의 이름과 서명이 된 초청장이었습니다. 행사는 2016년 2월 2일, 16-18시로 프랑크푸르트 시 황제홀에서 개최된다는 내용의 특별한 초청장이었습니다.
 
▲ 한국국기와 독일국기가 나란히 걸린 프랑크푸르트시 황제홀
 
 우선 이 행사에 대하여 언급하기 전에 아주 간단하게 “한국간호사 파독진출시대”가 시작된 경위 및 그 배경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서독에 한국 사람들이 오기 시작한 것은 1966년으로 공장 계통 및 간호학생 그리고 유학생 등등 가톨릭교회 계통으로 오신 분들이 있다는 기록은 있지만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서독에 대거 진출하게 된 시기는 1963년 약 8,000여 명의 “파독광부취업 진출”과 함께 1966년 1월 31일 1차 “파독간호사진출”을 시작으로 1976년까지 약 10,000여 명이 넘는 한국간호사들이 서독에 취업하게 되면서 한국인 독일이주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에서 “한국간호사 서독진출”에 공헌한 두 분과 그 뒷 배경을 설명하자면 1966년 이전엔 간질환전문의이셨던 이종수 박사님이 간호교육 차원에서 간호학생 및 파독간호사 취업진출에 관계하셨습니다. “한국간호사 서독진출시대”가 열리게 된 것은 이수길 박사님이 주선한 1966년 1월 31일 제 1차 파독간호사들이 취업차 서독으로 오게 된 시기부터입니다. 
 
한국간호사 독일 진출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이수길 박사님
 마인츠대학병원 소아과병동장으로 계셨던 이수길 박사님은 자신의 병원은 물론 독일 전역의 병원 및 양로원에서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간호사 문제가 병원 문제만이 아닌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됐을 이 시기에 한국간호사를 초청하여 취업 하게 할 좋은 기회라고 판단하여 한국간호사 초청에 대한 서한을 여러 곳에 발송하게 됩니다.
 
 이 때 헤센 주 정부 “Brunnert 시장님을 비롯하여   Schultheis 씨 그리고 헤센 주 의사협회 등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 일이 성공적으로 성사 되면서 파독간호사 취업 진출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그 후, 이수길 박사님은 한국에 들어가 128명의 실력 있는 한국간호사들을 선발하였고 이들을 데리고 오게 됩니다. 128명의 한국간호사들은 예쁜 한복으로 갈아입고 프랑크프르트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들을 기다리던 독일인들이나 언론인들은 이 화려한 도착을 대환영하였고 이를 대서특필하였습니다. 
 
 또 Brunnert  시장님은 관례적인 정부 행사나 대관식 및 귀빈들을 접견할 때만 사용한다는 프랑크프르트 시청 황제홀에 이들을 초청하여 환영 영접까지 해 주었으니 그때 현황을 그려보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황홀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
 
 환영사를 해 주신 Brunnert 시장님은 환영사에서 50년 후에 꼭 이 자리에서 다시 환영리셉션을 열어 주시겠다고 약속까지 하셨다니 한국간호사 서독취업의 시작이야말로 성공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을 성공시킨 이수길 박사님은 “파독간호사 독일 진출의 대부”라고 부를 만큼 큰 공헌을 하신 분입니다. 
 
해외개발공사 발족과 함께 정부차원으로 진행
 그 후, 파독간호사 서독진출은 매스컴을 통해 전 독일에 알려지면서 각광을 받게 되었고 각 연방지역마다 한국간호사들의 취업을 선호하게 되면서 2차 3차 4차... 등으로 이어졌고, 그 후 “해외개발공사”가 발족되면서 민간차원에서 정부차원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 파독간호사 독일진출의 대부로 불리는 이수길 박사님과 함께 한 파독간호사들
 
 이렇게 시작된 “한국간호사 서독취업이주” 에 대한 평가는 매우 긍정적이었고 선호적이었습니다. 병원만이 아니라 독일 사회에 잘 융합한 한국간호사들을 통해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갔고 각 개인들은 “민간외교관 역할“까지 해냈으니 간호사이주는 성공적인 이주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공로가 인정되어 50년이 지난 올해 다시 1차 한국간호사들을 초청해 황제홀에서 감사 리셉션을 열어 주었다는 것은 파독간호 역사에 대한 또 다른 획기적인 일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렇게 독일에 진출한 한국간호사역사는 “대한민국 간호사역사”는 물론 “한국 여성사”에서도 잊혀져서는 안 될 귀중한 가치를 가진 특별한 역사라고 생각하며 더 나아가 “한국인 해외 이주취업 역사 및 한국인 독일 이주 역사”에 큰 공헌을 한 역사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한국간호사들이 파독됐던 1966년 경 대한민국은 어디에 위치해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만큼 불모지 같은 나라였으며 또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나라였다고 합니다. 이런 절박한 상황에 저희들이 보낸 송금이 한국경제개발에 초석을 놓는 역할까지 그 한몫을 담당했다고 하니 더욱더 감개무량하며 현재 대한민국의 발전을 보면서 조심스럽게 자화자찬도 해 봅니다.
 
아름다운 시청건물에 나란히 걸린 한국국기와 독일국기
 2016년 2월 2일 이른 아침 함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약 4시간에 걸쳐 프랑크프르트 역에 도착하였습니다. 다시 전차를 타고 프랑크프르트 시청 앞 Romer 광장에 도착하니 시청건물은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건물입니다. 무엇 보다도 눈길을 끈 것은 시청 건물 벽에 달아 놓은 한국국기와 독일국기 두 개가 행사를 축하하는 듯 평화롭게 펄럭이는 모습이었습니다. 이 두 국기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진정 한국과 독일에 감사하면서 남편 몰래 눈물을 닦았습니다.
 
 “한국간호사 파독취업 50주년”을 축하해 주기 위하여 이렇게 신경을 쓰고 배려해 준 프랑크프르트 시장님을 비롯하여 여러 관계자분들의 따스한 손길에 감사하면서 이 역사적인 현장을 되도록 많이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사진셔터를 막 눌렀습니다. 
 
 홀에 들어서니 올해 87세나 되신 다는 파독간호사의 대부 이수길박사님이 휠체어에 앉아서 오시는 분들을 손수 맞아 주셨고, 50년 만에 만났다는 동료들의 감격소리와 환호 소리가 천정 높은 홀 안을 한 동안 울렸습니다.
 
▲ 프랑크푸르트시 황제홀을 가득 메운 파독간호사들과 관련인사들
 
 50년 전의 홀 안은 그대로였으나 128명 중 겨우 12명이 참석하여 아쉬움이 있었고 또 그때 그 청순하던 모습은 없지만 어려운 삶의 고비를 잘 넘기신 듯한 부드러운 모습으로 변하신 대 선배님들을 보니 그래도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융숭하게 환영리셉션을 개최해 주신고 50년 후를 약속하셨던 Brunnert 시장님은 없었지만 그 분의 약속을 지키시기 위하여 이 행사를 주관하신 현재의 시장님과 그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보낼 수 있어 이 행사는 그야말로 기쁨의 자리였습니다. 
 
 이 행사의 주인공들은 역시 제 1차 파독 간호사들로 부부동반으로 초청되었으며 그 외의 한국 파독간호사들을 비롯하여 프랑크프르트 시청 및 시 의회에서 오셨고 몇몇 중요 병원관계자들 및 프랑크프르트 지역 중요 언론사 그리고 한국 언론사 등 약 150여 명이 참석하였습니다. 
 
한국간호사들의 희생적인 업적 지금도 잊지 않아
 이 행사를 주관해 주신 프랑크프르트 보건사회 부시장님의 환영인사로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부시장님은 “한국간호사들이 독일 전역에 남긴 그 희생적인 업적은 지금도 잊지 않고 있다"며, "오늘 이 행사를 통해 그 동안 여러분들의 희생적인 노고를 프랑크프르트 시를 대표하여 전할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프랑크프르트 한국공관 및 1차로 오신 대 선배님의 답사와 이수길 박사님의 답사가 있었으며 꽃다발 증정 및 합창으로 1부 행사가 끝났습니다. 이어 깔끔하고 담백한 음식과 함께 2부 순서가 진행된 뒤 모든 순서가 끝났는데 조촐하지만 매우 의미 있는 행사였습니다.
 
▲ 한복을 차려입은 간호사 합창단의 합창공연
 
 이 행사가 있기 전에 “파독간호 50주년을 되돌아보면서” 라는 제목 아래  이수길 박사님 및 1차 간호사들을 중심으로 프랑크프르트 주요 언론계, 신문 및 방송 그리고 TV 등에서 인터뷰가 이어져 다시 한 번 한국간호사 파독 50년 역사에 대하여 되돌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매우 기뻤습니다.
 
 이 행사를 선두로 2016년 5월 20-21일 날 재독간호협회 주최로 “한국간호사 파독 50주년 기념행사”를 펼친다고 하니 지금부터 기다려집니다.
 
 아 참으로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10,000여 명이 넘는 한국간호사들 중에는 3년 계약을 마친 뒤, 한국으로 돌아간 분들도 많지만 다시 미국, 캐나다, 호주 및 뉴질랜드 등 여러 나라로 흩어져 현지에서 한국사회를 형성하기도 하여 간호사들이 여러 나라 해외 진출의 선구자 역할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 나이팅게일의 후예답게 간호사로 근무를 하였지만, 수간호사, 병원장, 간호학교 교수 등으로 전공분야를 더 발전시키신 분들도 있으며 화가, 음악가, 의사, 교수 등 완전히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신 분들도 있습니다.
 
 그 중에 조신자 간호사는 독일에서 주는 “연방 십자 훈장”을 받기도 하였으니 무척 자랑스럽습니다. 그런데 몇 년 후면 현장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 모두가 연금으로 들어가면 아마도 파독간호 역사의 한 페이지를 기록한 채, 잊혀 질 것이고 또 기억하는 사람들조차도 적어질 것이라 생각됩니다.
 
 요즈음 교포신문에 “장례식 알림”난에 아는 분들이나 대 선배님들의 이름도 섞여 있는 것을 보면 애틋한 마음과 함께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기도 하지만  이렇게 세월은 오고 또 가나 봅니다.
 
아직도 정다운 사진 한장 '오십시오 서독 후랑꾸후루도로'
 이 지면을 빌어 마지막으로 꼭 언급하고 싶은 사진 한 장이 있습니다.
 
 이 사진은 마치 “한국간호사 독일진출”을 대표하는 것 같은 사진으로 파독간호사 역사를 말하려면 꼭 이 사진이 대두 됩니다. 이 사진은 1966년 1월 31일 예쁜 한복을 입고 프랑크프르트 공항에 도착한 128명의 한국간호사들의 모습을 찍은 것으로 독일언론통신 (DPA) 이 찍었다고 합니다.
 
▲ 당시 독일언론통신에서 찍어 독일에서 한국간호사들을 유명하게 했던 사진(사진 파독간호사관련자료집)
 
 
 이 사진은 곧 프랑크프르트 지역을 비롯하여 전 독일 언론지 및 신문과 TV 등에 보여 졌는데 이 사진을 보고 한국간호사를 기꺼히 받아드리겠다는 병원들이 늘었다고 하니 사진 한 장의 위력에 놀라기도 합니다. 이 사진은 마치 “파독간호사의 진출과 그 역사”를 상상할 수 있을 만큼 골동품 같은 사진으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초창기 한국간호사들의 청순하고 꿈 많던 예쁜 모습이라던가 누구의 아이디어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색하지만 정이 물씬 나는 한글로 쓴 환영플랑카드에서 독일인들의 세심함과 배려가 느껴 저 지금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이번 행사에서 황제홀에서 만난 대 선배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또 이 사진이 떠올랐습니다. 현재의 모습에서 50년 전 그 앳된 모습을 찾으려 했으나 찾지 못해 세월의 탓이라고 괜스레 세월만을 탓했지만 이제는 할머니들로 여생을 살고 있어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이렇게 세월에 따라 독일에 뿌리 내린지 반세기가 지나는 동안 열심히 사신 파독간호사님 모두에게 그저 “장하십니다.” 라는 감사의 박수를 보내면서 모쪼록 남은 인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기도 합니다.
 
 “오십시오 서독 후랑꾸후루도” 라고 한글로 쓴 환영플랑카드가 그저 정답기 그지없습니다.
 
 
               
- 1974년 독일 함부르크에 파독한 이영남 간호사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