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성 정책 프로젝트 맡은 박경애 UBC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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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무성 정책 프로젝트 맡은 박경애 UBC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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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4.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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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룡 기자
roh@coreamedia.com

캐나다 정부가 한국과의 관계 발전을 위한 장기적인 정책 개발에 나섰다. 지난해 한국-캐나다 수교 40주년을 맞아 각종 행사를 치렀으나 협력관계 증진의 획기적 전기가 되기엔 미흡했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캐나다는 수교 50주년인 2013년까지 양국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우고 목표지점으로 가는 로드맵을 그리기로 했다. 박경애 (48·사진) 브리티시 콜럼비아 대학 (UBC) 교수는 캐나다 외무성으로부터 그 밑그림의 설계자 역할을 의뢰받았다.

“지금 상태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10년 뒤 양국관계가 어떤 위치에 있어야 할 지 목표 (goal) 를 정하고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한 실행계획 (action plan) 을 마련하자는 것이지요.”

앞으로 10년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 각 분야에 걸쳐 이뤄야 할 양국간 교류단계를 연도별로 적시하고 그에 합당한 실행안을 만들어내는 프로젝트다. 정부가 구체적 외교 현안에 관해 정책자문을 받는 경우는 있지만 포괄적이고 장기적인 비전 설정을 외부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박 교수는 “특별한 가이드 라인 없이 큰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한 것이어서 어깨가 더욱 무겁다”고 ‘숙제’를 받은 소감을 밝혔다.

캐나다 외무성이 이처럼 박 교수를 전폭적으로 믿고 정책 프로젝트를 맡긴 데는 지난 10년간 쌓아온 ‘각별한 인연’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문제 전문가인 그는 2002년 2월 북한과 캐나다가 수교하는 과정에서 막후 인물로 활약했다. 95년부터 세 차례에 걸쳐 캐나다 대표단의 일원으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두 나라 정부 사이에 다리를 놓았다.

“93년 UBC로 온 뒤 캐나다 외무성에서 북한에 관한 브리핑을 하면서 외교 당국자들을 알게 됐지요. 당시 북한과의 대화채널이 전무한 상태였어요. 이런 경우 정치인들이 직접 만나는 것보다 학자와 같은 민간 채널이 더 효과적일 수 있지요.”

미국에서 학술회의를 통해 친분을 쌓은 북한 학자들이 대북 채널이 됐다. 당시 국제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북한 학자들은 주체과학원과 사회과학원의 영향력있는 인물이어서 접촉 라인이 되기에 적합했다. 북한과 캐나다는 번갈아 대표단을 보내면서 교섭대표의 수준을 높여 2001년 말 양국 외무장관이 수교에 합의했다.

북한-캐나다 수교는 물론 남북 정상회담과 햇볕정책, 미국의 대북 유화정책으로 조성된 평화무드에 힘입은 것이다. 이 무렵 독일·프랑스 등 유럽연합 (EU) 대부분의 나라들도 북한과 국교를 맺었다.

박 교수가 이 역사적인 외교무대에서 활약한 배경에는 햇볕정책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정치학계에서 그에게 ‘Miss Sunshine policy’란 별명을 붙여준 것은 그 때문이다. 그는 북한-캐나다 수교에 기여한 공로로 2002년 서울대 동창회가 주는 관악상을 받기도 했다.
박 교수는 한국-캐나다 관계 프로젝트 조사를 위해 현재 한국을 방문중이다. 주한 캐나다 대사관이 짠 그의 방한일정은 정부와 재계, 사회단체 등 두 나라 협력의 접점이 되는 한국쪽 요로를 망라하고 있다.

지난 연말 한국방문 직전인 박 교수를 그가 부소장으로 있는 UBC 아시아연구센터내 한국학연구소에서 만났다.

- 한-캐 협력 증진을 위한 실행계획에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 아무래도 전통적으로 중시해온 정치와 경제협력, 무역관계가 골격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사회·문화 분야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싶다. 특히 교육부문이 활기를 띠고 있는데, 교육시장 개방과 관련해 균형잡힌 발전을 모색해 보고자 한다. 한국에서 캐나다에 많은 유학생이 오지만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가는 학생은 극히 드물다. 너무 일방적이고 의존적이어서는 균형적인 발전이 어렵다.

- 북한에 관심을 갖고 북한사람들을 접촉하게 된 계기는?
▷ 박사학위 논문이 중국과 북한의 공산주의 정치체제를 비교하는 것이었다. 순수하게 학문적으로 북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미국 대학교수로서 미국·중국·일본에서 열린 회의에서 북한 학자들을 만나게 됐다.

- 수교 이후 북한과 캐나다의 관계는?
▷ 활발한 교류는 아직 없는 상태다. 대사급 수교지만 캐나다는 주중 대사가, 북한은 주유엔 대사가 각각 겸직하고 있다. 북한이 캐나다에 직접 대사를 두기 위해 대사관 부지를 물색한 일이 있었는데 성사되지는 않았다.

- 출범 1달째인 폴 마틴 정부의 대북한 정책은 어떻게 예상하나.
▷ 한반도 정책이 전면적으로 바뀌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미국과의 보조를 맞추다 보면 아무래도 강경노선이 우세하지 않을까 싶다.

- 6자 회담 전망은?
▷ 빨라야 2월쯤 열릴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은 길고 험한 길 (long and winding road) 의 시작이다. 1월중 간행되는 학술지 <버클리 저널>에 기고한 글에 그런 전망을 썼다. 핵문제는 북한이 미국에 대해 갖고 있는 단하나의 협상용 무기다. 미국이 요구하듯이 무조건 다 포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협상이란 어느 정도 주거나 받거니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앞으로 중국의 역할이 커질 것이 분명하다. 중국이 중재에 나서면 북-미 모두 무시할 수 없다.

- 올해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북한문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 부시 행정부는 후세인도 잡혔고 시리아도 핵포기 선언을 하는데 굳이 북한에 많은 것을 줘가며 양보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고 마냥 미룰 수도 없고, 아무 성과없는 회담을 하는 것도 선거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래저래 북한은 다루기 힘든 문제일 수밖에 없다. 선거과정에서 이른바 ‘북풍’ 같은 돌발상황이 만들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 핵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명확하다. 북한은 핵무기를 들고 싸우겠다는 게 아니라 경제회생을 위해 미국을 상대로 협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의시간에 학생들에게 “북한은 미국을 위협하는 방식으로 미국에 구해하고 있는 것 (North Korea is making a love call by threatening Washington.)”이고 얘기하곤 한다.

“북한 외교정책의 첫번째 목표는 미국과의 국교수립입니다. 미국의 경제제재에서 벗어나야 경제회생이 가능하기 때문이지요. 한국 자본만 갖고 북한경제를 살릴 수 없습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자본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미국이 하라는대로 하기는 싫으니, 국제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는 방식을 들고 나오는 거지요.”

한국인에게 북한문제는 정치학이 아니라 분단과 통일과 이념의 문제다. 해방과 전쟁에서부터 핵문제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민족의 아픔이 배어있는 역사의 굴곡이다. 그만큼 객관화하기 힘든 민족감정의 문제이라 뜻이다.

박 교수는 북한 전문가이면서도 민족정서나 이념성이 탈색된 학자의 길을 고수해 왔다. 외국서 한반도 문제를 공부하고 북한에 왔다갔다 한 사람이 흔히 덮어쓰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학문과 자신의 이념을 일치시킨 송두율 교수와는 정반대편에 서 있는 셈이라 할 수 있다.

이념성향에 대해 묻자 그는 “사안에 따라 다른 것이지 일률적으로 진보·보수로 딱지를 붙이는 건 질색”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같은 내용을 한국에 가서 강연하면 ‘진보’라 하고 북한에서 얘기하면 ‘보수’라 하고 미국에서 얘기하면 ‘중립’이라 평가하곤 한다고 덧붙였다.

박 교수는 북한 학자를 초청한 학술 세미나를 여러 차례 주관했다. 학문적 접근임을 강조해도 이데올로기에 민감한 사람들은 그를 ‘친북파’라 낙인찍어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곤 했다. 세미나 참석을 초청받은 사람으로 제한하고 언론 인터뷰를 가능한 한 피해온 것은 불가피한 자구책이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작고 가냘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회의진행 등을 당차게 이끌어 회의장의 ‘마가렛 대처’로 불리기도 한다. 맡은 일을 자신이 원하는만큼 깔끔하게 처리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기질을 나타내는 말로 들린다.

한국에 가면 “정치학 교수 같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는 그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한국사회에선 여성과 정치학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특히 한인사회의 보수성을 지적하며, 미혼여성 학자인 자신이 학생들의 롤 모델이 돼서는 안된다는 한 학부모의 얘기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일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보편적 가치 (universal value) 와 다원적 사고 (pluralism) 를 배워야 한다”며 “외국에 사는 잇점이 그런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 지낸 20년간의 대학교수 생활에서 우러나온 고언이다.


[입력: 2004년 1월 1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