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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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을 좋아하는 일본사람들
  • 아리랑
  • 승인 2004.05.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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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경교수의 오사카통신 22회
옛날 이승만 대통령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명언을 했다. 또 요즘 일본사람들이 흔히 쓰는 말 중에서 「빨간 신호도 단체로 넘어가면 겁 않나」라는 말을 한다. 집단을 좋아하는 일본인. 이 집단을 지향하는 사회가 20세기의 공업화 사회에서 경제대국을 만든 원인이 되기도 하지만, 앞으로의 21세기 정보화 사회에서는 반대로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20세기의 공업화 사회에서는 대량생산으로 싸게 물건을 만들어야 되는 사회였다.



20세기에 어떤 상품들이 발명되었을까?  자동차, TV, 냉장고등 각종 전자제품 등 현재의 우리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많은 물건들이 발명되어 사람들의 생활이 편리해 졌고 윤택해 졌다. 이런 제품들이 나오자 모든 사람들이 그 물건을 원했고, 사람들의 경제활동은 그 물건을 구입하기 위한 것이라고 까지 말할 수 있다. 즉 사람들은 돈을 버는 경제활동을 한다. 왜 돈을 벌까? 잘 살기 위해서다.



잘 산다는 것은 좋은 집 큰집에 살려는 욕구도 있지만, 좋은 자동차 좋은 전자제품을 구입해서 편리하게 살려고 하는 욕구도 있다. 이런 모든 사람들이 욕구를 충족시키려면, 물건을 대량으로 또 싸게 만들어야만 했다. 대량으로 싸게 생산하려면 다품종 소량생산이 아닌 소품종 대량생산이어야 했고, 그렇게 하려면 규격생산 이어야 했다. 이런 규격품 대량생산 방식은 집단 생산방식이어야 편리하게 또 저가격으로 생산 할 수 있다.



물건을 생산하는 회사에서는 계획된 제품을 일사분란하게 생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 생산방식에는 집단성을 원했고, 집결된 각 종업원의 동작이 좋은 물건을 만들 수가 있었다. 이런 방식에는, 각 개인의 능력 및 개성은 희생 되어야만 가능했던 사회였다. 이 생산방식과 집단 지향성의 일본인의 특성이 아주 잘 맞아 떨어졌기에 20세기의 경제대국이 된 것이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 개인과 개인을 비교해 보기 바란다.



한 사람 한 사람을 비교해 보자. 대부분의 경우 한국 사람이 훨씬 위다. 외모는 물론이요, 두뇌도 우리 한국 사람이 위다. 심지어는 가라오케에 가서 부르는 노래까지도 우리 한국 사람들이 더 잘 부른다. 그럼 왜 20세기에 일본은 경제대국이 되었는가? 이 집단 지향의 민족성이 20세기의 공업화 사회가 요구했던 특성과 아주 잘 맞았기 때문이다. 일본 말 중에 「튀어 나온 못은 얻어맞는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개인의 개성을 죽여서 원만한 성격으로 소속된 집단의 구성원이 되라’는 말이다.



일본에 살다보면 개인의 능력을 무척이나 인정하지 않는 사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 무엇으로 그 사람을 인정한다는 것인가? 그 사람이 소속된 단체로서 그 사람을 평하려는 것이다. 즉 어느 사람이 명함을 내밀었다고 했을 때, 그 사람보다는 그 사람이 소속된 회사의 이름으로 그 사람을 평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능력보다 회사의 능력이 우선조건이 되는 것이다. 특히 개인의 신용도가 문제가 되는 은행 출입인 경우는 더욱더 그렇다.



그 사람이 소속된 회사가 일류회사이면 일사천리이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는 그 반대이다. 이처럼 일본은 개인을 중시하는 사회가 아니라 집단을 중시하는 사회인 것이다. 즉 집단 지향성은 일본사회 전체가 개인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며, 모두들 그것에 맞추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이런 집단지향성이 반작용을 만들어서 웃기는 일도 가끔씩 있다. 일본 사람들처럼 유행을 좋아하는 민족도 드물 것이다. 유행을 아주 잘 만들어 낸다. 세 사람 중 두 사람이 어느 물건을 가졌을 경우, 다른 한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그 물건을 사서 지니려고 한다. 이런 현상은 특히 여고생 사회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



몇 년 전 목이 느슨한 스타일의 흰색 긴 양말 「루즈삭스」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런 양말을 안 신으면 친구들의 집단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양말이라는 성능은 두 번째이고 너도나도 그 양말을 사서 신었다. 루이비통 등의 유명 브랜드의 상품들. 제일 큰 고객이 아마도 일본인일 것이다. 옆 사람이 브랜드 가방을 들었기에, 나도 죽기 아니면 살기로 그 가방을 지니려고 한다.



아마도 지니지 못하면 그 집단에서 이탈되고 마는 것처럼. 또 이탈되고 마는 경우도 있다. 얼마 전 일본과 중국이 벌컥 뒤집힌 사실이 하나 있다. 일본의 어느 회사에서 중국으로 단체로 사원위문 여행을 갔다. 그 회사원들 2백 몇 십 명이 단체로 매춘을 한 것이다. 그 사원들 중에는 틀림없이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일사불란하게 단체로 행동했다. 만약 “나는 싫어요” 라고 말 하는 사원이 있었다면 그 사원은 아마도 그 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했을 것이고, 그것이 무서워서 싫어도 “하이 하이” 하면서 따라 들어갔다고 생각된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용납이 될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경우처럼, 위에서의 명령은 일사분란하게 잘 따른다. 한국에서 일본 사람들이 단체로 관광을 온 표정들을 한번 지켜보기 바란다.



그들은 단체로 있을 때, 또 단체의 일원으로 있을 때는 얼굴에서 생기가 돈다. 그러나 그 단체에서 이탈이 되어서 개인이 되었을 때는 너무나 나약한 모습이 얼굴에서 바로 느껴진다. 그 나약한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바로 얼굴에 나타나고 만다.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저런 얼굴을 가지고 어떻게 침략 전쟁을 할 수 있었을까? 개인으로 있을 때 보다 단체로 있을 때가 더 생기가 도는, 행복해 보이는 그런 민족인 셈이다.


2004년 04월 25일 (14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