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권 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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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샀어요"
  • 선데이교차로
  • 승인 2004.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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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어버이 날이다.
대학 3학년 때 잃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자꾸 지워지는데 반해 3년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하나의 끊어지지 않는 영화 필름처럼 반복의 꼬리를 문다.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한 기간은 약15년 정도로 생각된다.
평소 냉면을 좋아 하신 아버지는 아주 추운 비바람 겨울을 제외하곤 냉면을 잡수셨다.
사리를 비우신 다음 약간의 밥을 육수 국물에 말어 드시면 그 뒷맛을 쉽게 잊지 않으신다고 하셨다.
냉면 만큼은 평안도의 제 맛을 느끼기에 다소 부족하지만 그래도 가깝다고 재팬타운 고려정에서 늘 드셨다.
날씨도 추운데 왜 이곳에서 드시냐고 물으면 냉면은 추운곳에서 먹어야 제 맛을 느낄 수 있는데 여기는 날씨가 더위 제 맛을 찾기가 힘들지만, 그래도 재팬타운이 언덕위에 있어 찬 바람을 느낄 수 있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식후에는 꼭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 커피를 마시기 위해 미국식 다방에 가셨다.
찬 냉면을 드신 후에는 뜨거운 커피를 마셔야 하는 괴팍한 식성을 가진 셈이다.
커피는 아버지가 무엇과도 바꼴 수 없는 마음의 피난처였다. 어머니는 커피를 부르죠아의 독성이라고 부르던 기억이 나지만 커피 한잔을 입에 대는 순간 아버지는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모든 시름에서 완전히 해방 된듯 편안한 얼굴에 숨겨진 미소도 엿 볼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가는 곳이 동네 코너에 있는 작은 마켓이다.
중국인 주인과 간단한 목 인사를 나누면 주인은 로토 머신 앞으로 간다.
두 사람사이에 대화라곤 중국어 몇마디. 영원한 단골처럼.
약간의 중국어를 하셨던 아버지는 이곳 주인을 통해 중국어를 꼭 테스트 하셨다.
일부러 중국인 마켓을 찾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복권은 받고 5달러를 건네면 중국인과 거래는 끝난 것이다.
복권은 왜 매일 사느냐고 물으면 대답하지 안으셨다.
그 돈을 모아 맛있는 것 잡수시면 더 좋겠다는 마음에 불만도 있었다.
복권 같은 사행심을 믿지 싫은 필자로서는 그 돈이 늘 아까웠다.
아버지는 평소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 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셨다.
또한 자식이 언론에 종사 하는 것도 늘 못 마땅하게 생각하셨다.
노력하고, 욕 먹는 것에 비해 생활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잘 된다고 말해도 그 말을 믿어 주질 않었다.
왜냐하면 당신 자신이 오래 동안 한국 언론계에 계셨기에.
언론과 고생을 동일시 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 판단이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특히 두 형제 함께 언론계에 있는 것은 더 더욱 견디기 힘들어 했다.
나이 더 먹은 형은 어쩔 수 없지만 너라도 장사를 해보라고 하셨다.
이제는 나이도 있고 경험도 없어 힘들다고 하면 왜 용기가 없는냐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복권을 사기 시작 하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아버지가 적은 용돈 중에서 복권을 사는 이유가 있었다는 것은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우연히 알게 되었다.
한 아버지의 知人으로 부터 아버지가 이번주에는 복권이 꼭 맞아야 되는데 하며 기다린다는 말을 들었다.
"그 나이에 무슨 복권이냐"고 여쭈었을 때 필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튀어 나온 대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다 너희들 때문이지"
"예..."
"자식들이 다 언론에 있으니 언제 돈을 벌겠나."
그말을 들은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아버지의 따듯한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흰 마리카락을 날리며 부라운 잠바를 걸치신 아버지의 그 때 얼굴은 아직도 눈앞에 생생하다.
어리석게라도 자식을 도와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우리가 그 뜨거운 마음을 정녕 알 수 있을까.
자식이 생전에 부모님의 깊고 넓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살아계실 때 부모님께 효도하라는 말씀은 변할 수 없는 진리였음을 늦었지만 이제는 알겠다.
자동차 창밖으로 보이는 로토 머신.
저 머신에 담긴 나 혼자만의 그리움은 어버이 날을 맞아 변함없이 하늘나라에 전해질 것이다.
"아버지 저 오늘 복권 샀어요."

샌프란시스코 선데이교차로 김동열 0501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