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민 한국어는 ‘계승어’, 새로운 연구 접근법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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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민 한국어는 ‘계승어’, 새로운 연구 접근법 필요”
  • 허겸, 김영기 기자
  • 승인 2015.03.31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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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 인터뷰식 혼용어’의 주류 정보전달 순기능 주목..권순희 교수 ICKC 창립 4주년 포럼서 제안

 

 #사례1- “에스테이트 에이전시(부동산)에 노티스(퇴실 전 사전 고지)를 해요. 그러면 에스테이트 에이전시에서 나와서 인스팩션(관리상태 점검)을 해요. 인스팩션 받고 본드(사전 예치금)를 되돌려 받게 되지요.”(호주)

 #사례2-“우리 아시적(아이 적)인디. 청일전쟁 때 다섯 살, 여섯 살 때, 그 우리 촌 영감 무시긴가(무엇인가) 하니, 우리 원동(극동)서 본 것 같은 분이라, 우리 근처에 살지. - 중략- 그 거기에 담벽욱(담벼락)이 나면 다 듣지요.” (우즈베키스탄)

 #사례3-(학생에게 책을 한권 주겠다고 했던 강사가 깜빡 잊어버리고 있었다. 학생이 찾아와서 마치 맡겨놓은 것을 달라는 어투로 강사에게 말한다.) “선생님 책 주세요.”(미국)

 #사례4-머리가 똑똑하신(윗사람에게 쓰지 않음) 선생님들께서는 색종이에 자기 자신에 대해 쓰기로 하였습니다.(한국 다문화가정)

  교민들이 사용하는 한국어는, 한국 국내에서 사용하는 한국어와 특성이 구분된다는 점에서 ‘계승어’로서 별도의 지위를 부여하고 관련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현지어와 한국어를 혼용하는 해외 동포들의 이른바 ‘박찬호 미국 진출 초기 인터뷰’ 식 언어 사용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우려섞인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따라서 한국말로 현지 주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부각된 이번 연구사례는 신선한 접근법으로 관심을 모을 전망이다.

  권순희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30일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이사장 박갑수.ICKC) 창립 4주년 기념 포럼에서 “역사가 흘러가면서 여러 나라마다 교민 공동체가 사용하는 한국어는 우리나라의 한국어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하고 이를 연구,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제언했다.

  권 교수는 이날 ‘다중언어 사회에서의 한국어 교육의 방향’이라는 주제 발표에서 한국어를 크게 ‘국내 다중언어 사회’와 ‘국외 다중언어 사회’로 나누고 각각 유형별로 다시 구분, 모두 7가지 유형별 사례를 제시했다.

  이 가운데 ‘계승어로서의 한국어’가 참석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 언어의 유형별 구분
  계승어로서의 한국어는 국내 고교생들에게 일어, 중국어, 스페인어처럼 제2외국어로서 한국어가 간주되는 외국의 사례를 말한다. 한국어가 다민족 국가의 소수언어로 인식되는 경우다.

  권 교수는 “국내 다문화 배경을 가진 학습자가 배우는 한국어와 구별되고 한국어가 공식어가 아닌 해외에서 사용되는 점에서 ‘계승어(heritage language)’라는 용어로 사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와 관련해 호주의 사례를 예시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즈(NSW)대학교 연구원 및 한국학 초빙교수를 지낸 권순희 교수는 “(사례1은)호주의 부동산 제도를 알지 못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며 “조사와 어미만이 한국어이고 대부분의 어휘가 영어라서 마치 영어를 듣는 느낌이 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 같은 표현이 이민자와 유학생들의 일상적인 말투가 돼 버린 사실에 주목한다고 했다.

▲ 권순희 이화여대 교수(사진=김영기 기자)
  권 교수가 참조한 선행연구 논문(장명환)에 따르면 계승어로서 교민 한국어는 “다수의 사용자가 역사적, 사회적 현상과 유기적으로 결합하며 장기간 사용할 때 생명력을 얻게 되는 언어”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권 교수는 “해당 언어는 주류사회에서 이런 표현들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긍정적 기능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어를 익히고 외국으로 건너 간 이민 1세대 또는 1.5세대들은 스스로 사용하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여긴다. 그러나 한국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다른 사례가 적지 않다. 이번 연구는 현지어와 혼용되는 양상을 띠는 경우에도 긍정적인 측면에서 연구할 가치가 있음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와 관련, 권 교수는 “호주와 캐나다의 영어가 영국식 영어 또는 미국식 영어와 차이가 있지만 또 하나의 영어로서 연구 되듯이 계승어로서의 한국어에 대한 연구도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발표에 인용된 선행 연구 ‘논문(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의 이주와 삶.글누림.2015.김균태, 강현모)’은 계승어로서 한국어와 국내에서 사용되는 한국어의 차이를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권 교수는 “(사례2의)‘아시적, 무시긴가, 담벽욱’ 등은 방언적 성격이 있고 ‘크다나니까’ 등은 북한이탈주민들의 ‘하다나니까’에 비춰볼 때 고려인의 한국어는 북한어와 유사한 점이 있다”며 “해외 학자와 연구, 협력을 통해 방언적 요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권 교수가 인용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 관련 논문에서는 한국어가 정체성과 결합돼 있음을 보여주는 적절한 사례가 등장한다.

  1937년 9세의 나이로 러시아로 이주한 맹모 씨는 60년 넘게 한국어를 잊고 살아왔다. 자녀들과 러시아어를 사용했고 심지어 고려인들과 만나 대화할 때에도 러시아어를 사용했다. 그러던 맹씨는 김균태 연구자를 만나 60여 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어로 대화를 나누게 됐다.

  처음에는 몇 개의 단어만 알아들었지만 이내 한국어 어휘들이 살아났다. 맹 씨는 “한국말을 사용하면서 가슴이 뜨거워졌다. 마음이 통한다. 죽기 전에 한국에 가보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는 한국어 사용을 통해 정체성에 대한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으로 김균태 연구자와 권 교수는 보고 있다.

▲ ICKC 창립 4주년 기념 포럼이 30일 방통대에서 열렸다.
  권 교수는 상황별 한국어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그는 “(사례3은)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잘못된 것이 없다”면서도 “한국 문화로 봤을 때 ‘책을 달라’는 것은 명령어이기 때문에 강사에게 버릇없다는 불쾌감을 줄 수 있어 의사소통을 방해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이와 함께 사례4는 통상 윗사람에게 쓰지 않는 ‘똑똑하다’는 표현을 사용한 점이 지적됐으며 “문법 또는 어휘, 조사 위주로 가르쳤던 한국어 교육에서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 어떤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것이 한국어 교육의 과제”라고 말했다.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에 이형모 본지 발행인은 권 교수의 제언이 참신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밝힌 뒤 “한국어는 남북한과 해외동포를 합쳐 8000만 명이 사용하는 언어”이며 “국내에서 5000만 한국인이 사용하는 한국어가 표준 한국어”라고 강조했다.

  이어 “호주 한국어, 우즈벡 한국어가 존재하는 것이 하나의 현실이지만, 한인 공동체와 한인 문화를 수렴할 수 있는 훌륭한 표준 한국어를 육성, 발전시켜야 하고 그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은 한국 정부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포럼에서는 강석재 세계태권도연맹 홍보 사무차장이 '올림픽 스포츠 태권도', 이기중 전남대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관점으로 본 한국문화'를 주제로 각각 발표했다.

  한편 ICKC 회원 및 내외빈 8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날 한국방송통신대 역사관 2층 세미나실에서 열린 총회에서는 조남철 전 방송통신대 총장이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조남철 이사장은 “창립 4주년을 맞이한 ICKC의 이사장을 맡게 돼 영광스러우면서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선배들의 뜻을 잘 받들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취임 일성을 남겼다.

▲ 인사말하는 박갑수 전 이사장(왼쪽)과 조남철 신임 이사장
  이에 앞서 박갑수 한국문화국제교류운동본부 이사장은 개회사를 통해 “ICKC는 한국어와 태권도를 비롯한 한국문화를 세계 여러나라, 민족의 문화와 상호 교류함으로써 국가 브랜드를 고양하고 친선을 증진하기 위해 4년 전 발족했다”며 “단일민족의 배타성과 자문화중심주의, 고정관념, 자기중심주의 등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조정원 ICKC 총재 겸 세계태권도연맹 총재는 박의근 ICKC 재정위원장이 대독한 환영사에서 “태권도의 기본 경기 운영 용어가 한국어로 되어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며 “태권도를 통한 한국어 해외 보급에 더욱 앞장 서고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을 더욱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지를 피력했다.

▲ ICKC 창립 4주년 총회 및 포럼 참석자들의 기념사진 촬영.
  서혁 ICKC 연구위원장(이화여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포럼에 앞서 강성구 독일 딘스라켄시 아리랑공원추진위원장(전 국회의원)은 ICKC 및 파독 광부, 간호사 단체들과 협력해 독일 루르지방에 탄광이 폐쇄된 산업지구 내에 친환경 아리랑공원을 조성하는데 더욱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허겸, 김영기 기자 kyoumhu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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