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화지역 지정해 함께 살아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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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화지역 지정해 함께 살아가길
  • 김정희
  • 승인 2004.04.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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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외국인타운 - 가리봉동 조선족거리
'짜장, 짬뽕 안됩니다'
가리봉 조선족 거리 입구에 있는 한 짜장면 집 문에는 이같은 안내문이 붙어있다.
중국집에서 짜장, 짬뽕이 안된다? 지나던 사람들은 신기하게 쳐다보는 이 안내문은 사실 조선족 거리에서는 자연스런 일이다.
국내에서는 짜장, 짬뽕을 대표적인 중국음식으로 여기지만 사실 이 두가지 모두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음식을 응용해 만들어 낸 것일뿐 전통 중국 음식은 아니다. 그러니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이곳에서는 짜장, 짬뽕을 찾는 이들은 거의 없다.
중국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다 국내에 들어 온 조선족들은 볶음 요리를 중심으로 한 전통 중국 음식들을 먹는다.
조선족들이 주로 장을 보러 나오는 가리봉 시장에는 여기가 중국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각종 중국 음식 재료들이 선반을 가득 메우고 있다.
같은 한민족의 피를 나누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만, 오랜 세월을 중국에서 살아오며 우리와는 다소 식성이 달라진 조선족들에게 가리봉 시장은 편안하게 먹거리를 사고 먹을 수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 꼽힌다.

가리봉 중심으로 3만여명의 조선족들 운집

이처럼 조선족들의 독특한 문화가 자리잡은 가리봉 조선족 거리에는 매 주말 오후면 구로, 대방, 봉천, 가산동 등 인근 지역에 사는 조선족들이 모여 북적댄다.
동북 3성을 비롯해 워낙 넓은 중국 땅 곳곳에서 한국으로 건너 온 이들이기에 고향 모임부터 시작해, 직장에서 함께 일한 동료 등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주말을 보내는 곳이다.
월급 받아 고향에 부치고 정작 본인들은 작은 쪽방에서 아끼며 생활하는 이들이기에 만나도 소박한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고 노래방에 가 실컷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를 푸는 정도가 전부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주말이라해도 예전과 같이 활기찬 모습을 보기는 힘들다.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정부의 연이는 단속 등으로 생활이 어려워졌고 집단 거주 지역을 중심으로 단속을 나오는 경우를 피해 이곳을 떠난 동포들이 많기 때문이다.
조선족 거리가 처음 자리를 잡을 무렵부터 5년째 식당을 하고 있다는 한 아주머니는 "요즘은 정말 너무 힘들어. 지금도 저녁 시간인데 이렇게 한가하니..."하며 걱정스런 한숨을 내쉰다.
몇 년째 같이 일하던 아주머니도 그만두고 매일 와서 밥을 먹던 사람들도 이젠 보기 힘들어 졌다고 한다.
주말이면 단체로 와서 신나게 노래를 부르던 노래방 역시 조용하긴 마찬가지다.
넓지 않은 거리에 유독 많이 생겨나 인기를 끌었던 것이 노래방이지만 이제는 문을 닫아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정도다.
요즘에는 적은 돈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락실이 인기를 끌고 있다. 찾아갔던 이날도 해질 무렵 한 무리의 남성 조선족들이 경품 오락기 앞에 모두 모여 구경을 하는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이곳에서 조선족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는 상인들 중에는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자리잡은 조선족 동포 출신들이 적지 않다. 주인과 손님이라기 보단 단속이 나오면 조선족들이 다치지 않게 앞장 서 도와주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렇기에 요즘 이곳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인들의 어깨는 유난히 쳐져 있다. 장사가 안되는 것도 이유지만 활기있게 돌아다니던 조선족들이 줄어 한산해진 까닭이다.

민족적 특수성 가진 조선족 껴안을 지혜 필요

가리봉 일대가 조선족 거리로, 조선족들의 주거 및 휴식 공간이 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중반부터이다.
조선족 거리가 생겨날 초창기부터 조선족들을 위한 도우미 역할을 하고 있는 최황규 중국성교회 목사는 작은 사무실을 얻어 몇 년째 '가리봉중국동포타운'을 운영하고 있다. 5명의 직원들과 조선동포타운신문을 만들어 중국과 한국에 배포하며 조선족들이 국내에서 겪는 각종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상담해주고 있다.
최 목사는 "조선족은 타 외국인노동자들과 엄연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들은 그냥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의 동포"라고 강조한다. 또한 "조선족을 껴안는 것은 민족 융합 과정으로서도 매우 의미가 깊다"고 설명한다.
우리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것과 같이 바로 '해란강의 기적'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대동강의 기적으로 이어갈 주인공들이 바로 조선족들이라는 것이다.
현대판 유목민의 성격을 띤 조선족들은 우리와도 가까울 뿐 아니라 북한과도 자유 왕래가 가능할 정도로 북한과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그와 더불어 그들이 살아 온 중국에도 정통하기에 매우 특수하고 중요한 의미를 가진 동포라는 것이 최 목사의 설명이다.
조선족들을 단속과 추방으로 외면할 것이 아니라 가리봉을 조선족 거리, 특화 지역으로 지정하고 함께 어우러져 살아 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현명한 지혜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