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병기법안 통과, 풀뿌리 정치운동이 한몫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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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병기법안 통과, 풀뿌리 정치운동이 한몫했죠”
  • 김경삼 기자
  • 승인 2014.10.0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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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주 동해병기법안 통과의 주역, 홍일송 버지니아 한인회장

▲ 홍일송 버지니아 한인회장
“한인회들이 똘똘 뭉치고 적극적으로 일어나야 주 의원들도 움직입니다. 이번 동해병기법안 통과도 개인이 아닌 한인회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오는 6일 세계한인회장대회를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홍일송 버지니아 한인회장은 지난 1일 본지 사무실에 들러 동해병기법안을 통과시킨 데 크게 공헌한 미국 내 한인들의 힘을 강조했다.

지난 3월 버지니아주 동포사회에서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 내 최초로 버지니아주 모든 공립학교 교과서에 동해(East Sea)와 일본해(Sea of Japan)를 함께 표기하도록 하는 '동해병기법안(HB11)'이 통과한 것이다. 현재 이 법안은 지난 7월부터 공식 발효된 상태이지만, 7년마다 새로운 교과서를 채택하는 버지니아주 관례에 따라 오는 2016년 버지니아주 정부가 교과서를 심의한 뒤 2017학년도부터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2017년 열리는 IHO(국제수로기구) 총회에 이 법안이 통과되어 더 큰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기를 바라고 있다.

미국 내 동해병기운동의 시작은 지난 201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2년 동해병기 문제를 결정하는 IHO회의를 대비하기 위해 스칼렛임 LA 한인회장이 ‘동해명칭병기 청원운동’을 제의, LAㆍ버지니아ㆍ뉴욕ㆍ뉴저지ㆍ시카고ㆍ뉴잉글랜드ㆍ타코마 7개 주 한인회장이 이를 공동 진행하기로 합의하면서 동해병기운동의 첫 단추를 꿰었다.

버지니아한인회는 2012년 백악관 홈페이지에 ‘동해 표기 바로잡기’ 청원서를 제출하면서 본격적인 동해병기운동에 돌입했다. 당시 최종 청원 서명자만 해도 10만 명이 넘었고, 백악관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이와 관련해 국내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 1위에도 오르는 등 한인들의 폭발적인 참여를 이끌어냈다. 홍일송 회장은 “때마침 2012년이 임진년이어서 일본에 맞서 동해를 지키자는 설득이 한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시작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어 2013년에는 버지니아주 의회 상ㆍ하원과 민주ㆍ공화 양당이 동해병기법안 동시추진을 발표하면서 ‘동해표기 추진위원회’가 재결성되고, 버지니아한인회는 ‘동해병기법안 통과를 위한 참여 운동’ 등 시민강좌를 열어 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동참해줄 것을 호소했다.

올해 1월에는 버지니아주 상원 교육보건위원회가 동해병기법안을 통과시키면서, 버지니아주 5개 한인회인 버지니아ㆍ페닌슐라ㆍ리치몬드ㆍ피터스버그ㆍ타이드워터 회장단은 1차 전략회의를 열어 상원 및 하원 통과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남부 버지니아 지역 의원들 설득에 나섰다.

“3일간 이 지역 상원의원 9명 전원에게 1,000여 통 가까운 전화를 했어요. 각 한인회장이 이들을 직접 면담하기도 하고 이메일과 SNS로 행동지침인 ‘오늘 하루’도 보냈지요. 남버지니아 한인 170여 명으로부터 동해병기법안 청원 서명도 받았습니다.”

▲ 지난 2월 6일 버지니아주 하원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이 한인 단체에 환영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그러다 버지니아 동포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버지니아주 상원 본회의에서 찬성 31, 반대 4, 기권 3표로 동해병기법안이 통과되고, 3월 주하원 전체회의에서도 찬성 82, 반대 16으로 법안이 통과되면서 법안 발효를 눈앞에 두게 된다.

이후 매콜리프 버지니아 주지사의 서명만 남겨 둔 과정에서 로비스트를 고용한 일본이 노골적으로 방해를 놓기도 했으나, 동포들의 끈질긴 노력 끝에 마침내 버지니아주에서 동해병기법안최종 통과라는 쾌거를 이뤘다.

홍 회장은 동해병기법안을 통과시킨 가장 큰 원동력으로 ‘풀뿌리 정치운동’을 꼽았다.

“풀뿌리 정치운동은 ‘유권자가 치밀한 전략 아래 지역의원을 설득하면 정치도 움직인다’는 개념에서 시작한 운동입니다. 유권자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사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의원들에게 중요한 건 다름 아닌 ‘유권자’입니다.”

그는 풀뿌리 정치운동을 故 톰 랜토스 미 하원 외교분과위원장으로부터 배웠다. 랜토스 위원장은 지난 2007년 종군위안부결의안 추진 당시 버지니아한인회에 “미 연방의원 70명의 서명을 받아오라”고 조언하며 결의안이 통과되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인물이다. 홍 회장은 “제 2차대전 나치캠프 생존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과 한인들에게 미칠 악영향을 우려해 세간에 한국인 며느리를 두었다는 사실조차 밝히지 않았을 정도로 생각이 깊었던 정치인”이라고 회고했다.

홍 회장은 오는 10일부터 16일까지 국회, 서울대, 연세대 등을 돌며 동해병기법안 통과에 관한 강연을 실시한다. 법안 통과를 위해 약 3,700마일을 직접 운전하며 뛰어다닌 그의 노력과 열정을 국내 청년들에게 소개하고픈 마음이 매우 크다.

“동해병기법안 통과 반대를 외친 이들은 우리에게 ‘왜 굳이 판도라 상자를 열려고 하나’라고 따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법안이 우리 후손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알려주는 ‘진실의 문’을 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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