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신>'한,미 양국은 북한과 화해기회를 어떻게 망가뜨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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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한,미 양국은 북한과 화해기회를 어떻게 망가뜨렸나'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7.1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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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김일성 사망후 한,미 양국의 북한과의 관계회복 실패'장문의 기사 '눈길'

▲감옥에 감금된 미국인의 석방을 위해 2010년 북한을 재방문한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평양공항에 내려 북한소녀로부터 꽃다발을 받고있는 모습(사진출처 로이터 통신)
시진핑 방한 후 동북아 정세가 요동을 치고 있는 가운데 영국의 권위지 가디언이 북한의 김일성 주석 사망 후 한국과 미국의 오판이 북한과의 관계 회복 기회를 어떻게 날려버렸는지를 되짚는 장문의 기사를 올려 눈길을 끌고 있다.

가디언은 11일 ‘How South Korea and America wrecked chance for reconciliation with the North-한국과 미국은 북한과 화해할 기회를 어떻게 망가뜨렸나’라는 제목의 마크 배리 뉴욕 UTS 배리타운 칼리지 경영학 및 정치학교수의 글을 싣고 김일성 주석 사망 직전과 직후의 남과 북, 그리고 미국 등이 얽혀 돌아간 급박한 전개 과정들을 통해 다시금 급변하는 한반도 정세를 돌아보고 있다.

특히 마크 배리 교수는 김일성 사망 마지막 몇 주 전 워싱턴 소재 비정부기관으로 통일교의 후원을 받았던 세계평화정상회의에 참여한 전직 국가수반들을 대신해서 김일성을 만났던 인물로 김일성 사망 전후의 정세 전개를 소상하게 전하고 있다.

마크 배리 교수는 자신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을 만났을 당시 이미 대부분의 권력이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승계한 상태였고 김일성은 남한,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미국 등 대외정책에 대한 중용한 결정들을 내리고 있었다고 회고 했다.

마크 교수는 북한의 창시자인 김일성은 20년 전 최초의 남북정상회담이 되었을 순간을 17일 앞두고 갑자기 사망했다며 그가 죽기 전 몇 주, 그리고 그의 장례식마저도 화해의 기회를 위한 드문 순간들이었으나 한국과 미국은 이를 놓쳤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마크 교수는 김일성이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중국과 한국의 수교, 북핵 위기 등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 몇 해 동안 북한을 둘러싸고 급변하는 주변상황들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자신 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며 그의 아들에게 부담감을 주고 싶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마크 교수는 1993년 북핵 문제가 부상하자 미국은 북한과 고위급 회담에 나서게 됐으며 김일성은 자국의 핵프로그램의 평화적 의도 외에 다른 것이 없다고 부인했지만 이 새로운 위기가 전략적인 기회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 만큼 그는 술수에 능했다고 평가했다. 결국 미국의 수없는 저지에도 불구하고 북핵 위기의 고조는 개인적이라는 수식어를 단 카터의 방북을 가져왔으며 CNN 취재진을 동반한 카터의 방북이 핵 위기 타결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마크 교수는 설명하고 있다.

마크 교수는 카터의 김일성과의 합의가 ‘스텔스 전투기, 장거리 폭격기, 추가적인 항공모함을 보내는 것과 미국 시민들이 한국을 떠나게 하는 것, 그리고 계획된 10,000명의 추가적인 병력 파병을 막아주었다’고 전해 사실상 ‘94년 당시의 핵 위기가 한반도를 전쟁에 몰아넣기 직전까지 갔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마크 교수가 이어 전하는 ‘카터는 개인적으로 자신의 방문이 제2의 한국전쟁을 막았다고 믿었고, 다른 많은 사람들도 (마지못해서이긴 하지만) 그렇게 생각했다. 카터는 국가 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는 힘은 외교보다 하위에 있어야한다고 믿었다’는 부분은 남북 간의 갈등이 어느 때보다도 높고 한반도를 둘러싼 힘의 충돌이 현실화 되고 있는 최근 정세에서도 깊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마크 교수는 카터가 김일성과의 합의를 이끌어낸 후 비무장 지대를 통해 서울로 와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고 94년 7월 25일 남북 정상회담이 정해졌으나 이후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일어난 일련의 오판들이 남북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상실하게 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마크 교수는 ‘만약에 김일성이 북한과 미국과의 관계의 전략적인 궤도를 바꿀 수 있다면, 성공적인 남북 정상회담은 아마 수많은 상호 이익을 산출하며 지속적인 남북 친교, 거래, 상업적 활동으로 이어졌을 것이다’라며 그러나 남한의 대통령인 김영삼은 이 역사적인 순간을 이용해서 정당한 외교절차에 따라 김일성의 죽음에 조의를 표하거나 혹은 그의 핵심 고문들이 주장하듯이 김정일이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하고 북한과의 적대감을 부채질하여 남한의 보수 유권자를 달래는 것 중에서 선택해야 됐다고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결국 김영삼의 선택은 조의표명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국무총리는 사망한 북한의 대통령을 “전범”이라고 불렀으며, 남한정부는 한국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해 김일성을 비난했고, 군사는 초경계 태세를 취한 것이었다며 북한은 분노했고, 상호간의 신뢰를 구축할 가능성은 사라졌다. 마크교수는 이때의 일련의 과정들, 즉 때 이른 김일성의 사망과 당면한 전략적 기회를 김영삼이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난 20년 간 남북한 관계는 계속 문제에 시달려왔다고 분석했다.

김영삼이 당면한 역사적 기회에 부응했다면, 그리고 북한의 개혁을 고무하는 것이 전략적 이득이 된다는 것을 클린턴 정부가 이해했다면, 아마도 개혁이 가능한 환경을 함께 조성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한 마크 교수는 ‘그 합의가 성사되었다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잠재적 개혁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지 누가 알겠는가? 경제 정치적으로 상당한 이익을 취하는 대가로 그들의 유일한 실재적 카드인 핵 프로그램에 대해 협상하도록 김일성은 김정일에게 이미 지시해 놓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마크 교수는 2000년 6월, 김영삼을 이은 김대중 대통령이 김정일과 정상회담을 가진 후 비로소 잠시 긴장관계가 개선됐지만 그 개방은 곧 끝나버렸다고 전한 뒤 다시 비슷한 기회가 주어질 수도 있고 이번엔 미국과 한국 박근혜 대통령은 그 기회를 망치지 않도록 제대로 조언을 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진핑의 방한, 북-일의 접근, 일본의 군사대국화, 미국의 아시아로의 귀환 등 소용돌이치고 있는 한반도 주변 정세에서 마크교수의 이번 글은 이런 때 일수록 남북관계의 신뢰회복이 가장 필요하다는 점을 1994년 김일성 주석의 죽음을 통한 정세변화와 김영삼과 미국의 정세판단 실수를 통해 교훈을 던지고 있다.

<기사출처 외신번역 전문 뉴스프로/번역 감수: 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