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모두의 책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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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은 모두의 책무다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6.1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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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기자(중앙일보 정치부 외교안보팀장)
통일이후 북녘동포들에게 당당하려면 그들의 고통에 귀 기울여야-

역사적인 첫 남북 정상회담(2000년6월)에서 이뤄진 6.15 공동선언에 따라 남북 간 철도․도로 연결 공사가 추진되던 때의 일이다.

비무장 지대 남측 관할지역 도로 몇몇 곳에 에코 브릿지(Eco-bridge)가 설치됐다. 새 아스팔트 도로가 나면서 동물들의 이동이 끊기게 되는 걸 막기 위해 도로 위에 터널모양으로 만든 생태 이동통로다. 그런데 북한은 이 시설에 문제를 제기했다. 혹 남측이 유사시에 대비한 비밀 군사시설을 건설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었다.
 
결국 이를 해소하려 북한 측 군 관계자들이 현장방문을 했고, 우리 측은 브리핑을 통해 충분한 해명을 했다. 설명을 들은 북한군 간부는 “아니 사람도 먹고살기 힘든데 뭔 동물들을 보호한다고 돈 들여 그런 시설을 만듭네까”라며 머쓱해했다.

북한의 입장을 고려해 당시엔 비보도에 부쳐졌던 에피소드지만 북녘 땅 주민들의 척박하고 고단한 삶이 북측 인사의 입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 볼 수 있다. 1994년7월 김일성 사망 이후 20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의 먹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당시 북한 지역에 몰아닥친 큰 수해로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이 줄을 이었다. 긴급구호 차원을 넘어 장기간 식량과 비료는 물론 어린이와 임산부, 노약자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지원이 이뤄졌지만 사정이 나아졌다는 공신력 있는 보고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김정은 집권 3년차인 올해도 전망은 밝지 않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은 김정일 사망 이듬해인 2012년 4월 첫 공개연설에서 “다시는 우리 인민들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고, 사회주의 부귀영화를 누리게 할 것”이라고 공언했지만 성과는 없다.

스위스에서 유학한 김정은에 대해 한국과 서방세계는 개혁․개방에 나설지 모른다는 기대를 했지만 할아버지의 주체사상과 아버지의 선군(先軍) 이데올로기를 물려받은 김정은으로서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지난해 3월 경제건설과 핵 개발을 동시에 추진한다는 이른바 ‘경제․핵 병진노선’을 주창했지만 성과는 드러나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물론 중국 등 북한의 후견국 인사들까지 “핵 포기 없이는 경제난 해결이나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는 어렵다”며 압박하고 있지만 평양 측은 반발하고 있다. 결국 고통은 고스란히 북한 주민들에게 돌려졌고, 인권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는 게 유엔 등 국제기구와 이웃국가들의 우려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봄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다. 유엔 인권이사회(HRC)에 의해 설립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COI)가 2월17일 제네바에서 1년 동안의 활동을 총정리한 보고서를 공개한 것이다. 여기에는 북한 내에서 다양한 인권침해 행위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 방대한 자료제시와 법률적 분석, 피해자(탈북자)의 증언 등을 통해 담겼다. 국제형사법상 인도에 반한 죄를 구성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고,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이 문제를 회부하거나 임시 국제재판소를 설립해 다룰 것을 권고했다.

북한 인권에 대한 이 같은 법률적인 검토와 조사와 함께 한국 정부는 또 하나의 대북제안을 내놓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3월28일 독일 드레스덴을 방문해 북한 주민 중 취약계층에 대한 인도적 지원방안을 천명한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임산부와 영유아의 건강문제를 보살피기 위한 ‘모자(母子) 1000일 패키지 사업’의 제시다.
 
1000일은 엄마가 아이를 임신하는 출산 전 9개월부터 만 2살이 되기 전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아이의 신체․지능 성장에 매우 중요하고 산모 건강에도 각별한 보호조치가 필요한 때다. 자칫 방치될 경우 통일 이후 한민족으로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엄청난 통합․통일비용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는 사안이다. 드레스덴 선언이 결국 ‘통일대박’을 위한 준비활동으로 이어진다는 얘기다.

하지만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와 드레스덴 선언은 모두 다 국민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본격적인 논의나 후속조치가 이어져야 했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라는 메가톤급 이슈에 묻혀버린 때문이다. 어린 학생들의 너무도 가슴 아픈 희생에 많은 국민들이 참담해했고, ‘안전한 대한민국’을 최우선의 국가 정책과제로 내세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인권 문제나 이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북지원 프로젝트는 모멘텀을 잃었다. 대통령이나 정부부처가 다시 이 문제를 꺼내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유엔과 국제사회는 북한 인권보고서에 나타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과 대북압박을 본격화 하고 있다. 유엔인권이사회 결의에 따라 설립이 추진 중인 북한인권사무소는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산하의 현장 기반조직으로 서울에 설치가 추진 중이다.

북한은 이런 움직임에 대해 ‘내정간섭’이라거나 ‘인권의 이중적 잣대’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탈냉전 이후 국제사회는 인권문제를 전 지구적 인간안보 이슈로 간주해 유엔을 통한 개입과 인도적 해결에 나서고 있다. 국제인권협약 등의 체결 당사국인 북한이 이행의무를 지는 건 당연하다는 지적도 있다.
 
김정은 정권 들어 북한이 특권층 위주의 전시성 복지․인권 관련 사업이나 건설 프로젝트로 국제사회의 인권압박을 회피하려하고 있지만 외부의 시선은 싸늘하다. 식량통제 등을 통해 주민을 통제하고 전체주의적 폭압체제를 이어가려 한다는 지적이다.

핵무기와 미사일에 이어 위조지폐와 마약․담배 쪽으로 초점이 맞춰졌던 대북제재와 압력은 이제 인권침해 문제로 중심축이 이동하고 있다. 이제 북한 인권문제의 최대 이해당사자인 우리가 나설 때이다.

통일 이후 북한 동포들이 “우리가 지옥 같은 김정은 정권 아래서 억압받고 고통스러워할 때 당신들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는 질문에 당당해지려면 북한 인권 실상에 대한 관심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