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기자칼럼>태국‘비자 런’사태, 정부 대응책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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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기자칼럼>태국‘비자 런’사태, 정부 대응책 없나!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6.1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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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국가개조'와'관피아척결'약속에도 '외피아'는 무풍지대?

▲태국이민청은 육로를 통한 비자 런은 전면금지하며, 대신 항로를 통한 비자 런 금지조치를 8월 11일까지 유예기간을 두겠다고 홈페이지를 통해 지난 5월 8일 발표했지만, 일부 교민들은 개인블로그와 인터넷 게시판에 최근 공항에서조차 입국을 거부당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사진은 캄보디아와 태국접경의 아란야프레텟 검문소)
전 세계의 축구제전 브라질월드컵이 지구촌을 달구고 있다. 하지만 예외인 단 한 곳이 있다. 바로 태국교민사회다. 최근 태국 정부의 ‘비자 런’ 금지조치로 인해 3만 명 태국교민사회가 충격과 혼란에 빠진 상태다. 한인회에는 민원이 빗발치고, 주태국대한민국대사관을 향한 불만의 목소리도 커져가고 있다.

‘비자 런 ’이란 양국 90일 무비자협정에 따라 제3국을 거쳐 체류를 연장해온 방식으로 비자발급 대신 교민들이 태국정부의 묵인하에 수십년째 관행처럼 선택해온 방법이다. 그런데 다가올 8월 12일부터 이 비자 런 금지조치 유예기간이 끝날 예정이다. 태국 이민청이 금지를 발표한 지 불과 3개월만의 일이다.

현재 교민 3만 명 중 약 1/3에 해당하는 1만 여명이 무비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현재 체류연장을 위한 또 다른 편법 및 불법의 유혹에 내몰린 상황이다. 비자 발급조건을 갖추지 못한 교민 상당수는 현재 고국으로의 철수를 심각히 고려중이다. 이미 짐을 정리중이거나 떠난 교민들도 많다. 한마디로 ‘집단 패닉상태’다.

“정식 비자를 발급 받아 지내는 교민은 현지에 남고, 그렇지 못한 교민은 한국으로 돌아가는 실정”이라는 한인회 관계자의 낙담 섞인 설명은 이곳 교민사회의 안타까운 상황을 그대로 대변해주고 있다.

입국과정에서 태국이민청 소속 공무원들의 보복성 횡포에 부당한 피해를 보는 교민들도 속출하는 상황이다. 태국경찰과 관리들의 횡포와 차별에 국민적 자존감과 치욕마저 느꼈다는 경험담을 올린 블로그와 SNS 글도 웹상에 여러 건 올라와 있다. 범죄자처럼 취급당하는 등 참을 수 없는 모욕과 함께 인권 침해마저 당했지만, 그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게 작금의 현실이라고 교민들은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번 사태로 주태국대사관에 대한 교민들의 원망과 불만의 목소리도 높다. 교민들이 운영하는 웹사이트 자유게시판에는 한국 정부와 대사관을 성토하는 글로 도배되어 있다. 포털사이트 'daum'아고라에는 대사관의 적극대응책 마련을 촉구하는 청원 서명운동까지 전개 중이다.

▲ 태국 수완나폼 공항 내부 전경(사진저작권 유정렬)

태국정부는 이번 비자 런 금지조치가 ‘자국 내 불법체류를 막기 위한 조치’라고 지난 5월 8일자 홈페이지 공고문을 통해 발표했다. 이는 물론, 주권국가로서 지극히 합법적이고 정당한 조치이다. 따라서, 우리정부 입장에서 이에 대한 마땅한 대응책을 마련하기 힘든 게 사실이다. 한국 정부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조치가 지난 5월 18일자<방콕포스트>에 실린 태국이민청 관리들의 발언처럼 매년 8천명에 이르는 태국인들의 한국입국거부에 대한 ‘보복차원의 조치’라면 한국 정부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명확해진다.

태국인에 대한 한국입국거부가 많은 이유에 대해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태국정부 측에 충분한 해명자료를 제출하고, 외교적인 설득작업을 취하는 한편, 동시에 태국정부를 상대로 비자 런 금지조치의 재고를 적극 요청해야 한다. 주재국 대사의 능력 밖에 일이라면, 문제해결을 위해 정부에서 특사 파견도 적극 검토해봐야 한다. 이는 오로지 한국 정부의 의지와 외교역량에 달린 문제다.

설사 이번 조치가 단순한 ‘보복’이 아닌, 내년 아세안경제공동체(AEC) 출범에 따른 정책차원에서 불법체류를 막기 위해 취해진, 불가피한 조치라고 해도 대응책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비상상황임을 인지하고, 지금 당장이라도 교민사회의 충격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차선책을 강구해야 한다.

우선 발등의 불부터 꺼야 한다. 다양한 외교채널과 역량을 총동원해서라도 비자 런 유예기간을 최소한 1년 정도 연장하는 방법을 태국정부 측에 적극 제안할 필요가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비자를 취득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함으로서 교민사회의 혼란을 최소화시키기 위함이다.

당장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될 가능성이 높은 교민들을 위한 일련의 보호조치도 강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대사관내에 ‘비자민원상담센터’를 임시 운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수 있다. 전담인력을 배치, 체류문제와 관련하여 곤경에 처한 교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려는 노력도 시급하다.
 
관광업 등 피해가 가장 심각한 업계의 피해를 최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어려운 상황에 직면한 교민들과의 직접 상담 및 간담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하고, 신속히 민원을 처리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다. 비자발급과 관련하여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인권유린, 금품을 요구받는 등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이러한 교민들의 피해사례를 사안별로 조사 정리한 후 이에 대한 시정과 개선을 태국정부와 관계당국에 강력히 요구할 필요가 있다.

사안에 따라서는 인권유린에 가담한 관계공무원의 문책도 요구해야 한다. 이는 주재 대사관이 재외국민의 안전과 재산보호를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러한 최소한의 외교적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군부쿠데타 등 태국 내부사정을 운운하며, 핑계로 일관한다면, 주태국대사는 대한민국 외교관으로서의 자격이 없다.

태국정부상대로 그 정도 외교능력이 없다면 대사는 마땅히 그만둬야...!

사실 전 세계 대사관 문턱이 너무 높아 대사관 방문이나 상담을 기피하는 교민들이 많은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권위주의적이고, 형식적이며, 관계 법령이나 그대로 읽어주는 의례적인 답변에 아연질색하며, 고개를 떨 군 채 대사관 밖을 나서는 교민들도 부지기수로 봤다.

고국의 구청이나 동사무소의 대국민 민원서비스의 질은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있지만, 외교부의 재외국민들을 위한 서비스는 예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주태국 대사관도 예외는 아닌 듯싶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대부분의 재외국민들은 부담스런(?) 대사관보다는 비교적 만만한(?) 한인회를 찾아 하소연을 하거나 도움을 청하곤 한다. (이 부분은 한국 외교부가 반드시 반성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전 세계 대부분의 한인회는 민원처리능력에 한계가 있다.

외국정부기관이나 단체와의 협상권한이나 교섭권도, 법적으로도 아무 능력이 없다. 고작해야 평소 알고 지내는 관계공무원들과 친분관계를 무기(?)로 간단한 민원을 해결하는 수준이다. 이는 한국 외교부도 잘 알고 있는 엄연한 사실이다.

이렇듯 정작 대사관이 발 벗고 나서도 모자랄 판에 교민들을 위한 권익단체에 불과한 한인회에 비자관련 민원을 고스란히 떠맡기고, 방관하는 모습은 참으로 볼 썽 사납다. 이는 재외국민의 안전과 재산보호에 책임 있는 국가기관으로서 사실상 그 직무를 유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극적인 민원처리의 노력은 전혀 보이지 않고 대처방안도 소극적이다 못해 형식적이다. 3개월 유예기간동안 항로를 통한 비자 런은 일시 허용한다는 태국정부의 방침이 있었지만, 이마져도 지켜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사관은 태국정부 측에 대해 어떠한 항의공문도 보내지 않은 상태다.

교민들의 불만이 당연히 클 수밖에 없다. 대사관 홈페이지에 비자관련 안내문 한 장 공지사항으로 올리고, 실적위주의 형식적인 비자설명회를 한인회와 두 차례 공동 개최한 것이 고작이다. 교민들의 민원을 적극적으로 처리하려는 노력이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런 힘도 기댈 곳도 없는 한인회만 민원전화에 시달리며 동분서주하는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사관이 이미 소임을 다한 것 같은 인상을 주는 모습은 차마 안쓰럽기까지 하다. 대사관은 과연 누구를 위해 존재하느냐고 묻지 않을 수 없다.

만약, 이런 식으로 노력은 고사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구실로, 시간만 계속 끌며 작금의 사태를 방관할 계산이라면, 굳이 대사관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양국 간 연락대표부사무소만 설치하고 최소 관리인원에 전화기 한 대만 있으면 그만이다. 굳이 우리 국민들이 혈세로 외교관들의 높은 급여와 관용차의 비싼 기름 값을 책임질 필요가 없다.

우리는 지난 세월호 참사의 주된 원인이 ‘유병언’이라는 한 개인의 잘못에만 있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상부조직의 눈치만 보며 그저 시키는 일만 마저 못해 흉내만 내는 ‘무사안일’에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의 잘못된 관행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의 제3의 세월호 참사는 다시 일어날 것이 뻔하다.
 
‘관피아’척결을 넘어 ‘국가개조’를 선언한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해외공관에서는 무풍지대라면 말이다.

이번 ‘비자 런’ 사태 역시 마찬가지다. 대응책마련에 고심하다는 핑계로 수개월째 한국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대안도 내놓지 않고 있다. 곤경에 처한 교민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는 어느 태국교민의 넋두리처럼,“비자를 받을 자격이 못되면 그냥 떠나라”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나 다름이 없다. 재외동포사회에서 ‘해피아’에 이어 가히 ‘외피아’라는 비아냥이 충분히 나올 만 한 상황이다.

정부는 불법체류자 양성국가라는 오명을 뒤집어 쓸 것인가?

작금의 상태를 방치한다면, 불과 두 달 후엔 수천 명에 이르는 무비자 태국교민들이 불법체류 범법자라는 멍에를 쓴 채 현지 경찰들에 의해 인권유린과 탄압에 그대로 노출될 것이 뻔하다.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미국, 일본에 이어 동남아국가에서마저 불법체류자를 양성하는 국가라는 오명까지 덧씌워져 그동안 동남아 지역에서 쌓아온 대한민국의 국격 마저 어찌 추락할지 불을 보듯 하다. 단언컨대, 무고한 재외국민들을 하루아침에 불법체류 범법자로 만든 도의적 책임은 개인이 아닌, 오로지 정부에 있다는 사실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재외국민들의 고국과 외교부에 대한 불신의 벽 역시, 더욱 커질 것이다.

이번 비자 런 사태를 시발로 동남아지역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외교적 능력도 함께 심판대에 오르게 된 것 같다. 그간 G20국가라며 자랑을 일삼아 온 정부의 외교역량을 이참에 시험해 볼 더 없이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3만 태국교민들은 물론이고, 720만 재외동포사회도 그러한 시각에서 이번 사태의 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아직 늦지 않았다. 반성은 나중에 해도 된다. 아무쪼록, 이번 기회에 해외 각국 대사관이 재외국민의 안전과 권익보호에 최선을 다하는 쇄신된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동포사회 전반에 번진 오랜 불신과 앙금을 걷어내 주기 바란다. 더불어, 한국정부의 신속하고 현명한 대응책 마련을 거듭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