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기자칼럼>당신도 '국뽕'이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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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외기자칼럼>당신도 '국뽕'이신가요?
  • 박정연 재외기자
  • 승인 2014.05.07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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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문화에 무관심하면서도 세계화 외치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
▲ 박정연 재외기자

'국뽕'이라는 단어는 국가와 마약의 속어인 '히로뽕'을 합친 신조어다. 보수성향의 인터넷사이트인 '일간베스트'(이하 일베)저장소에서 유래한 말로 '지나친 자기문화 중심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 또는 '그런 사회적 현상'을 말하는 것쯤으로 해석될 수 있겠다.

우리 주변에는 외국인만 만나면 대뜸"두유 노우 김치?"를 외치는가 하면, 최근 들어서는 "강남 스타일을 아느냐?, 싸이(PSY)를 아느냐?"고 물으며 외국인들을 당황하게 하거나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외국인의 관심사가 무엇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거꾸로 그 외국인의 출신 나라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거나 공동의 관심사를 끌어내려는 노력 즉, 소통과 공감에도 인색하다 못해 일방적인 경우도 허다하다. 다행히 운이 좋아 그 외국인이 한류에 대해 약간이라도 반응을 보이면 그때부터 침을 튀겨가며 열심히 설명하려 애쓴다. 그러나  상대가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거기서 대화를 끝내고 만다.

이렇듯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 헤프닝은 전 세계인이 다 아는 수준높은 우리문화와 세계10위권의 교역량을 자랑하는 선진국 대한민국에 대해 관심이 없는 저급한 수준의 외국인과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느냐는 심리상태가 저변에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짧은 영어 몇 마디를 나누다보면  그나마 한정된 대화 소재마저 떨어져 외국인 상대와 어정쩡한 상태로 헤어지기 일쑤다.

이런 모습은 고국의 인사동이나 이태원 거리에서 뿐 만 아니라 동포사회에서도 익숙한 풍경이다. 현지 정치인들과 친분을 과시하는 소위 방귀 깨나 뀐다는 교민사회 인사들도  20년 터줏대감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 중에도 기초수준의 현지어조차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함께 어울리는 가운데 얻을 수 있는 정신적 풍성함도 부족하거니와 상대 문화에 대한 이해도 매우 부족하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현실조차 스스로 인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전 세계에 부는 한류열풍에 대해 뿌듯해 하지만  남에게 내 것을 알리려고만 애쓸 뿐 정작 남의 것에 대해서는 도통 관심이 없다. 심지어 우리 스스로의 우월감에 사로잡혀 있는 경우도 있다. 방송과 언론도 편승해 이를 거든다. ‘YTN 해외리포트’ 같은 해외 한류 소개 프로그램을 보면 한류열풍 때문에 한국이 마치 세상의 중심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해 "이건 아닌데...!"하고 고개를 젖게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 문화에 대한 우리 스스로의 이율배반적인 모습은 어느 교민사회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기자가 살고 있는 교민사회도 1년에 최소 3~4 차례 이상 크고 작은 각종 한국 전통문화 행사가 열린다. 하지만 우리가 주최하는 행사에 바쁘다는 핑계로 발걸음조차 하지 않는 교민들도 상당수다. 우리문화의 우월성에 대해 알리려 애쓰지만 정작 우리 문화공연 자체에는 식은 밥 대하듯 한다.

정말 부끄러운 얘기지만  딱 두 가지 종류의 행사에는 교민사회가 과도할 정도의 관심을 보인다는 자조섞인 비야냥도 들린다. '특급호텔에서 열리는 대사관 주최 연회'와 '한인회 주관행사 중에서도 푸짐한 경품추첨이 있는 행사'가 그것이다.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거나 이해가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현지 주재 외국 대사관과 문화원이 주최하는 공연장에서는 한국인 관객은 찾아 보기 힘들다.

한 예로 얼마 전 현지 국립극장에서 '인도 댄스문화 페스티발’이 열렸다. 사흘간 펼쳐진 공연은 현지인들 뿐 만 아니라 현지에 거주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특히 공연 마지막 날은 공연시작 20분전에 이미 6백석 좌석이 동이나 취재를 핑계로 기자증을 내밀고 간신히 입장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놀랍게 그 많은 관객 중에 우리 교민들은 단 한명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교민 인구수만 5천명이 넘는 데도 말이다.

현실이 이 지경인데도 우리는 여전히 과도한 문화적 자긍심에 사로잡혀 세상이 우리 문화만 봐주기를 바라는 이중성을 보인다.

밥을 먹을 때도 꼭 한국식당만 찾는다. 그 덕에 이 작은 교민사회에 한국식당 수만 100개가 넘는다. 교민 5~60명당 1개의 한국식당이 있는 셈이다. 외국인과 비즈니스 점심약속이 잡히면 한국음식을 소개한다는 명분으로 꼭 한국식당에서만 약속을 잡으려 한다.

모름지기 음식문화를 통해서도 상대 나라를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식당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곳이라는 생각을 바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만나 교류하는 장소로 활용될 수 있음에도 우리는 애써 모른 체한다.

이렇듯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족하다보니 현지인들과도 어울리는 일도 비즈니스 관계가 성립될 때에 국한된다. 현지에서 태어나거나 어릴 때부터 자라지 않은 이상  대부분의 교민 1세대들은 현지어가 서툰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공동 관심사도 적고  그 나라 언어도 유창하지 못하기에 현지인들과의 관계도 그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이나 다름없다. 비즈니스 관계가 끝나는 동시 현지인과의 인간적 교류도 끝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현상은 비단  기자가 사는 작은 교민 커뮤니티에 국한되어 일어나는 특별한 현상은 아닌 듯 싶다. 평소 연락을 주고 받는 이웃 나라 교민단체 임원들도 교민수가 훨씬 많은 다른 나라 교민사회도 별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를 해주었다. 약간의 차이를 빼면 다른 교민사회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우리는 세계화를 외치면서도 정작 세계화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우리문화의 우수성을 돌아다니며 주장하고 어설픈 서양문화를 베껴 상품화하는 것을 세계화쯤으로 안다. 세계화는 모름지기 문화와 국경을 넘어 상대를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함께 공유하고 교류하는 가운데 자신의 질적인 발전을 도모하는 게 세계화의 시작이다.

이제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다른 문화 속으로도 다가가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래야 보다 더 균형적인 사고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우리 것만 좋다!, 우리 것이 최고다!"라는 문화적 우월감과 자기중심적 세계관에서 출발한 한국 홍보는 문화 후진국이라는 오명과 더불어 자칫 국제사회의 비웃음마저 살 수 있다. 과도한 우월감 과시는 내재된 콤플렉스와 동전의 양면이다.  세계 각지에서 터를 잡고 성공한 동포한상들을 눈여겨 보라.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는 성공비결은 현지인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역지사지(易地思之)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