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로 깨닫다] '편찮다'는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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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로 깨닫다] '편찮다'는 말은?
  • 재외동포신문
  • 승인 2014.04.28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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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용(경희대 교수, 한국어교육 전공)
 ‘아프다’의 높임말은 ‘편찮다’이다. 살면서 제일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은 아마도 나를 포함하여 가족과 친구들이 아픈 것일 게다. 늘 인사말에 ‘건강하세요.’를 쓰는 것은 아픔이 가져다주는 공포가 있어서라는 생각이 든다. 아픈 것은 무엇일까? 물론 아픈 것은 신체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심리적인 아픔도 매우 크다. 아니 어떤 경우에는 마음이 아픈 것이 더 참기 힘들다.

‘편찮다’라는 말은 ‘아프다’를 높이는 말로서 완곡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아픔을 직접 언급하는 것이 꺼려져서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완곡하다는 말은 부드럽다는 의미도 되고, 돌려 말한다는 의미도 된다. 옛말을 보면 우리는 주로 병에 대한 어휘를 피하려고 하였다. 어떤 경우에는 병명을 ‘마마’라고 아주 높게 부르기도 하였다. 임금님께나 부를 만한 호칭을 병에 붙이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픈 것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편하지 않은 상태로 보았다. ‘편찮다’는 말은 바로 ‘편(便)하지 않다’가 줄어든 말이다. 편하지 않은 것이 좋지 않은 것이고, 그것을 아프다는 말 대신 쓴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몸이 불편(不便)하다’는 표현을 하기도 한다. ‘어디 불편하세요?’라는 질문도 몸이 무언가 익숙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 있는지를 물어보는 질문이다. 의사 선생님들도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보다는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냐?’는 질문을 선호하는 듯하다.

아픈 것과 편찮은 것은 느낌이 좀 다르다. 아픔에는 직접적인 고통이 느껴지지만 편찮은 것은 그것보다는 범위가 훨씬 넓어 보인다. 아프지는 않지만 불편한 상황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긍정적으로 해석하자면 편찮음에는 예방의 차원도 엿보인다. 아직 아프지는 않지만, 왠지 몸이 안 좋은 느낌이 들 때도 편하지는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안부를 여쭐 때는 단순히 지금 아픈지를 묻는 차원을 넘어서 혹시라도 불편한 곳이 있는지도 미리 살펴야 한다. 몸이 으슬으슬하다든지, 찌뿌둥하다든지 하는 것도 아프지는 않을 수 있지만 다 편찮은 것이다. 잔기침을 시작한다든지 앉았다 일어나는 것이 불편할 수도 있다. 아픈 것과 달리 편찮음에는 관심도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살펴야 편치 않음을 눈치 챌 수 있다. 어르신들이 편치 않은 가장 큰 문제도 역시 ‘마음’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마음이 불편하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단순히 물질적으로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은 사소한 일에도 금방 불편해 지고, 금방 좋아진다.

특히 나이를 먹으면 금방 서운해 한다고 하는데, 이는 주변 사람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감성적이 되어가기 때문에 누가 내 감정을 살짝만 건드려도 감정이 상하고 서운해진다. ‘내가 어떻게 키운 자식인데’라는 말이 튀어나오게 되고, ‘나이 들었다고 무시하나?’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서운해지는 것이 인지상정(人之常情)인 듯하다. 어른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는 것을 늘 고민해야 한다.

아픈 것은 치료가 필요하지만 편치 않은 것은 관심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잠자리에 들기 전에 부모님 방의 바닥 온도를 살폈고, 밤에 마실 물인 자리끼를 갖다드렸다. 그러고는 편히 주무시라는 인사를 드렸다. 물론 아침에는 편히 주무셨냐는 인사를 드렸다. 부모님의 편한 상태에 대해서 늘 관심을 기울였던 것이다. 요즘 우리는 어른들께 너무 관심이 적은 것은 아닌지 반성이 된다. 어른들을 편히 모시는 것이 효도다.